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경영학과 입학생 70%가 꿈꾸는 이것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13.06.22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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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열전]<28> 김재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편집자주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설계사들이 있다. 이들은 불평등·환경훼손·인권침해·동물학대 같은 사회 문제를 사회적기업·협동조합·비영리단체·기업의 사회적책임 같은 활동을 통해 해소하자고 나선다. 사회를 바꾸는 아이디어의 실행자,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들을 머니투데이가 소개한다.

지난 4일 정부가 발표한 ‘고용률 70% 로드맵’엔 좀 낯선 단어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 ‘사회적 경제’가 그것이다. 정부는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조성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했다. 임금노동자의 0.4%가 사회적 경제 영역에 고용되어 있는 것을 2017년까지 2%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약 49만여 개의 일자리다.

사회적 경제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것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일까. 김재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49)을 서울 북창동의 커뮤니티카페 ‘스페이스노아’에서 만났다. 정부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을 2014년까지 사회적기업 육성·진흥 업무 수행기관에서 사회적 경제 통합 지원기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재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홍봉진기자 honggga@↑김재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홍봉진기자 honggga@


◇베네치아 천년 부흥의 비결 ‘콜레간차’

정부 자료는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를 이렇게 설명한다. “윤리적 입장을 갖는 기업 및 협동조합, 상호부조 조직, 자발적 조직들에 의해 수행되는 공적 목적의 경제 행위 일체.”



뜻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뭘 한다는 것일까. 앞으로 이 영역을 통합 지원할 기관으로 지목된 사회적기업진흥원의 김재구 원장은 경영학자 출신답게 사회적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를 역사 속 사례로 설명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를 보면, 베네치아 남자들은 사지만 건강하면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돈 한 푼 없어도 능력만 있으면 선장을 할 수 있었고 수익을 분배 받을 수 있었죠. 국가는 '콜레간차(연대)'라 불렸던 수익 분배 제도를 통해 서민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했어요. 이게 번영의 기반이 됐습니다.”

르네상스의 발원지로 꼽히는 베네치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번영한 도시국가였다. 오스만투르크제국이 무력으로 지중해를 장악할 때까지 11세기부터 무려 500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무역의 중심도시로 군림했다.


6세기에 아무 것도 없는 개펄에서 세워진 베네치아가 경쟁도시인 제노바를 제치고 무역권을 잡은 비결 역시 ‘콜레간차’에 있었다. 이것은 베네치아에 공동체주의를 발달시켰고, 베네치아의 공동체는 자신의 이익만 중시하는 제노바의 개인들을 이겼다.

“세익스피어 소설에 나오는 샤일록 같은 얼치기는 베네치아에 없었어요. 베네치아 상인들은 독특한 사업 수익구조를 발달시켰죠. 내 배가 있더라도 다른 배에 분산투자했어요. 또 화주(화물 주인)과 선주가 수익을 배분했죠. 만약 선장이 투자자본을 못 대더라도 수익의 4분의 1을 나눠줬어요. 대자본가, 대상인이 이익을 독점하지 않고 중소상인, 서민과 나누게 만든 체제가 베네치아를 ‘부의 도시’로 키웠습니다.”

◇사회적기업은 누룩...사회 변화시킬 것

황량한 개펄에서 무역 중심 도시로 성장한 베네치아의 경험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제를 일으킨 한국에 시사점을 준다.

그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우리 경제에서 베네치아의 ‘콜레간차’ 같은 일을 해낼 것이라고 봤다. 돈이 없더라도 더 많은 개인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도록 해 국가 공동체 차원의 번영을 가져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재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홍봉진기자 honggga@↑김재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홍봉진기자 honggga@
“인류를 진보시킨 시장의 장점은 자유, 자율을 증진시켜 창의를 일으키고 생산력을 극대화해준 것입니다. 사회적 경제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둑을 터줄 것입니다. 사회적 경제는 우리가 갈 수밖에 없는 길입니다.”

그는 2010년 대통령실 사회적기업TF 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박병옥 당시 청와대 서민정책비서관에게 다양한 협동조합을 쉽게 결성하는 길을 터주자고 제안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정부와 민간 합동의 정책 연구가 시작되었고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 공표됐다.

그는 사회적기업이 3가지 원칙을 지켜야 발전한다는 점에서 협동조합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관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할 것. 혁신으로 지역을 재생할 것,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가질 것.

몬드라곤 등 성공한 협동조합처럼 성공한 사회적기업은 지역사회를 바꾸는 데에 성공한다. 그라민은행은 방글라데시 빈곤층에 신용을 제공해 금융뿐 아니라 사회를 바꿨다.

“사회적기업은 기업의 힘으로 사회를 혁신할 수 있는 놀라운 틀입니다. 적은 양이더라도 다른 것과 섞이면 변화를 일으키죠. 누룩처럼요. 전 사회적기업이 대기업 등 다른 기업까지 변화시키는 누룩 같은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는 1995년 '조직의 전략 변화가 조직 사멸에 미치는 영향'으로 박사 논문을 쓴 이래 18년 동안 기업의 흥망을 가르는 조직생태가 무엇인지 연구했다. 사회적기업은 그에게 가장 가슴 뛰게 하는 조직생태의 현장으로 보였다.

↑김재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이 커뮤니티카페 '스페이스노아'에서 소셜벤처와 사회적기업 창업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홍봉진기자 honggga@↑김재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이 커뮤니티카페 '스페이스노아'에서 소셜벤처와 사회적기업 창업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홍봉진기자 honggga@
◇“불구경보다 재밌는 건 사람 변화시키는 구경”

인터뷰 중, 특이한 훼방꾼들이 나타났다. 소셜벤처 창업을 꿈꾸는 예비 사회적기업가들에게 한 말씀해달라는 청이 들어온 것이다. 스페이스노아에선 마침 7월10일까지 참가신청을 받는 소셜벤처경연대회 설명회가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그는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마이크를 잡았다.

"서울대 경영학 교수를 하는 제 친구가 올해 입시 후 이런 말을 하더군요. 면접 때 경영학을 선택한 이유를 물으니 70%가 사회적기업가가 되고 싶어 지망했다고. '그거 대치동 족보 아니냐'며 농담으로 넘기긴 했지만, 실은 좋은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적기업은 그냥 기업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멋진 기업이니까요."

그는 "물 구경, 불 구경보다 재밌는 게 사람을 변화시키는 구경"이라며 "소셜벤처기업가의 길을 선택한 여러분이 사회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를 내려놓고 자리로 돌아온 그는 "전통적인 경영학에선 사회의 물결을 거스르는 건 비즈니스에 치명적이라고 가르치지만, 사실 진보를 만드는 건 사회적기업가처럼 물결을 거스르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이라며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덧붙였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킨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사람은 고집스럽게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 한다. 그래서 모든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팁]사회적기업과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기업과 사회적협동조합은 지배구조는 다르지만 '공적 목표로 운영되는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업행위를 통해 이윤이 생기면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재투자한다.

국내에서 사회적기업은 사회적기업육성법에 의해 규정된다. 국내 법은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여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 · 판매 등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을 사회적기업으로 본다.

사회적협동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에서 △지역주민들의 권익, 복리 증진 등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혹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이라고 정의한다.

두 조직의 공통점 또 하나는 수익 배분의 제한에 있다. 정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려면 이윤의 2분의 3 이상을 사회적 목적 실현에 재투자해야 한다.

인가 받은 사회적 협동조합은 배당이 금지된다. 잉여금이 생기면 30% 이상 법정 적립금으로 적립하고 남은 잉여금은 모두 임의적립금으로 쌓아둬야 한다.

이 두 조직의 육성, 진흥 업무는 사회적기업진흥원이 맡고 있다.

사회적기업이란? 설명 더 보기
사회적 협동조합이란? 설명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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