마을사람들 모두가 사라진 곳에서 자칭 '보안관' 노릇을 하고 있는 주인공 '메이피스'는 노예생활로부터 도망쳐 나온 어린 '핑'을 만나 짧은 동거를 한다. 핑이 죽은 후 메이피스는 잊었던 슬픔을 자꾸자꾸 깨닫다 죽음을 떠올린다. 그 순간 머리 위를 지나는 비행기를 보고 먼 여행을 결심한다. 어딘가 파괴되지 않은 문명이 있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다. 책은 순식간에 모험기로 바뀐다.
놀라운 것은 시베리아를 닮은 주인공의 서늘한 태도다. 애써 노력하는 모습이 아니다. 황량한 삶에서 주인공의 인간성은 함께 얼어버렸나. "내 삶은 고통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바람이 눈 위에 적어놓은 길고도 잔인한 농담일 뿐"이라는 메이피스의 독백처럼.
비록 주인공은 '아버지의 고향 미국으로 돌아간다 한들 결코 자기 생에서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음'을 깨달으며 체념할 수밖에 없지만 죽은 이들에게 "사랑해요, 곧 만나요"라는 짧은 인사를 할 따뜻한 기운을 가질 수 있었다.
지구의 종말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구 온난화뿐이겠나. 소설에 등장하는 '오염의 도시' '더 존'은 우리가 이미 겪은 방사능유출 사고지역 체르노빌과 체첸그대로다. '열다섯 살부터 내가 아는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우리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할 뿐 이미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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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큰 감명을 받고 일본에서 번역해 국내에서 입소문이 더 났다. 하루키는 후기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소설이다. 이야기가 점점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며 줄거리를 상세히 밝히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동의한다 해서 책을 읽은 모든 독자들도 세세한 줄거리는 밝히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주인공의 존재감과 그가 품은 희망과 사랑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 먼 북쪽=마르셀 서루 지음. 조영학 옮김. 사월의책 펴냄. 327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