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꾼? 박사모?"···'세월호'와 조작된 기억들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14.05.0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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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트] 믿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 기억까지 조작

"선동꾼? 박사모?"···'세월호'와 조작된 기억들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일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히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것이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말이다.

버핏이 약 50년 동안 꾸준히 시장 평균을 웃도는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좀처럼 '자기 확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핏은 자신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들에게 매년 보내는 서한을 통해 종종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 올초 "천연가스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투자했지만 결과적으로 큰 오판을 한 것 같다"고 인정한 것이 그 예다. 버핏이 주주들의 신뢰와 시장의 존경을 받는 이유다.

반면 대부분들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는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찾아 헤맬 뿐 자신의 신념을 반박하는 정보는 무시한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다. 심리학에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소셜네트워크 분석업체 오알지넷닷컴(orgnet.com)의 발디스 크레브스는 아마존닷컴 회원들이 정치 성향에 따라 어떤 책들을 주로 사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를 긍정적으로 그린 책들을 구매한 이들의 대부분은 원래 오바마를 지지하던 사람들이었다. 반면 오바마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책들의 구매자는 주로 오바마를 원래 싫어하던 사람들이었다.

'확증 편향'의 진짜 무서움은 '확신'이 자리잡은 뒤에는 심지어 기존의 기억마저 조작한다는 점이다.

1979년 미국 미네소타대학 심리학과의 마크 스나이더, 낸시 켄터 교수는 피실험자들에게 '제인'이라는 가상의 여인을 묘사한 글을 읽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가상의 인물인 제인도 때론 외향적인, 때론 내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두 교수는 일주일 뒤 피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쪽에는 "제인이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에 어울리느냐?"고, 다른 쪽에는 "제인이 부동산 중개인이라는 직업에 어울리느냐?"고 물었다.

다소 내향적인 이미지의 도서관 사서가 어울린다고 답한 사람들은 제인의 내향적인 행동들을 주로 기억했다. 이후 이 사람들에게 "제인이 부동산 중개인에 어울리느냐?"고 묻자 대부분 어울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들은 제인의 외향적인 행동들을 거의 기억해내지 못했다. 제인에 대해 다소 외향적인 이미지의 부동산 중개인이 어울린다고 답했던 사람들을 상대로 반대로 실험했을 때에도 역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 더욱 첨예해진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확증 편향'은 '기억 조작'이라는 부끄러운 결과들을 낳았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마이크를 잡고 명찰 배포를 성토한 한 여성을 놓고 어떤 이들은 '밀양 송전탑 반대시위' 당시의 선동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반대쪽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조문 당시 손을 잡고 위로한 사진 속 여성 조문객은 박 대통령의 지지모임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결국은 두 가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들은 '확증 편향'에 빠진 개인 또는 집단이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얼마나 '열심히' 받아들이고 전파하는지 보여준다. '세월호'의 아픔이 정치적 대결의 재료로 쓰이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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