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 공모제는 무조건 선(善)?

머니투데이 세종=박재범 기자 2013.10.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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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의 브리핑룸]

"공모제가 최선이야?"
전직 고위 관료가 묻는다. 현 정부의 공공기관장 인선이 늦어진다는 화제가 나왔을 때다. 공공기관장 공백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로공사, 한국마사회, 한국지역난방공사, 기술보증기금, 코스콤(증권전산)…. 굵직한 공공기관의 수장이 없다. 일부 임기가 끝난 기존 기관장이 재직 중인 곳도 있지만 사실상 '공백'에 가깝다. 어림잡아 수장 없는 공공기관이 20개를 넘는다. 2개월 이상 비어있는 곳도 적잖다. 기관장 한 명 없다고 조직이 안 굴러가겠냐고 물을 분도 있겠지만 상사가 며칠 출장만 가도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조직이다.



여러 분석이 따라 붙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청와대의 눈치보기 등이 주된 기류다. 실제 공공기관장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물론 공모 절차를 거친다. 사장추천위원회가 3~4명 정도를 추천하면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심의·의결을 한다. 공운위를 통과하면 기획재정부장관이나 주무부처장관이 제청한 뒤 대통령이 임명하는 식이다.

보통 2개월 정도면 충분하다. 헌데 현 정부 들어선 속도가 더디다. 추천위 구성 단계부터 미적거린다. 청와대 등 윗선(?)의 눈짓이 없는데 선제적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을 모두가 경험칙상 알고 있다. 10여명이 넘는 후보군을 3~4명을 추렸는데 공운위 문턱을 넘지 못한 사례도 있다. 설은 무성한데 이유는 명확치 않다. 그저 청와대만 바라볼 뿐이다. "(윗쪽의) 사인을 잘못 읽고 뛰어서 망치는 것보다 뭐하냐고 질책을 받더라도 확실한 신호를 기다리는 게 낫다"는 게 일선의 분위기다.



우여곡절 속 임명 절차가 마무리되면 '낙하산 인사' '무늬만 공모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곧 진행될 공공기관장 인선도 똑같은 잡음과 논란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 때 던져진 질문이 공모제다. 공모제의 역사는 1999년 김대중정부 때로 거슬러간다. 실력과 인격을 갖춘 인재를 발굴한다는 '추천제'란 이름으로 시작됐다. 이후 참여정부 때 본격화됐다.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뽑겠다는 취지에서다. 과거 군인 출신, 정치권 출신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데 대한 해법이었다.

겉보기엔 그럴 듯 했다. 객관성·투명성·전문성 등을 답보할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전직 관료는 "'공모제=선(善)'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며 "공모제 도입의 본질은 전문성·투명성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관료가 지적한 공모제 도입의 본질은 부처 장관 인사권 회수다. 공모제가 본격화될수록 산하기관 인사권은 청와대로 집중됐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난 정부때는 주무부처에 한번 추천해보라는 말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청와대가 별도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산하기관'은 엄밀히 말해 '산하기관'이 아니다. 청와대 산하기관일 뿐 각부처와 동급이 된다. 한마디로 "족보가 꼬이는 셈"이다. 정책 집행을 위한 산하기관 독려도 힘을 얻을 수 없다. 또 인사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 이 관계자는 "산하기관장 인사를 두고 주무부처 장관에게 책임을 물은 사례가 있냐"고 반문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인재 발탁의 어려움이다. 전문가를 모시겠다고 도입한 공모제인데? 설명은 이렇다. "민간인건, 공공기관이건 현직에 있는 사람들은 공모에 나서기 어렵다. 삼고초려해도 가능성이 반반인데 공모하라고 하면…". 그렇다보니 대부분 최선보다는 차선이 많다. 조직도 최고가 아닌 B급이 된다. 공모제의 아이러니다.

공모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여러 금융공기업도 예정돼있다. 틀에 박힌 낙하산 논란이 아니라 최고를 뽑는 공모인지 한번 되새겨봐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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