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은퇴에 부쳐-청산유수(靑山流水)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2.12.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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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호의 체인지업]

↑'코리안 특급' 박찬호(39,한화)가 19년간의 야구 인생을 마쳤다. 박찬호는 지난 11월 30일 서울 플라자호텔 다이아몬드홀 22층에서 은퇴 관련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 OSEN↑'코리안 특급' 박찬호(39,한화)가 19년간의 야구 인생을 마쳤다. 박찬호는 지난 11월 30일 서울 플라자호텔 다이아몬드홀 22층에서 은퇴 관련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 OSEN


박찬호(39)가 서울 플라자 호텔서 공식 기자회견을 하는 날 필자는 일터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음에도 차마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무엇인가 가슴이 텅 빈 듯하고 많은 일들이, 추억이 때로는 아픔이과 기쁨이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눈 앞에 영상처럼 펼쳐지기도 하고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래서 TV 중계로 보려고 했는데 앞 부분만 보여주고 대통령 선거 관련 뉴스로 넘어 가 박찬호가 중반 후반에 어떤 얘기를 했는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에서 메이저리그 현장에서만 9년을 함께 한 대투수 박찬호가 은퇴를 했습니다.

제게는 액자에 넣어져 있는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시절 글이 하나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 제목은 ‘박찬호의 100승에 부쳐-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입니다. 당시 저는 업무 상 칼럼을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후배들이 6년을 넘게 메이저리그 현장에서 박찬호를 보았는데 100승에 대한 상념을 독자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권을 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리고 후배 기자들이 글이 게재된 신문 지면을 액자에 넣어 제게 선물해줘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박찬호가 은퇴 기자 회견을 한 주말 저는 7년 전인2005년 6월5일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째를 달성했을 때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일간스포츠 2005년 6월7일자에 실렸던 그 글을 올려 봅니다.

[박찬호의 100승에 부쳐-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자면 못 일어날 것 같아 TV를 켜둔 채 새벽 2시쯤에는 아예 술을 한 병 땄습니다. 경기가 시작되는 3시까지 졸지 말고 차라리 마시면서 기다리자는 심사였습니다. 시작할 때는 창밖이 어둠으로 휩싸여 있었는데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 대기록이 확정된 순간에는 초여름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젖은(?) 눈을 비비는데 갑자기 머리속에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겁니다.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박찬호 환자(患者)’ 혹은 ‘박찬호 교도(敎徒)’라는 증거에 다름 아니니까요.

1997년 메이저리그 특파원을 시작해 2002시즌 후 일간스포츠 편집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오래 박찬호와 함께 했습니다.

한 개인으로 볼 때 가장 힘이 넘쳤고 의욕적이었으며, 훗날의 세상살이를 위해 많은 분들을 만나야 할 시기에 저는 사실상 박찬호, 단 한 선수를 취재하며 메이저리그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귀국 후 한 때 너무 오래 있었다는 후회도 했습니다. 6년이란 긴 시간 동안 알게 된 사람이 박찬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00승 장소인 캔자스시티도 그 덕분에 가보았기에 경기 내내 현장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숲이 유난히 많았던 전원 도시에 박찬호와 함께 간 한국 식당이 있고, 자장면을 파는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더니 박찬호는 벌써 다녀갔다며 주인이 웃던 기억, 다른 선수들은 많이 눈에 띄었는데 박찬호만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카지노...

저는 박찬호의 야구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두 번 반대를 했습니다.

첫 번째는 그가 한국인에게 불가능의 영역이었던 메이저리그로 자신을 인도한 에이전트 스티브 김과 결별하고 스캇 보라스와 손을 잡을 때입니다. 깊은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메이저리그라는 정글을 함께 개척한 두 한국인이 헤어진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두 번째는 LA 다저스를 떠나 텍사스로 이적할 때입니다. 그 때는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나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데 어쩌겠느냐”고 되물어 저도 할 말은 없었습니다. 100승을 거둔 지금 과연 그 때의 제 반대가 옳은 판단이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 1999년 플로리다 베로비치에서 열린 스프링캠프 당시 사진이다. 왼쪽 카트를 타고 있는 분이 박찬호의 양아버지이기도 한 토미 라소다 전 감독이다. 오른쪽의 박찬호에게서는 26세 청년의 환한 모습이 느껴진다. 변함없이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가지만 세월이 주는 흔적을 막을 수는 없다.ⓒ 스타뉴스 자료사진↑ 1999년 플로리다 베로비치에서 열린 스프링캠프 당시 사진이다. 왼쪽 카트를 타고 있는 분이 박찬호의 양아버지이기도 한 토미 라소다 전 감독이다. 오른쪽의 박찬호에게서는 26세 청년의 환한 모습이 느껴진다. 변함없이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가지만 세월이 주는 흔적을 막을 수는 없다.ⓒ 스타뉴스 자료사진
현재까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100승 인생은 2기(期)로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1기(期)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시기로 그 때 박찬호는 부와 명예, 그리고 화려함을 좇았습니다. 매스컴의 끝없는 주목을 받으면서 한때는 ‘오만해졌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부상으로 인한 부진 등으로 대중의 주목 밖으로 숨더니 어느 날 갑자기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라는 말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텍사스에서 값진 승리를 거둔 후 인터뷰 도중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말을 한 것입니다. 숭산 스님과의 만남이 있었다는 것은 후에 알았습니다.

그 말은 지난 해(2004년) 11월30일 입적한 숭산 스님의 말씀입니다. 박찬호는 6차례 큰 수술을 한 하용조 목사(작고)와도 만나는 등 계속 자신의 사고 영역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박찬호는 한 때 ‘도사(道士)들’의 말을 듣고 침대 방향까지 정하고 집 정원에 복숭아 나무를 심었고, 그늘을 드리워주던 아름드리 나무를 베기도 했지요.

박찬호에 대한 회상으로 하루를 보낸 저녁 생각했습니다. 6년을 함께 했지만 저는 아직도 그의 그릇 크기를 모른다고. 때로는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는 그의 말이 가식처럼 들렸습니다. 박찬호도 배신을 할 수 있고 부와 명예밖에 모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누구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IMF 시절 박찬호는 국민에게 희망이었습니다. 그 때보다 더 어렵다는 지금 그는 노력하면 다시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우리 모두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제 박찬호가 조국에 ‘누구나 가슴으로 안을 수 있는 푸른 나무’를 심어주기를 기대합니다./이상

◇ 변함없는 청산유수(靑山流水)

100승을 거둔 후 박찬호는 124승으로 아시아 출신 투수 메이저리그 최다승 기록을 세웠고 일본 프로야구를 거쳐 고향 팀 한화에서 한 시즌을 뛰고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한 시즌 정도 더 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지금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움이 남을 때가 떠나야 할 때입니다.

100승을 거뒀을 때까지가 2기(期)라면 그 후 은퇴까지가 제 생각으로는 박찬호의 야구 인생 3기(期)라고 봅니다.

이제 그는 선수가 아닌 위치에서 4기(期)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00승을 거뒀을 때와 현재의 박찬호는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다만 변함없이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가는 것 아닌지요? IMF때와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 서민들의 삶이 힘 들다 는 것까지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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