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구제금융, 美 재무부가 압박했다" 임창열 증언

머니투데이 하세린 기자 2013.12.03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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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우리나라에만 살인적 고금리(25%) 강요? 인도네시아는 당시 57%"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임창열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그는 서류 가방 한 가득 자료를 들고 기자에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전의 긴박했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하세린, 임성균 기자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임창열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그는 서류 가방 한 가득 자료를 들고 기자에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전의 긴박했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하세린, 임성균 기자


1997년 12월3일, 찬바람이 몰아치던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이날 오후 7시30분 당시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IMF 구제금융안'에 각각 서명했다.

이것으로 한국은 서슬퍼런 IMF의 구제금융 체제로 걸어들어갔다. 25%의 살인적 고금리가 시작됐고,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앉았다. 정확히 16년 전의 일이다.



당시 IMF 구제금융안에 서명한 임 전 부총리를 지난달 26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16년 전 '비극의 현장'에 있던 주인공으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과연 그 당시 IMF 구제금융을 피할 방법은 없었던 것인가? 기자의 첫번째 질문이었다.



"1997년 11월19일 부총리로 취임했다. 이튿날 오전 리처드 크리스텐슨 당시 주한 미국 대리대사가 찾아와 IMF의 도움을 받을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 그날 오후에는 티모시 가이트너 당시 미 재무부 차관보가 찾아와 '한국의 이번 위기를 해결하려면 IMF로 가는 길 밖에 없다. IMF에 지원을 요청을 하면 미국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고 했다. 곧이어 스탠리 피셔 당시 IMF 부총재도 찾아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미국은 직접 한국을 지원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임 전 부총리는 20일 밤 당시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김영섭 청와대 경제수석과 만나 IMF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합의했다.

다음날 오전 김영삼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오후에는 전국에 유세를 다니던 3당 대선 후보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동의를 받았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그 자리에서 "경제 10위권의 나라가 IMF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니"라고 한탄한 뒤 "IMF와 대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 임 전 부총리는 이날 밤 10시15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했다.


IMF가 당초 한국에 약속한 지원 규모는 약 550억달러(현재 환율 기준 58조원). 이 가운데 195억달러(약 21조원)가 실제 지원됐다.

이후 IMF가 요구한 고금리 정책이 시작됐다. 1997년 6월 11%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의 금리는 1998년 1월 25%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 같은 고금리 정책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라고 임 전 부총리는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에 IMF의 지원을 받은 나라들의 당시 금리를 보면 인도네시아는 57%, 필리핀은 31%, 태국은 26%였다. 1994년 통화위기를 맞은 멕시코는 금리가 80%까지 뛰었고, 아르헨티나 역시 70%의 고금리를 기록했다"

당시 임 전 부총리는 캉드쉬 전 총재에게 고금리 정책을 완화해달라고 부단히 설득했다. 그러나 캉드쉬 전 총재는 한국이 고금리 정책을 수용해야 IMF 이사회를 설득할 수 있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나온 합의안이 '잠정적 고금리정책'이었다. IMF 이사회에서 구제금융안이 통과되고 나서 금리를 내리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뒤 1998년 2~3월부터는 금리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우리 정부가 '모라토리엄'(지급 유예)을 각오하고서라도 강하게 협상을 했어야 했다고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임 전 부총리는 "우리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잘라말했다.

"남미나 동남아처럼 식량자급이라도 되면 버틸 수도 있겠지만, 식량자급율이 30%인 우리나라에선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국민의 70%가 굶어죽어야 한다. 에너지 전량을 수입하는데, 공장도 자동차도 멈춰서고 모든 것이 '블랙아웃'된다"

우리 정부가 미리 IMF에 지원을 요청했더라면 위기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임 전 부총리는 "거짓말"이라며 "당시 위기는 국제수지 적자, 단기외채와 환율 등 내재적 정책실패 때문이었다"고 했다.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 인터뷰)

임 전 부총리는 "어느 날 갑자기 외환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은 지금도 국민을 속이는 말"이라며 "앞으로도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솔직해야 한다. 잘못한 것은 빨리 인정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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