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미 쓰다 1도 화상에 2000만원 요구..'뜨악'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김하늬 기자 2013.11.04 06:32
글자크기

억지형, 무례형, 위협형, 소송형 등 각양각색의 블랙컨슈머에 中企 '한숨'

#국내 한 중소가전 전문기업 A사는 한 고객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그 고객은 A사의 다리미를 사용하다 1도 화상을 입었다고 화를 내며 병원비 등의 명목으로 무려 2000만원을 요구했다. 병원에선 100만원 정도의 치료비가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고객은 "내가 잘 아는 기자가 있다.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겠다"고 협박하며 막무가내로 돈을 요구했다. 고객은 A사가 순순히 요구에 따르지 않자 하루에도 수십번씩 전화를 하며 업무에 지장을 줬다.

#가구업체 B사에 근무하는 설치기사는 고객의 집에서 가구를 원하는 위치에 설치하다 바닥을 살짝 긁었다. 설치기사는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긁힌 부분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부분 교체를 권유했다. 하지만 고객은 전면 교체를 요구했다. 더 나아가 설치기사가 집을 망쳐놓았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겠다고 협박을 계속해왔다. 결국 B사는 어쩔 수 없이 바닥 전면을 교체해줬다.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블랙컨슈머의 행태는 각양각색이다. 대기업과 달리 별도의 관리 및 대응 조직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블랙컨슈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5년 전 구매한 거치형 내비게이션이 차 유리에서 떨어졌다며 최신형 제품으로 교환해 달라고 요구하는 겨우는 그래도 양반이다. 보일러 제품 때문에 지병인 허리 디스크가 발병했다며 막무가내로 치료비를 요구하거나, 심지어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30년 전 구입한 그릇이 파손됐다고 주장하다 상담사의 말투를 문제 삼으며 그릇 교환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제품을 구입하고 몇 달, 많게는 3~4년을 사용한 뒤 본인 부주의로 파손되거나 고장이 났는데도 환불 및 교체를 요구하는 소비자도 많다"며 "회사 임원과 친분을 강조하거나 기자를 사칭하면서 협박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한 블랙컨슈머는 한 회사로부터 500만원 정도의 보상을 받은 이후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을 대상으로 일부로 똑같은 일을 저지르고 돈을 타내기도 해 업계 전체에 주의보가 내려진 적도 있다"며 "블랙컨슈머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중소기업들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블랙컨슈머와 관련, 기존의 소극적인 대응을 벗어나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는 중소기업들도 늘고 있다. 약하게 대응할수록 블랙컨슈머들의 공력은 늘어나고, 요구수위도 더 높아지는 악순환 때문이다.


블랙컨슈머에 여러 번 데인 A기업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제조물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다. 제조물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면 소비자의 피해 접수를 손해보험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어서다.

A기업 관계자는 "연 1500만원 수준의 보험료와 건당 150만원의 회사 부담금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며 "회사 규모에 비해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1년에 몇 건이 발생할지 모르는 블랙컨슈머에 대한 피해를 어느 정도 정해진 비용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보일러 기업은 블랙컨슈머의 유형을 정해놓고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유형은 △규정이나 법규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요구만을 내세우는 억지형, △마구잡이로 비인격적인 화풀이를 하는 무례형, △언론이나 인터넷 유포 등으로 협박하는 위협형, △규정에 맞게 처리했음에도 계속해서 민원을 제기하는 소송형 등이다.

이 기업 관계자는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블랙컨슈머로 정의한 고객에게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의거해 타협과 보상없이 원칙대로 대응하고 있다"며 "회사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없지만 분쟁이 일어날 경우 판례를 참고해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권고하며 설득하는 작업을 병행한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