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급발진' 사고와 불타버린 휴대폰 15만개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14.04.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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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트] 산요전기 창업자, 두달치 생산량 전량 폐기해 '신뢰' 지켜

車 '급발진' 사고와 불타버린 휴대폰 15만개


# 산요전기의 창업자인 이우에 도시오가 산요전기의 모체인 산요덴키제작소를 세운 것은 1947년이었다. 당시 갓전등과 같은 기본적인 전기 제품을 만들던 산요는 창업 1년째 자금 회전이 원활하지 않아 도산 위기까지 맞았다. 어렵사리 자금을 조달해 도산 위기를 넘긴 이우에는 야심차게 갓전등 신제품을 준비해 신문에 전면 광고까지 냈다.

그런데 신제품 출시 직전 제품을 검사하다가 전등 하나의 지지대가 부러진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우에가 제품을 모조리 검사해본 결과, 출시를 앞둔 신제품 가운데 절반 이상의 지지대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생산된 제품은 무려 1만개로 약 2개월치 생산분이었다.



가까스로 도산 위기를 갓 넘긴 터에 신제품에서 치명적인 하자가 발견되자 이우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미 신제품을 출시한다고 대대적인 광고까지 한 상태인데, 출시를 미루면 체면이 말이 아닐 터였다. 또 자금 회전이 여전히 불안한데 2개월치 생산분을 다시 만들면 현금 사정이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었다. 진퇴양난의 '딜레마'였다.

결국 이우에는 출시 직전의 갓전등 1만개를 전량 폐기하고 다시 제조하라고 지시했다. 이 때문에 다시 도산 위기에 처해 회사가 문을 닫더라도 노력하면 다시 재기할 수 있지만, 신뢰를 잃어버리면 영원히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이우에의 판단이었다.



이우에의 결단으로 산요는 끝내 시장의 신뢰를 지켰고, 1950년 산요전기로 이름을 바꾼 뒤 이후 '일본 백색가전 신화'의 핵심인 냉장고, 세탁기, TV를 만들기 시작했다. 산요의 이 3가지 백색가전은 이후 일본 경제를 이끈 '삼종의 신기'(三種神器)로 불리기도 했다. 2008년 파나소닉에 인수되기 전까지 산요전기는 일본 전기·전자산업의 대표주자였다.

논어 '안연편'에 따르면 공자의 제자로 훗날 노나라 재상이 된 자공이 어느 날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답했다. "백성의 양식이 넉넉하고 국방력이 튼튼하면서 백성이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세가지 중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군대다" "나머지 두가지 중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공자는 망설임없이 "양식"이라고 답했다.

공자는 마지막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으로 '신뢰'를 꼽았다.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바로 서지 못한다'라는 뜻의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는 유명한 구절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제품에서 불량이 발견됐을 때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폐기하고 신뢰를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옳은 선택이다.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사장을 지낸 이기태 연세대 교수가 1995년 삼성전자 임원 시절 일부 휴대폰 등에서 불량이 의심되자 구미공장에서 500억원 상당의 휴대폰 15만대를 불태워 버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 한 자동차 모델의 LPG(액화석유가스) 차종에서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11일 사고에서는 3명이 다치고 심지어 1명이 숨지기까지 했다. 해당 차종의 제조사는 사고 때마다 일부 부품을 교체해주면서도 여전히 "급발진은 없다"는 입장이다. "신뢰가 없으면 바로 서지 못한다"는 공자의 말이 뇌리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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