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 완벽한 고증은 없다…'탑건',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숨은 꼼수

딱TV 김준만 2014.07.2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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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TV]밀리터리 덕후가 검증한 영화의 '고증'

편집자주 '밀리터리 덕후' 김준만 - 할리우드 영화와 록 음악에 푹 빠져 사는 ‘피터팬 증후군’ 중증 환자입니다. 밀리터리 관련 글을 인터넷 공간에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것이 樂입니다.

영화, 드라마에서 전쟁과 역사를 다룰 때 '고증'은 필수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전쟁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 '완벽한 고증'은 비록 영화가 허구일지라도 마치 그 때 그 곳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처럼 관객을 몰입시킨다. 그러나,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고 믿었던 그 영화들에 '꼼수'가 있었다니!

할리우드의 전쟁 영화는 관객들에게 전쟁 상황을 보여주면서 실감 나는 표현을 위해서 '고증'을 합니다. 당시에 사용됐던 무기를 그대로 사용해 촬영하죠. 하지만 실제로 제작비와 여러 현실적인 여건들로 인해 '고증'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양보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수십 년 전 전쟁영화들에 비해 현대의 영화들은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고증의 정확도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확한 고증'이란 제작진에게 힘겨운 과제입니다.

과거 할리우드 영화사에 명작으로 기록되는 몇몇 유명 전쟁 영화들도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관객들에게 '정확한 고증'을 보여주기 위해 웃지 못할 편법을 감수하기도 했습니다.



1. 탑 건 (Top Gun, 1986)

↑ 매력 만점의 배우 톰 크루즈와 미 해군 주력 전투기 '톰캣'의 강력한 파워를 당시 영화 팬에게 각인시킨 작품 '탑 건'↑ 매력 만점의 배우 톰 크루즈와 미 해군 주력 전투기 '톰캣'의 강력한 파워를 당시 영화 팬에게 각인시킨 작품 '탑 건'


톰 크루즈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고(故) 토니 스콧 감독의 '탑 건'은 할리우드 전쟁 영화 사상 가장 박진감 넘치는 공중전 장면을 연출했다고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 해군이 보유한 주력 전투기 'F-14 톰캣'은 1974년에 본격적으로 배치되고 2006년 퇴역했습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걸프 전쟁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에서 미국 군사력의 아이콘이 됐던 기종입니다.

스콧 감독은 실제로 미 해군 51 비행단에서 F-14A 톰캣 전투기 몇 대를 지원받았습니다. 이 전투기는 한 시간 사용 비용이 대당 7800달러였다고 합니다. 이 비용은 빌리는 동안 사용되는 연료와 일체 운영 비용을 포함했습니다. 정규 임무에서 벗어나서 제작팀에게 제공되는 그 시점부터 비용이 계산됐다고 합니다.


↑ F-14 톰캣 전투기는 미국 군사력의 상징으로, 미국 항공 기술의 결정체였습니다.↑ F-14 톰캣 전투기는 미국 군사력의 상징으로, 미국 항공 기술의 결정체였습니다.
특히 항공모함 장면은 당시 미국 해군의 최강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호에서 촬영됐습니다. 제작팀이 원하는 대로 이 거대한 항공모함을 움직일 수는 없었기에 대부분 기존의 임무 수행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스콧 감독은 태양을 등지고 위용을 자랑하는 함상에 톰캣 전투기의 모습을 촬영하다가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항공모함의 진행 방향이 바뀌는 바람에 원하는 장면을 더는 촬영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감독은 지휘부에 조금만 더 촬영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해군은 촬영에 협조하기 위해 잠시 항공모함의 방향을 바꿔주는데 무려 2만5000달러의 비용을 불렀습니다. 감독은 그 자리에서 요구하는 금액의 수표를 썼습니다. 촬영에 맞게 항공모함의 진행 방향을 돌려놓은 후, 추가로 5분 분량의 촬영을 더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 미 해군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미 해군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예상치 못한 비용이 더 소요되긴 했지만, 미 해군이 당시 사용했던 톰캣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그대로 촬영했으니 영화의 고증은 거의 100% 완벽했던 셈입니다.

문제는 적기로 설정된 소련의 전투기였습니다. 그 당시 소련의 주력 전투기는 미그기(MIG)였는데, 촬영을 위해 미그기를 빌려 올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미 공군에서 1960년대 초부터 사용해온 F-5 전투기(미국에서는 탑 건 개봉 이듬해인 1987년에 생산을 중단한 구형 전투기지만, 우리 공군은 현재도 사용하며 종종 추락 사고를 일으키는 애물단지 기종입니다)를 '미그 28'이라는 기종으로 설정해 사용했습니다.

실제 미그기는 쓸 수 없고, 그렇다고 F-5를 버젓이 존재하는 다른 기종이라고 우기자니 알아볼 사람들이 있을 것 같으니, 별 수 없이 영화에서는 F-5 전투기를 이용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미그 28'을 만들어낸 것이죠.

△ 탑 건의 마지막 공중전 장면



↑ 적기 '미그 28'이라고 설정된 F-5 전투기가 미 해군 톰캣 전투기보다 왜소해 보이는 모습은 안타깝습니다. 그 점만 빼면 박진감 넘치는 연출과 톰 크루즈의 매력 때문에 다시 보는 명작 전쟁 영화입니다.

사실 전투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탄생 시점이 무려 15년 넘게 차이 나는 신세대와 구세대 전투기의 공중전을 보며 몰입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체격과 외형 뿐만 아니라 성능에서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미그 28'이라고 우기는 구닥다리 전투기 F-5가 최신 전투기 톰캣을 위기로 몰아넣는 장면에서는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 F-5 는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을 했던 전투기입니다. 톰캣 전투기보다 모든 면에서 상대되지 않는, 한 세대 전 기종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F-5 는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을 했던 전투기입니다. 톰캣 전투기보다 모든 면에서 상대되지 않는, 한 세대 전 기종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비록 영화가 고증에 실패한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를 메울 수는 없었지만, 여러 배우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건 매력입니다. 톰 크루즈를 비롯해서 발 킬머, 팀 로빈스 등이 해군 전투기 조종사들로 등장했고, 멕 라이언의 신인 시절도 빼놓을 수 없는 감상 포인트입니다. 이 영화는 무게감 확실한 톰캣 전투기의 비행 모습과 함께 큰 성공을 기록했습니다.

2. 밴드 오브 브라더스 (Band of Brothers, 2001)

↑ HBO 미니 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 HBO 미니 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1998)'는 전쟁 영화의 신기원을 이룬 명작입니다. 할리우드 전쟁 영화가 이 작품 이전과 이후로 나뉘기도 합니다. 지금 봐도 사실적인 전투 장면은 전투의 공포까지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해 충격을 줍니다.

많은 영화팬은 영화 오프닝 장면인 오마하 해변 상륙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습니다. 또한, 영화 후반부의 폐허 속 피 튀기는 전투 장면은 성공적인 극사실주의적 표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실감 나는 전투 장면



그 연장 선상에서 3년 후에 TV 미니 시리즈로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제작됐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축적된 전쟁 묘사의 비결을 좀 더 넉넉한 시간에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제작팀은 당시 연합군 탱크인 미국 M4 셔먼(M4 Sherman)과 영국 크롬웰 전차를 등장시켜 사실적인 묘사를 더해줬습니다.

게다가 '야크트판터(Jagdpanther)'와 같이 할리우드 전쟁 영화에서 쉽게 등장하지 않던 나치 탱크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2차대전 중에 사실상 무적의 탱크였다고 연합군조차 인정했던 독일 타이거(Tiger) 탱크의 등장도 스필버그 제작팀의 열정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사용된 T-34를 고친 타이거 탱크



↑ 위의 동영상에서 측면 바퀴 숫자를 비교하면 실제 타이거 탱크와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위의 동영상에서 측면 바퀴 숫자를 비교하면 실제 타이거 탱크와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타이거 탱크는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수적으로 너무 부족해 전선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전쟁 이후에 제대로 구동하는 차체를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멸종(?) 상태가 되어버렸죠. 그러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등장하는 타이거 탱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영화와 TV 시리즈에 등장하는 타이거 탱크의 바퀴 숫자를 세보면 실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제작팀이 동유럽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소련의 T-34 (한국전쟁 당시 휴전선을 무너뜨리고 쳐들어왔던 악명 높은 바로 그 탱크입니다)를 몇 대 사서 타이거 탱크로 고쳤기 때문입니다.

T-34는 타이거 탱크보다 훨씬 많은 수가 생산됐고, 2차대전 후에도 공산 진영에서 널리 사용됐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었죠. 시청 중에는 위장 덕분에 쉽게 알아볼 수 없지만, 조금만 관심을 두고 본다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 소련 T-34는 2차대전 중에 독일 타이거 탱크와 대등하게 정면 승부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탱크였습니다.↑ 소련 T-34는 2차대전 중에 독일 타이거 탱크와 대등하게 정면 승부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탱크였습니다.
하지만 스필버그 제작팀의 고증에 대한 노력은 대단하다고 인정해줘야 할 것입니다. 이전에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았던 '패튼 대전차 군단(Patton, 1970)'에서는 냉전 시대 미 육군 주력 탱크들 중의 하나인 M-48을 독일군 탱크로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영화 '벌지 대전투(Battle of the Bulge, 1965)'는 극 중 미 육군 M-47 탱크를 독일 기갑 부대가 사용하는 킹 타이거 탱크라고 뻔뻔하게 우긴 사례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F-5 전투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저건 미그 28이다"라며 자기 최면을 해야 했지만, 탑 건의 공중전은 지금도 많은 감동을 줍니다.

전쟁을 다뤘다고 해도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입니다. 완벽한 고증으로 100% 현실 그대로를 재현하지 않더라도 영화감독과 배우들, 영상·음향과 배경 음악 등 다양한 요소들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7월 21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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