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2012.09.2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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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16>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론이 배를 타고가다 사나운 폭풍을 만났다. 집채만한 파도가 단숨에라도 배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 몰려오자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때 피론은 공포에 사로잡힌 승객들에게 평화로운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 있는 돼지 한 마리를 보여주었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이 우화를 소개하며,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는 이성이 오히려 평정을 잃게 하고, 지식이란 것이 우리의 처지를 피론의 돼지보다 더 못하게 만든다면 이성과 지식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의 지성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주식시장에서는 특히 두려움을 아주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터부시한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야말로 성공투자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두려움은 정말로 나쁜 것이고 반드시 버려야 하는 장애일까?

두려움은 고통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으면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고통은 아주 아프고 견디기 힘든 증상이다. 고통은 그래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고, 다음부터는 재빨리 피하려고 한다.



이때 두려움이 작용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신호다. 그 상황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겠다고 인식하고,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통과 두려움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해를 주는 장애가 아니라 정상적인 방어체계다.

만일 고통과 두려움이 없다면 치명상을 입거나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날 때부터 고통의 감각을 갖지 않고 태어나는 극소수 사람이 있는데, 대부분 서른 이전에 죽는다고 한다.

거피라는 물고기를 대상으로 실험한 사례도 있다.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보이는 반응을 기준으로 거피를 세 무리로 나눴다. 눈에 띄기만 하면 무조건 숨거나 달아나는 겁쟁이 무리, 힐끗힐끗 눈치를 살피며 도망을 준비하는 보통의 무리,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대담한 무리, 이렇게 세 무리의 거피와 농어를 수조에 넣고 6시간 후 거피의 개체 수를 확인해보니 겁쟁이 무리는 40%, 보통의 무리는 15%가 남은 반면 대담한 무리는 단 1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수렵생활을 한 우리 인간의 조상을 생각해보자. 사냥감을 쫓아 숲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덤불에서 나뭇가지가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부러졌거나 원숭이 같은 작은 동물이 건드린 것일 수도 있고, 호랑이가 다가오는 중일 수도 있다. 이제 계속해서 사냥감을 쫓을 것인지, 아니면 사냥감을 포기하고 전속력으로 달아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호랑이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는 대담한 성격이라거나 혹은 바로 코앞에 있는 사냥감이 아까워서, 게다가 지난번에도 그런 소리가 들렸는데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달아나지 않은 우리의 조상들은 결국 다 죽었다. 나뭇가지가 부러진 열 번 가운데 한 번만 그것이 호랑이가 다가오는 신호였다 해도, 아홉 번 잘 피하고 한 번 잘못 걸려 잡혀 먹힌 것이다.

그런데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면 무조건 줄행랑을 친 조상은 살아남았다. 이들은 미래를 낙관하지도, 현재 하는 일(사냥)에 몰입하지도 않았다. 잘못된 정보일지언정 일단 위험에서 벗어났다. 쫓던 사냥감도 버릴 만큼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이들이 바로 지금의 우리에게 유전자를 남겨준 조상이다. 이 유전자는 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며 살아가는 게 좋다고 우리에게 명령한다. 두려움은 이렇게 조상 대대로 내려온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우선 두려움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두려움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다. 문제는 두려움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이지, 두려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두려워는 하되 패닉에 빠지지 않으면 된다. 만용은 두려움을 모르는 데서 나오고, 무모한 행동은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리분별 없이 함부로 덤볐다가는 그것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신중한 판단과 지혜로운 행동은 두려움을 아는 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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