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커피엔 '문화도 두스푼'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13.06.0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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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개성 강한 이들이 분위기를 마시는 곳, 홍대 커피로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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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상권, 홍대가 세를 불리고 있다. 먹물이 화선지에 번지듯 서서히 퍼지는 변화다. 이 변화를 주도하는 업종은 단연 카페다. 업계에 따르면 홍대 앞 주변상권에서 운영 중인 카페 수는 대략 300개다. 하루가 다르게 업종이 변경돼 정확한 수치는 가늠하기 힘들다.

일찌감치 유흥시설과 의류매장에 의해 요충지를 점령당한 카페는 새로운 땅을 찾아나섰다. 그렇게 침투한 곳이 인근의 주택가다.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거리면서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 상수동·동교동·연남동 일대다.



◆홍대 중심을 벗어난 상권 4곳

홍대 앞 서교로나 걷고싶은 거리, 와우산길 주변이나 주차장길, 피카소 거리, 상상마당 인근 등 홍대 주변은 일찍부터 A급 상권으로 꼽힌 곳이다. 이들 거리 사이의 골목길조차 포화상태가 되자 상권은 보폭을 늘려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냈다.



이 상권을 떠나 처음 개척된 곳은 산울림소극장 옆길인 다복길이다. 흔히 커피프린스길 또는 거리로 통한다. 2007년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성공을 거두면서 촬영지인 이곳이 유명세를 탔다.

커피프린스길이 홍대 앞 상권의 서쪽 팽창지역이라면 동쪽은 단연 합정동이다. 흔히 합정동 카페골목 혹은 합정동 가로수길이라 부르는 이 길은 독막로의 홍대쪽 이면도로다. 2008년 이후 상권이 형성되면서 지금은 한집 건너 하나씩 카페가 있을 정도로 명소가 됐다.

커피프린스길과 합정동 카페골목이 모두 홍대앞 상권에서 대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확장됐다면 상수동 토정길 이면도로(당인리발전소 앞)나 연남동 동교로 뒷길은 홍대 상권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하철 6호선 상수역과 합정역을 잇는 독막로, 2호선 합정역과 홍대입구역을 잇는 양화로 건너편에 위치한 것이 앞선 두 카페거리와 다른 점이다.


홍대 커피엔 '문화도 두스푼'
홍대 커피엔 '문화도 두스푼'
◆발전소 앞 주택가, 카페거리로 변모

홍대 앞 명물이던 '이리카페'가 상수동 토정길 이면도로로 자리를 옮긴 것은 2009년 8월이다. 산울림소극장 근처에서 5년 동안 명성을 쌓으면서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지만 건물주가 임대를 거부해 울며 겨자먹기로 밀려났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라 5년 이후에는 임대인이 계약연장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은 임대료를 찾아 자리를 옮긴 이리카페는 팬심에 힘입어 어렵지 않게 상수동에 정착했다. 옮겨올 당시만 해도 상권이 형성되지 않았던 이 골목은 이리카페의 성업에 힘입어 현재 20개가 넘는 카페 골목으로 변모했다.

카페명이 된 이리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황야의 이리>에서 따왔다. 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드러머 출신인 김상우 이리카페 사장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고독한 이리의 이미지가 떠올라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리카페가 명성을 떨친 이유는 다양한 문화활동을 지원하고 있어서다. 미리 신청하면 영업이 유지되는 수준에서 낭독회나 전시회, 음악회 장소로 공간을 내준다. 물론 무료다. 버스킹을 하는 거리음악가가 종종 즉흥연주를 하기도 한다. 신치림의 멤버 하림이나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김경주가 단골손님이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8개의 액자에는 한 사진작가의 '피를 잔뜩 머금었던 모기의 압사 사진'이 생생하게 전시돼 있다.

이리카페가 자리를 잡으면서 인근에 20개 안팎으로 카페가 더 생겼다. 상권의 개척자라는 자부심도 있을 법하지만 김 사장은 고개를 젓는다. 또 다시 임대료 상승이 우려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이곳은 4년만에 임대료가 2배로 올랐다. 점차 임대료 상승기간이 짧아지고 있어 우리는 또 새로운 곳을 찾아나서야 한다"며 "결국 건물주만 이득을 챙기겠지만 우리가 나간 자리에 문화는 없고 유흥주점만 생기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의 자녀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홍대 커피엔 '문화도 두스푼'
홍대 커피엔 '문화도 두스푼'
◆출판업계의 카페 창업 활발

최근 2년간 홍대의 새로운 카페문화 코드가 있다면 출판사의 홍대 진출이다. 줄잡아 10곳이 홍대 인근에 카페를 열었다.

선두주자는 문학동네의 '카페 꼼마'다. 꼼마는 쉼표, 즉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다. 2011년 3월 주차장길 인근에 1호점을 연 이후 2012년 6월 동교동3거리에 2호점을 열었다.

카페 꼼마의 인기비결은 유명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신경숙 작가나 안도현 시인 등이 이곳에서 독자와 교류한다. 문재인 의원도 대선후보 시절 이곳에서 행사를 갖기도 했다.

실내 인테리어도 독특하다. 벽면으로 15단에 이르는 대형책장에 빼곡하게 책이 정리돼 있고 반대쪽 대형유리창 쪽 바닥은 계단식으로 꾸몄다. 그 옆으로 면학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독서실용 책상이 있다. 1인 이용자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카페 꼼마 2호점도 성공하자 올 4월 인근에 '꼼마 앤 브레드'라는 빵집도 열었다.

카페 꼼마의 성공은 죽어가던 출판업계에 강한 자극이 됐다. 2월 창작과비평사가 서교동교회 인근에 '인문카페 창비'를, 3월 후마니타스가 합정동 카페골목에 '책다방'을 차례로 열었다. 이밖에 문학과지성사는 커피프린스길에 'KAMA'를, 자음과모음사는 서교동성당 인근에 '자음과모음'을 내고 출판사 카페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출판사 카페는 자사의 도서(리퍼브책 포함)를 20~50% 할인 판매해 1석2조의 효과도 거두고 있다.

◆동교동3거리 신흥 상권으로 각광

카페 꼼마는 출판업계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카페 꼼마 2호점이 들어선 이후 연남동 동교로 뒷길로 점차 상권이 확대되는 추세다.

이슬기 까페 꼼마 2호점장은 "처음엔 이쪽에 손님이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며 "이쪽 상권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카페 꼼마 2호점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기존 상권과 동떨어져 있지만 넓은 공간이 필요해 선택한 것이 지금은 이 지역의 핫플레이스가 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상당수 카페 운영자들은 경의선 폐철로 부지에 주목하고 있다. 공원이 조성되면 뜨겁게 달아오를 지역이라는 견해다. 일찌감치 인기를 직감한 주변 건물 임대인들은 벌써부터 몸값(?) 올리기에 열을 내고 있다.

장춘익 대한공인중개사 대표는 "지하철 2호선과 공항철도 홍대입구역, 경의선이 연결된 트리플 역세권이 형성되면서 동교동3거리 인근 상권의 활성화 여건이 만들어졌다"며 "점포에 대한 문의가 지난해에는 한달에 1∼2건에 불과했으나 요즘엔 20~30건에 이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한정된 물건과 높은 권리금 탓에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많다. 장 대표는 "골목길에 위치한 20평대 미만의 소규모 점포도 4000만원까지 권리금이 형성돼 있고 기존 주택을 상점으로 리모델링 할 곳도 없어 거래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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