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하르츠 개혁'으로 실업률 11.6% →7.1% 기적

머니투데이 베를린(독일)=류지민 기자 2013.07.0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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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세계는 일자리 전쟁중, 우리는...]<3부 2-1>독일을 중소기업 나라로 만든 비결

獨 '하르츠 개혁'으로 실업률 11.6% →7.1% 기적


지난 6월21일(목) 오후, 독일의 수도 베를린 쿠담거리에서 가장 큰 명품 백화점인 카데베(Kadewe) 백화점. 여유롭게 쇼핑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모자로 멋을 낸 할머니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독일에는 "노인 고객이 아니면 백화점은 모두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년층의 구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노인의 구매력이 많은 것은 은퇴 이후 받는 연금 덕분.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나이 들어 연금으로 안락한 노후를 보낸다'는 '독일식 인생계획'을 실천할 수 있다.



연금제도를 건드리는 건 정권을 걸어야 할 정도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2003년에 연금제도에 칼을 댄 간 큰 정치인이 있었다. 당시 슈뢰더 독일 총리는 '아젠다2010'과 '하르츠(Hartz) 개혁'을 단행했다. 임금 대비 연금 수준을 낮추고 연금 수령 나이를 늦추는 게 주요 내용. '우리 연금에서 더러운 손을 치우라'고 외치는 시위대를 뚫고 가까스로 의회를 통과했다.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하르츠 개혁 이전에 독일의 미래는 암울해 보였다. 기업들은 산별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인건비가 싼 해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협력 중소기업들이 연달아 무너지면서 독일 내 제조업은 공동화 현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실업자는 450만명을 넘어서고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0.1%)를 기록했다.



하지만 후임인 메르켈 총리가 공식적인 찬사를 보낼 정도로 슈뢰더의 개혁은 눈부신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고용증진을 위한 규제 완화 ▲1인 기업 창업 지원 ▲노동시장 유연화 ▲미니잡(minijob) 등 신규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에 대한 취업 인센티브 제공 등 노동시장 개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하르츠 개혁은 11.6%에 육박하던 실업률을 2010년 7.1%까지 끌어내렸다. 시행 이후 8년간 100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5년 만에 고용률 70%를 달성할 수 있었다.

기업의 해외이전이 줄어들면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동반성장의 기틀이 확립된 것은 하르츠 개혁의 또 다른 효과. 이를 계기로 고용 창출이 늘어난 중소기업은 독일 경제를 튼튼하게 떠받치는 버팀목으로 자리 잡게 됐다.


독일상공회의소에서 중소기업을 담당하는 더크 슈로트뵐러 성장실장은 성공적인 노동 정책의 사례로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를 꼽았다.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는 업황에 따라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제도.

일감이 초과근무가 많아졌을 때 근로자는 법정노동시간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고 나머지 수당을 저축해 놓는다. 불황이 닥쳐 일감이 줄면 이전에 저축해 놓은 수당을 받아 급여를 보전하거나 유급휴가에 들어간다.

더크 실장은 "불황기에 버틸 여력이 적은 중소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돈을 받지 않고 연장근무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근로자의 불만이 있었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원만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단 고용이 안정되고 나자 중소기업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기 시작했다. 독일 전체 기업의 99.6%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일자리의 70.9%, 법인세의 55.2%를 담당한다. 비슷한 비중인 국내 중소기업이 채 15%도 되지 않는 법인세를 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소기업이 '히든챔피언'이라 불리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독일의 중소기업 육성 노력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몇몇 대기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1300개가 넘는 히든챔피언과 350만개의 중소기업이 독일 경제를 견인하면서 위기상황에서도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강한 독일'의 밑거름이 됐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 노동시장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김현철 코트라 프랑크푸르트 무역관 부관장은 "하르츠 개혁은 생색내기용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한 과감한 정책이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특히 중소기업 일자리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하르츠 개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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