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4옥타브 반' 고음의 비밀

딱TV 김준만 칼럼니스트 2014.06.1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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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TV]70년대를 대표하는 록그룹 '퀸'…추억과 비화

편집자주 '록 음악 덕후' 김준만 - 할리우드 영화와 록 음악, 밀리터리에 푹 빠져 사는 ‘피터팬 증후군’ 중증 환자입니다. 록 음악 글을 인터넷 공간에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것이 樂입니다.

전설적인 록 그룹 '퀸(Queen)'의 불세출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 그의 매력적인 고음은 '4옥타브 반'이라는 수식어로 기억된다. 그러나 정작 그의 라이브 무대에서는 소름돋는 고음을 듣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4옥타브 반'의 비밀을, 70년대 록 그룹의 추억과 함께 되짚어본다.

↑ 1975년 Bohemian Rhapsody의 싱글 EP 레코드 커버에 사용된 퀸 멤버들 사진↑ 1975년 Bohemian Rhapsody의 싱글 EP 레코드 커버에 사용된 퀸 멤버들 사진


1960년대 영국을 대표하는 록그룹을 말할 때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를 꼽는다면, 70년대에는 레드 제플린과 퀸을 꼽는 것에 대다수 록 팬들은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퀸은 1970년에 데뷔해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제대로 된 활동 기간은 불세출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AIDS)로 사망한 1991년까지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그들이 발표한 주옥같은 명곡들(Bohemian Rhapsody, We Are The Champions, Somebody To Love,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등)을 전부 열거한다는 것은 지면의 낭비일 듯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 록의 매력에 푹 빠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사랑하는 록그룹을 꼽으라면 퀸을 망설이지 않고 선택합니다. 그들의 음악이 가진 독특한 매력과 '중독성' 때문입니다.

까까머리 중학교 1학년 때이던 1976년에 절친 한 녀석이 카세트 녹음기로 AM 라디오 방송에서 나온 노래를 녹음해줬습니다. 그 테이프에는 'Bohemian Rhapsody'가 담겨 있었습니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으면서 느끼던 감흥은 저를 록의 매력에 푹 빠지게 했습니다.

그 이후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블랙 사바스, 이글스, 핑크 플로이드, 예스 등 7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록그룹들의 음악에 강력하게 중독됐습니다. 제게는 퀸이 그 모든 행복을 시작하는 출입구가 된 셈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좋아하는 퀸에 대한 몇 가지 아쉬운 마음을 오늘 털어 놓아볼까 합니다. 80년대 학번인 제가 신촌에서 록 음악들을 틀어주던 허름한 카페에서 하루 온종일 맥주를 들이켜며, 록을 사랑하던 친구들과 음악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때처럼 말입니다.

전설적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4옥타브 반' 고음의 비밀
프레디 머큐리의 '4옥타브 반' 고음 창법…라이브로는 들을 수 없다?

1968년에 활동을 시작한 선배 록그룹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의 금속성 강한 창법은 비슷한 시기의 록그룹의 보컬리스트들이 흉내 낼 정도로 록 보컬의 전형이 됐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록그룹 러쉬(RUSH)의 초기 앨범을 들어보면 보컬과 베이스를 맡은 게디 리의 창법에서 로버트 플랜트의 느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달랐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로버트 플랜트를 능가하는 고음을 자랑합니다. 매우 다양한 색깔을 낼 수 있는 카멜레온과 같은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흔히 'Killer Queen'이나 'Bohemian Rhapsody'에서 들려주는 오페레타 분위기의 창법이 초기 퀸의 음악의 특성을 규정짓는 것처럼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Keep Yourself Alive'와 같은 곡에서는 제플린 못지않은 파워로 압도했습니다. 반면 'Somebody To Love'나 'You're My Best Friend'와 같은 곡에서는 여성적인 느낌의 보컬로 훗날 그의 동성애적 성향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특히 데뷔 후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퀸은 그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냅니다. 록 팬들에게 프레디의 상징처럼 돼버린 '4옥타브 반'의 고음을 구사하는 능력은 퀸의 데뷔 앨범인 'Queen(1973)'부터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Jazz'(앨범 제목과 달리 그들의 전형적인 록과 사이 사이에 자잘한 소품들로 구성된 걸작 앨범)까지 녹아있습니다. 브라이언 메이의 독특한 기타 연주도 퀸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프레디의 공연 동영상이나 당시 실황 앨범들을 유심히 들어보면 의문이 한 가지 듭니다. 콘서트에서는 프레디가 원곡의 고음 파트를 편곡해 낮은 음으로 넘어갑니다. 대신 드럼을 맡은 로저 테일러의 '카랑카랑'한 허스키 음색의 고음을 덮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프레디의 고음은 라이브 연주 시에 불안한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만큼 그들이 발표하는 스튜디오 앨범이 무대에서 그대로 재현하기에는 난도가 매우 높은 곡들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라이브 앨범이나 동영상을 감상하는 재미라 생각되네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번 아래 동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1977년 미국 휴스턴에서 공연한 동영상입니다. Bohemian Rhapsody의 발라드 파트 앞에서 고음 파트를 낮게 편곡해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Galileo'와 ' Mama mia'의 코러스 부분은 '당연히' 스튜디오 레코딩 테이프를 틀고 있습니다. 이거야 어쩔 수 없고요.



1977년 영국 런던 공연에서 보인 그들의 컨트리 스타일의 곡 '39' 입니다. 2분 지난 후에 고음 파트를 아예 로저 테일러가 맡고 프레디는 확실하게 저음으로 깔아버립니다. 원곡을 모르는 분들도 이 부분에서 프레디가 실제 무대에서 고음 부분을 얼마나 피하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튜디오 앨범에 원곡에서는 이 곡의 메인 보컬은 기타를 맡은 브라이언 메이였습니다. 고음 백업 보컬 부분은 프레디의 목소리가 주로 들립니다.



1985년 라이브에이드 공연에서 We Are The Champions를 부르는 모습입니다. 후렴 파트에서 로저 테일러의 고음 백업 보컬을 확실히 들을 수 있습니다.

'The Game(1980)'…상업적 성공과 음악적 타협의 그 가운데

↑ 퀸의 최고 히트 앨범 'The Game(1980)'↑ 퀸의 최고 히트 앨범 'The Game(1980)'
1980년 6월 30일에 미국과 영국에서 발매된 그들의 8번째 정규 앨범 'The Game'은 퀸의 첫 미국 차트 1위 앨범입니다. 데뷔 후에 무려 10년 동안 끊임없이 히트 앨범과 히트 싱글을 미국 차트에 올려놓으면서도 1위를 못해본 한을 단 한방에 풀어줬습니다.

싱글 EP 레코드(속칭 '도넛 판')로 먼저 발매되었던 수록곡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가 그해 2월 말에 미국 싱글 차트 1위에 매겨지더니 연이어 'Another One Bites The Dust'가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며 1위에 오릅니다.

△ 1986년 영국 웸블리 공연, Another One Bites The Dust



반면에 어쩌면 가장 그들 스타일에 접근한 극적인 전개의 'Play The Game'은 미국에서는 싱글 차트 42위에 그치는 저조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1위를 달성한 두 곡은 그동안 퀸이 일곱 장의 정규 앨범에서 보여줬던 그들만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하는 로커 빌리(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와 디스코 풍(Another One Bites The Dust)의 다분히 상업적인 전략이 반영된 곡들이었습니다.

상업적으로 최고의 성공을 거둔 이 앨범을 정점으로 퀸의 음악은 좀 더 가벼운 스타일 (Body Language, Radio Ga Ga 등등)으로 흘렀습니다. 심지어 1989년에 발표한 The Invisible Man과 같은 곡은 댄스 클럽에서 DJ들이 사용하기 딱 좋은 스타일의 곡입니다.

기존의 명곡들은 아니더라도 Millionaire Waltz, Good Old Fashioned Lover Boy, Who Needs You, Melancholy Blues와 같이 실험 정신이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곡마저 보이지 않는 밋밋한 앨범들로 변해갔습니다.



뒤늦게 퀸의 원래 스타일로 돌아온 명곡 'Innuendo'. 또 하나의 전설적인 록그룹 예스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호우가 객원 연주자로 초대된 곡이기도 합니다.

뒤늦게 프레디 사망 직전인 1991년 발표 앨범 'Innuendo'에서 그들의 원래 스타일로 회귀하는 듯 변화무쌍한 대곡(Innuendo)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레디가 더는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The Game'. 그들의 발표 앨범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음악 시장인 미국에서 오매불망 고대하던 1위 기록을 실현한 첫 번째 앨범이지만, 동시에 그들의 음악이 퇴보를 시작한 정점이기도 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사망 이후 '퀸'의 실망스러운 행보

레드 제플린의 천재 드러머 존 본햄이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해가 1980년이었습니다. 70년대 영국 최고의 록 그룹이 활동을 해온 지 고작 12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정규 앨범을 8장(그중에 Physical Graffiti는 더블 앨범) 발표한 시점이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당시 드러머로써 명성을 얻고 있던 카마인 아피스(로드 스튜어트 밴드)나 코지 포웰(레인보우)과 같은 거물급 드러머를 영입했다면, 레드 제플린의 다음 앨범도 여전히 히트 행진을 지속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드 제플린은 활동을 접었고 존 본햄이 없는 제플린은 있을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물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이제는 노인이 되어버린 남은 세 멤버들이 한 두 번 재결합해서 공연을 갖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적인 활동이라고 볼 수는 없겠죠.

↑ 존 디콘은 퀸의 히트곡 'Another One Bites The Dust'의 작곡자로도 유명합니다↑ 존 디콘은 퀸의 히트곡 'Another One Bites The Dust'의 작곡자로도 유명합니다
반면에 퀸의 남은 멤버들 중에서 베이스를 맡았던 존 디콘은 프레디 사망 후에 사실상 음악 활동을 중지하고 은퇴했습니다. 남은 두 명의 멤버 브라이언 메이(기타)와 로저 테일러(드럼)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영국의 동시대 실력파 록그룹 배드 컴퍼니의 리드 보컬인 폴 로저스를 객원 보컬로 'Queen + Paul Rodgers'라는 이름의 순회공연을 돌았습니다.

↑ Queen + Paul Rodgers 공연 장면↑ Queen + Paul Rodgers 공연 장면
둘은 그들의 히트곡을 프레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폴 로저스에게 부르게 합니다. 저도 2005년에 뉴욕 공연 때 두 명의 멤버들과 폴 로저스를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좌석을 사서 갔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퀸의 CD를 틀며 프레디가 불러준 그들의 히트곡들을 들으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습니다.

△ 2005년 Queen + Paul Rodgers 공연, Fat Bottomed Girls



이후에 폴 로저스는 원래 그가 소속된 배드 컴퍼니로 돌아가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한편 퀸의 두 멤버들은 또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이번에는 2009년 8월 미국 TV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의 준우승자인 당시 27세의 미국 출신 애덤 램버트와 순회공연을 시작합니다.

이 재능 많은 신인은 2010년 그래미상을 수상할 정도로 각광을 받습니다. 하지만 무대위에서 이 젊은 가수와 연주를 하고 있는 두 할아버지들을 바라보면 왠지 '이것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전설적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4옥타브 반' 고음의 비밀
△ Queen + 애덤 램버트, Don't Stop Me Now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6월 19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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