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우시 "꿈과 열정으로 성공 일궜죠"

머니투데이 우시(중국)=서명훈 기자 2013.06.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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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세계는 일자리 전쟁중…]<2부 2-3>쉬안잉즈(玄英子) 우시시 부국장 인터뷰

2004년 SK하이닉스 투자유치 당시 실무를 담당했던 쉬안잉쯔(玄英子) 우시(無錫)시 부국장./사진=서명훈 기자.2004년 SK하이닉스 투자유치 당시 실무를 담당했던 쉬안잉쯔(玄英子) 우시(無錫)시 부국장./사진=서명훈 기자.


“무슨 이런 다 죽어가는 회사를 유치하겠다는 겁니까?”
“회사를 살리겠다는 직원들의 열정이 저토록 강한데 반드시 살아날 겁니다.”

2004년 SK하이닉스 (179,300원 ▲3,900 +2.22%)의 투자유치 실무를 담당했던 쉬안잉즈(玄英子) 우시(無錫)시 부국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상황만 놓고 보면 SK하이닉스 유치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채무재조정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주력 제품인 D램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등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여기에 미국 정부는 자국업체인 마이크론의 요청을 받아들여 44.29%의 높은 상계관세를 부과한 상황이었다.

쉬안 부국장은 “SK하이닉스 상황이 안좋았었는데 실무자를 만나보니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감동을 받았다”며 “이런 사람들하고 함께 일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쉬안 부국장이 조선족 출신이어서 팔이 안으로 굽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우시시로 옮기기 전 지린성(吉林省) 창춘(長春)에서도 투자유치 업무를 담당했었다. 당시 한국 기업에서 받았던 인상은 SK하이닉스와는 정반대였다.

“직원들 월급도 안주면서 밤에 술 마시는 한국 기업인들을 여러 명 봤다. 2개 기업을 유치했는데 투자유치 업무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어쩌면 한국 기업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갖고 있던 터라 SK하이닉스가 더 신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를 유치하기로 한 것은 반도체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당시 우시시에는 중국내 1호 반도체 공장이 있었고 투자유치 업무를 담당했던 주요 책임자들이 이곳 출신이었다. 쉬안 부국장은 “SK하이닉스를 유치해 반도체의 꿈을 다시 실현해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시장은 유럽의 ST마이크론 공장을 직접 견학한 것은 물론 반도체 관련 서적만 6권을 읽을 정도로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SK하이닉스가 중국 진출 당시 ST마이크론이 2억5000만달러를 출자했었다. 지금은 SK하이닉스가 이 지분을 모두 매입한 상태다.

SK하이닉스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 결정이 내려진 것은 어쩌면 ‘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SK하이닉스는 5년간 세금을 전액 면제받았고 이후 5년은 50% 세금을 감면받았다. 또한 공장 건물도 국영기업이 건설해 임대해줬고 7억5000만달러의 신디케이트론(협조융자)까지 지원받았다.

그는 “은행들이 지방 정부 말을 잘 안 들어서 애를 먹었다”며 “국가개발은행(CDB)을 설득했고 그제서야 10개 은행이 신디케이트론에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SK하이닉스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4억5000만달러의 신디케이트론을 추가로 받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듯이 SK하이닉스를 대하는 은행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현지 법인 관계자는 “지금은 은행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대출해 주고 싶어서 만나달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귀뜸했다.

쉬안 부국장은 SK하이닉스 유치를 가장 보람찼던 일로 꼽는다. “가장 큰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게 목표였고 이걸 실현하는 게 우리의 할 일이다. 앞으로 SK 계열사가 더 많이 들어와서 관계가 강화됐으면 좋겠다” 그의 최근 희망사항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 우시 공장 옆에는 제2, 제3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부지가 넓게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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