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었던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는 남의 생일에 불과했을 터였다. 하지만 한참 전부터 ‘산타 할아부지’ 타령을 하는 막내의 성화를 나몰라라 할 수는 없으셨던 모양이다.
그렇게 배를 불린 채 올 숭숭한 뜨게옷 하나로 동네를 누빌라치면 이곳저곳 전파사에선 징글벨소리가 울려 퍼지며 싸늘한 대기를 달구었고 종종거리는 사람들 얼굴엔 캐롤로 인해 달뜬 흥분이 어려 있었다. 먹고살기 팍팍하던 시절, 기억 속 크리스마스의 풍경이다.
어느 술자리에서였더라? 잡스가 여전히 청바지 입은 채 강단에 섰을 때니 2011년 이전이었을 것이다. 한 친구가 그랬다. 터미네이터가 미래로부터 돌아온다면 먼저 끝장내야할 인물이 스티브 잡스일거라고.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고 매킨토시를 만들고 MP3플레이어를 만들고 아이폰을 만들고.. 인류가 물질문명에서만큼 큰 빚을 진 인물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망가진 아날로그적 가치관 탓에 결국 인류는 더 빠르게 쇠락할 것이란 게 그 주정꾼 친구의 논리였다. 일정부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런 편이다.
원고지에 기사를 쓰던 기자 초년병시절 교정쇄를 찍으러 정판엘 가면 거꾸로 된 납활자를 핀셋으로 골라 기사묶음으로 만들어내는 아저씨들의 손끝이 귀신같았다. 기술자들이어선지 프라이드도 대단했다. 그러던 것이 금방 대지작업으로 바뀌었다. 납활자 대신 컴퓨터로 기사를 뽑아 대지판에 잘라 붙이는 작업방식에 수십년 핀셋질의 대가들은 자와 칼에 익숙해져야 했다. 떠듬한 손길에 기사를 잘라먹기 일쑤여서 편집기자들은 손 꼼꼼하고 눈썰미 분명한 언니들을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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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겨우겨우 자와 칼에 익숙해질 무렵 바로 문제의 매킨토시가 나왔다. 화상편집시대. 자와 칼을 내려놓고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아야했던 이들. 그리고 이어진 기자 조판. 그렇게 그들은 사라져갔다.
그렇게 많은 기술들이 사라졌다. 혹은 누군가만의 기술들을 아무나 다 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평생을 획득한 기술들은 누군가의 존재가치다. 거기에 의지해 본인과 주변을 꾸려가고 사회에 기여한다. 이 눈부신 물질문명의 끝에 사람은 어떤 가치의 존재로 남게 될까? 이상하게 연말만 되면 당시 아저씨 형님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또 씁쓸한 것들. 이 엄청난 변화의 물결속에 용케도 변하지않는 이 사회의 구태의연함들. 땅콩회항사태가 보여준 있는 자들의 갑질, 맹골수도에 무수한 목숨을 수장시킨 관료사회의 무능, 파쇼화된 진보, 반동적인 보수 등등. 제발 좀 변했으면 싶지만 기대대로 되기는 글러버린 것 같다.
2014년 세밑의 감상은 이렇게 우울하다. 2015년 세밑도 우울하리라 예상된다. 이럴 때 거리마다 울려퍼지는 캐롤이라도 있었으면 위안이 좀 될텐데.. 누가 캐롤 기부는 안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