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벨]기업사냥꾼에 대한 小考

더벨 박제언 기자 2013.09.0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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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

더벨|이 기사는 08월30일(07:43) 자본시장 미디어 '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1990년에 개봉한 프리티우먼(Pretty Woman)은 줄리아 로버츠를 당대 최정상급 배우로 올려놓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거리의 매춘부 비비안(줄리아 로버츠)과 백만장자 에드워드(리처드 기어)가 여러 일을 겪으며 사랑을 싹 틔운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신데렐라 이야기지만, 이면에는 기업 인수·합병(M&A)의 투자철학이 숨어있다.



주인공 에드워드는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업사냥꾼으로 등장한다. 그는 재정상 어려움을 겪는 회사를 인수한 뒤 사업부를 조각내 팔며 큰 이득을 챙겨왔다. 기업 구성원이나 하청기업은 안중에도 없다. 목표로 삼은 회사의 인수가 여의치 않자 정치권의 힘을 빌려 경영진을 압박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비비안을 만나 사람 사는 세상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후 인수대상기업의 경영진에게 "회사를 인수하더라도 매각하는 일은 없다. 서로 협력해 회사를 다시 일으키자"고 제안한다. 오로지 이윤창출에 목적을 둔 '기업사냥꾼'이 회사의 성장을 고려하는 '전략적 투자자'로 전환하는 순간이다.



에드워드의 실제 모델은 미국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칼 아이칸은 지난 2006년 KT&G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칼 아이칸은 자신을 '가치 투자자'로 부른다.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제값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의미다.

국내 주식시장에도 칼 아이칸과 같은 기업사냥꾼 기질을 나타내는 투자회사가 있다. 스틸투자자문이 그곳이다. PC부품 유통회사 피씨디렉트 (3,930원 ▼55 -1.38%)의 경영진과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며 시장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스틸투자자문은 "피씨디렉트는 경영자의 방만한 경영으로 펀더멘털 대비 저평가됐다"고 적대적 M&A 시도 이유를 말한다. 여기에 스틸투자자문은 회사를 인수하더라도 제값을 받고 매각하겠다는 의지도 공공연히 밝혔다.

고려포리머의 남궁견 회장 역시 M&A업계에서 기업사냥꾼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남궁 회장은 상장폐지 직전의 위태로운 상장사를 헐값에 인수한 뒤 되팔아 수익을 올려왔다. 디에이치패션, 세종로봇, 에이치원바이오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최근에는 코스닥상장사 에스비엠을 노렸다. 상장폐지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인수 후 핵심 사업부만 매각하거나 회사를 어느 정도 정상화시키면 매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사냥꾼은 좋지 않은 이미지다. 약점을 가진 기업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강자라는 느낌을 주는 까닭이다. 하지만 합법적인 틀에서 M&A 작업을 하는 기업사냥꾼을 두고 무조건 나쁘다고 매도할 수 없다. 그들도 아까운 시간과 돈을 투입하고 리스크를 떠안으며 수익을 창출하려 노력한다. 투자의 초점이 다른 부분 보다 이익에만 더욱 집중돼 있을 뿐이다. 다만, 무자비한 '기업사냥꾼'으로만 남을지 '전략적 투자자'로 남을지는 그들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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