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임영록은 왜 실패했나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대표 2014.09.2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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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소양은 사람을 알아보고 쓰는 일이다. 지인(知人)과 용인(用人)이다. 이 두 가지는 최고경영자뿐 아니라 모든 지도자에게 필수의 덕목이다.

경영학의 대가 짐 콜린스의 지론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다. "위대한 회사를 만든 리더들은 새로운 비전과 전략부터 짤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뜻밖에도 그들은 먼저 적합한 사람을 버스에 태우고 부적합한 사람을 버스에서 내리게 하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이런 말도 덧붙인다. "적합한 사람인지 여부는 전문지식이나 배경, 기술보다 성격상의 특질이나 소양과 더 관련이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경영전략 강의로 유명한 신시아 몽고메리의 의견도 비슷하다. "전략가가 가장 우선해서 할 일은 전략을 위한 조직을 정비하고 사람을 고르는 일이다."

임영록의 KB금융이 막을 내렸다. 금융정책국장을 역임하고 차관까지 지낸 엘리트 관료가 사장을 거쳐 금융지주 회장에 오른 뒤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왜 낙마했을까. 그의 중도하차는 지인과 용인의 실패에서 찾아야 한다.



주전산기 교체를 놓고 회장과 은행장이 충돌해 두 사람 동반 퇴진으로 파국을 맞았지만 사태를 수습할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임 전회장과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에 대해 경징계 결정을 내린 뒤 이 전행장이 김재열 전무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면 또 내부갈등을 씻기 위해 마련된 템플스테이에서 이건호 전 행장이 중간에 절을 떠나지 않았다면 여론이 악화되지도, 최수현 금감원장이 중징계로 돌아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경우 KB사태는 어정쩡하지만 봉합됐을 것이다.

두 가지 일을 놓고 보면 이건호 전행장은 경영자보다 비판적인 경제학자나 시민단체 지도자로서 더 적합한 듯싶다. 짐 콜린스의 분석을 빌리자면 그는 성격상의 특질이나 소양이 너무 강직하고 올곧아 은행 경영자로는 부적합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금융권에서는 임영록 전회장이 처음엔 내부 행원 출신 중에서 고르다 이건호 당시 리스크관리 부행장을 택한 게 권력실세의 지침을 받은 고위당국자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인은 안 된다. 다만 임 전회장도 사태가 악화된 후 이건호 전행장이 이럴 줄 몰랐다며 탄식했다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임 전회장의 지인과 용인 실패는 은행장에 그치지 않는다. 단적으로 이번 KB사태의 핵심 조역인 김재열 CIO(최고정보책임자)의 인선도 패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강정원 전 행장 시절부터 국민은행에 몸담아왔던 김 전무에 대해선 내부평판이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은행 전산관련 부서에서 근무한 경력도 없다. 그런데도 임 전회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를 중용했다.

이 밖에 주전산기 교체를 놓고 임 전 회장과 갈등하면서 자체 해결하기보다 금감원에 개입을 요청한 사람, 금융위의 직무정지에 반발해 당국과의 전면전을 주도한 인물 등 임 전회장이 잘못 고른 핵심 참모들은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임 전회장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연결돼 그에게 큰 신세를 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임 전회장을 배신하고 파멸을 재촉한 조연들이었다.

항용유회(亢龍有悔). 하늘 끝까지 오른 용은 후회하고 하는 일마다 고질적 병폐가 생긴다. 비내(備內). 밖이 아닌 내부의 적을 방비해야 한다. 임영록 전회장도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임 전회장 본인이 자신과 KB금융, 재무관료(모피아) 전체를 모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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