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열리는 구호물품함·먹통 비상전화…재난예방 '낙제점'

머니투데이 최동수 기자 2014.06.02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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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 4·16" - '안전이 복지다' <2부>"안전은 시스템이다">]<4-2>소방관들이 꼽은 '화재취약시설' - 청량리역


- 스크린도어 깰 비상망치 쇠줄 묶여 꺼낼 수 없고
- 배관 보온재는 스티로폼 불난다면 유독가스 심각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가 지난달 29일 청량리역에 있는 구호용품 보관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사진=최동수 기자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가 지난달 29일 청량리역에 있는 구호용품 보관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사진=최동수 기자


구호용품 보관함과 스크린도어, 엘리베이터까지. 비상시 사용하기 위해 준비해둔 물품들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더구나 하루 수만 명이 이용하는 서울시내 한 복판 지하철역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재앙이 닥칠 수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하루평균 5만~6만명이 이용하는 지하철1호선 청량리역에서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와 함께 화재발생시 지하철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직접 확인해봤다. 출·퇴근시간을 피했지만 청량리역은 시내·시외버스 환승센터와 백화점, 전철 중앙선 등을 이용하는 사람으로 붐볐다.

공 교수는 가장 먼저 방독면과 마스크를 보관한 구호용품 보관함을 가리켰다. 유리보관함에서 물품을 꺼내려면 결국 유리창을 깰 수밖에 없음에도 주변에는 유리창을 깰 만한 도구가 하나도 없었다. 뿐만 아니다.



공 교수는 "문을 쉽게 열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방독면도 한국은 5~8단계를 거쳐야 착용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2단계 만에 착용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바로 옆에 있는 스크린도어도 문제였다. 화재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열차 안에선 손으로 스크린도어를 열 수 있지만 밖에서는 수동으로 열 방법이 없다. 승강장 쪽에서 불이 나면 선로로도 대피할 수 있어야 함에도 스크린도어가 열리지 않으면 결국 밖으로 나가는 통로에서 사람이 빠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게 공 교수의 지적이다.

그럼에도 공 교수는 스크린도어를 열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며 승강장 맨 앞쪽에 있는 '선로 출입문 제어장치함'을 쳐다봤다. 수십 걸음을 걸어 보관함에 도착해 함 안쪽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비상전화도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공 교수는 "연기가 자욱하면 제어장치함을 찾기도 어렵고 찾았더라도 바로 역무원과 연결이 안된다"며 "작은 종이에 적혀있는 번호를 눌러야 역무원과 연결되고 비밀번호를 받아 수화기 옆에 있는 숫자판을 눌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크린도어를 깰 장비를 살펴보니 바로 옆에 걸린 망치 하나가 보였다. 망치를 빼내려고 힘을 줬지만 25㎝ 정도 길이의 쇠줄에 걸려 빼낼 수 없었다. 승강장 천장도 화재에 취약했다. 천장의 배관을 둘러싼 보온재는 유독가스를 유발하는 스티로폼 재질로 구성돼 있다.

공 교수는 "스티로폼의 유독가스는 나무가 탈 때 나오는 연기보다 몇 배 독하다"며 "천장에 연기를 빼주는 배연설비가 있는데 지하철역은 재연설비 용량이 같은 규모의 일반건축물보다 훨씬 커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도 지적받았다. 그는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는 비상용이 아니라 일반용이어서 화재시 멈출 수도 있다"며 "전기배선을 다르게 해 화재가 발생해도 엘리베이터가 멈추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 교수는 청량리역 2번 출구로 빠져나와서까지도 지적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출구에서 지하철역 안쪽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밖에 있는 시민들이 들어가지 않고 혼잡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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