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 없는 중국, 억울한 농민공의 선택은?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송기용 특파원 2013.07.23 15:26
글자크기

송기용의 北京日記

편집자주 베이징에 살면서 든 습관은 하늘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도 스모그가 많이 꼈나?"하고 창문 밖을 내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로 대기오염이 심할때면 홍제동 안산의 맑은 공기를 누리던 서울 집이 그립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매력은 깊고도 넓습니다. 스모그에 가려진 하늘처럼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조금씩 엿보이는 중국의 깊은 정취를 독자 여러분에게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20일 저녁,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 3터미널. 아시아나항공이 사용하는 터미널이라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3터미널 국제선 입국장에 휠체어를 탄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허공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나에겐 폭탄이 있다. 멀리 떨어져라"

잠시 후 폭발음과 함께 흰 연기가 입국장을 가득 채웠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사제 폭발물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반 폭죽 화약을 모아 만들었다는 폭탄의 위력이 크지 않아 공항은 곧 안정을 찾았다. 자폭사건 범인은 왼쪽 팔이 절단된 채 피를 흘리며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지중싱(冀中星 34)이 지난 20일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리기 직전,주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자신에게서 떨어지라고 외치고 있다./사진 출처= 중국 웨이보지중싱(冀中星 34)이 지난 20일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리기 직전,주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자신에게서 떨어지라고 외치고 있다./사진 출처= 중국 웨이보


자폭테러범으로 외신에 보도된 용의자의 이름은 지중싱(冀中星 34). 하반신 마비 상태의 중증 장애인 지중싱은 왜 중국 수도의 관문인 서우두 공항까지 휠체어를 타고 가서 폭탄을 터뜨려야 했을까?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서. 그의 이야기는 'G2'로 급성장한 중국의 화려한 성장스토리에 숨겨진 사회적 불평등과 국가폭력의 실체를 보여주는 사례다.

산둥(山東)성 출신 지중신은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에서 오토바이 택시 기사로 일했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손님을 태우고 5위안(한국 돈 1000원)을 받는 오토바이 택시는 가난한 농민공인 지씨가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지씨는 8년 전 도시관리원들로부터 쇠파이프로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손님을 태우는 과정에서 불심 검문을 피하려 했다는 이유였다. 사소한 이유로 폭행당했지만 결과는 끔찍했다. 척추가 부러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된 것이다.

이후 관청에 민원도 넣고, 인터넷을 통해 억울함도 호소했지만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날도 지씨는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전단을 뿌리려다가 공항 공안에 제지당하자 손에 든 폭발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여론은 지씨에게 호의적이다. 자폭 직전 주위에 알려 인명피해를 최소화했고 단지 자신의 생명을 던져 억울함을 호소한 만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동정론이 강하다. 지난 6월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시에서 한 남성이 사회에 대한 분풀이로 통근버스에 불을 질러 47명의 목숨을 잃게 했던 방화사건과 비교하는 주장도 있다.


여론에 밀린 중국 당국은 지중싱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했다. 광둥성 공안당국이 둥관 공안에 당시 사건과 민원 처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하도록 지시했고 둥관 공안은 전담반을 구성해 조사에 착수했다.

팔 하나를 잃었지만 지 씨는 그래도 중국의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과 비교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최근 후난(湖南)성에서 50대 농민이 노점상을 단속하는 도시관리원에게 저울추로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이 농민은 단지 자신이 재배한 수박을 팔려고 했을 뿐이다. 하루 뒤에는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역시 수박을 팔던 농민이 도시관리원으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농민의 모습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과잉단속을 비난하는 여론이 빗발쳤다.

이처럼 중국 각지에서 억울한 사연의 민원인이 속출하고 있지만 이들의 호소를 들어줄 제도는 미비하다. 민원 해결차 각 지방 정부에 설치한 신방국(信訪局)이라는 조직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오히려 치부가 상부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한 지방 정부 신방국이 중국 지도부 거처인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를 찾아가려는 민원인들을 납치하는 사례도 있었다.

게다가 지난 1일 '현대판 신문고'로 선전했던 국가신방국(國家信訪局) 민원 사이트가 개설 첫날 민원 폭주로 서버가 다운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준비부족도 문제지만 사이트가 마비될 만큼 민원인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사회적 약자들이 모두 지씨처럼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도 없는 일이다.

13억 인구, 56개 민족을 유지해야 하는 고충도 있겠지만 중국 당국은 더 이상 공권력에만 의존하려는 노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질서를 힘으로 유지하려는 것은 나무로 불을 끄려는 것과 같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