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사태' 박정희가 만든 주민번호, '카드사태' 박근혜가 손본다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2014.01.3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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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 사건 계기 도입… 정보유출 사건으로 '근본대책' 필요

사상 초유의 개인 금융정보 유출사태로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고도화된 정보 사회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빈번해지면서 주민등록번호 제도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고, 정부는 그 때마다 간헐적으로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는지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관계 부처는 대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1962년 주민등록법 제정 후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주민등록번호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처음인데, 특히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들었던 제도의 대안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김신조→박정희→주민등록번호= 주민등록법은 1962년 박정희 의장이 이끌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제정했다. 정부의 행정사무를 원활히 처리하기 위해 국민들의 거주관계를 파악하고 인구동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 성인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주민등록증이 등장한 건 그로부터 6여 년이 흐른 뒤였다. 이른바 '1·21 사태'가 계기가 됐다. 1968년 1월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의 무장게릴라가 휴전선을 넘어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주민등록증이 발급됐다는 <경향신문> 기사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주민등록증이 발급됐다는 <경향신문> 기사


정부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간첩식별과 국민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주민등록제도를 손봤고, 1968년 11월 21일 첫 주민등록증을 발급했다. 주민등록증 1, 2호는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였다. 두 내외는 이날 서울 종로구 자하동사무소를 방문해 주민등록증을 건네받았다.

발급받은 번호는 110101-100001과 110101-200002로 앞 6자리는 지역을, 뒤 6자리는 개인번호를 표기했다. 앞 번호 11은 서울, 01은 종로구, 끝 01은 청와대가 소재한 자하동을 나타냈고, 뒷부분 숫자는 등록한 사람 순서로 번호가 부여됐다. 형태는 현재의 플라스틱이 아닌 비닐로 코팅된 세모 모양이었다.


이후 그 해 12월까지 군인과 수감자를 제외한 1600여만 명의 성인남녀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1975년부터는 경찰관이 요구할 경우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더해졌고, 지금처럼 앞 수자에 생년월일, 뒤에는 성별과 출생 지역을 표기하는 13자리로 갱신됐다.

◆정보유출→박근혜→대안 마련= 최근 KB국민카드, 롯데카드, NH농협카드에서 1억 건의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벌어졌고, 조사 결과 사실상 우리나라 모든 성인의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생년월일부터 성별·출생지 등의 핵심정보를 담고 있는 주민번호 유출로 2, 3차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질 때마다 주민번호 대체 수단 마련은 단골로 등장했다. 하지만 주민번호 체계가 워낙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고, 교체 비용도 막대해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번에는 정부도 뭔가 묘수를 발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원인규명과 함께 근본대책이 필요하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7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7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운전면허번호 등 외국의 다양한 본인 식별 방법을 언급하며 "우리는 주민등록번호가 대다수 거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서 한번 유출이 되면 그 피해가 2차, 3차 피해로 확산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외국의 사례를 참고로 해서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안전행정부와 금융위원회는 보안전문가 등과 함께 주민번호 대체 수단 검토에 들어갔지만, 난관에 봉착했다. 주민번호 체계를 바꿀 경우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한 탓이다. 일반 기업은 물론 공공기관까지 주민번호에 기반한 시스템을 모두 바꿔야 하는데 비용과 시간이 막대하다. 새로운 인증 수단이 기반을 잡을 때까지 벌어질 수 있는 혼란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부가 성급히 대책을 내놓는데 주저하고 있는 이유다.

정부는 일단 금융회사의 주민번호 요구 관행부터 개선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주민번호 대체 수단은 면밀한 연구가 필요한 만큼 중장기 과제로 돌리는 양상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근본적으로 세계에 유례가 없는 국민통제 수단인 주민등록번호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주민등록법이 만들어진지 52년. 박 대통령과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주민등록번호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묘수를 내놓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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