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김기태-이만수감독과 '야구의 예의'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2.09.22 10:05
글자크기
↑ 김기태(사진 오른쪽) 감독은 지난 12일 SK(감독 이만수, 사진 왼쪽)와의 잠실경기에서 0-3으로 뒤진 9회말 2사후 갑자기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내보내 파장을 일으켰다. ⓒ사진제공= OSEN <br>
<br>
↑ 김기태(사진 오른쪽) 감독은 지난 12일 SK(감독 이만수, 사진 왼쪽)와의 잠실경기에서 0-3으로 뒤진 9회말 2사후 갑자기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내보내 파장을 일으켰다. ⓒ사진제공= OSEN



LG 김기태(43) 감독과 SK 이만수(54) 감독이 모두 야구 인생에 큰 상처를 입었다.

LG 김기태 감독은 12일 잠실 구장에서 열린 SK전에서 0-3으로 뒤진 9회말 2사2루 추격 기회 때 느닷없이 고졸 신인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내세워 패배를 자초한 뒤 다음 날 스스로 ‘져주기’를 인정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SK 이만수 감독의 야구 스타일과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하고, 자기 팀 선수단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감독으로서 결단을 내렸다고 소신 있게 말했다.



그런데 감독이 ‘져주기를 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사태가 심각해졌다. LG 구단도 당황했다. 정상적인 투수 로테이션을 하고서도 상대 팀(감독?)을 마치 조롱한 것처럼 비난을 받은 SK 이만수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보다 무려 11살이나 어린 야구 후배가 패배까지 감수하며 흔히 하는 말로 들이댔다.

다행히 프로야구의 운영 중심 기구인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수습에 나섰다. 김기태 감독이 해명을 한 다음 날 오전 11시 상벌위원회를 개최해 감독에게 벌금 500만원과 엄중경고, LG 구단에도 엄중 경고 징계를 내렸다.



◇ KBO의 신속한 징계... 김기태도 살고 LG도 살았다

우리 프로야구 역사상 감독에게 내려진 징계 중 가장 엄한 것이었다. 사실 그 전만해도 구본능 KBO 총재가 LG가(家)인데 설마 징계를 하겠는가 회의적인 분위기 였고 대부분의 기자들은 14일 오전 11시 긴급 상벌위원회 개최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KBO의 냉철하고 엄정한 징계가 전격적으로 발표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김기태 감독은 자신의 행동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인정한 감독이 되면서 팀이 다시 뭉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일각에서 나왔고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을 비롯해 삼성 류중일 감독 등 일부 현장에서는 KBO의 징계가 가혹하다는 견해를 보이며 KBO가 감독의 고유 영역인 선수 기용에 대해 간섭할 권한이 있는가를 지적했다.

그런데 간과한 부분이 있다. KBO가 빠르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몰고 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감독의 권한이나 상대와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감독이 경기 포기를 인정했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승부 조작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지난 겨울 볼넷과 같은 기록 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이 영구 제명을 당하기까지 했다.

기록 조작 사건을 계기로 금년 시범 경기 기간 중 법무부와 한국야구위원회가 공동으로 승부 부정 방지법 교육을 실시했다. 강사로 초빙된 손영배 부부장검사는 ‘승부 조작은 대가를 받지 않아도,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범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스포츠 토토 복권 관련 부정 방지 교육도 이어졌다. 김기태 감독의 대타 기용은 스포츠 토토 복권의 팀 승패와 점수 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였다.

따라서 KBO의 빠르고도 강력한 징계는 김기태 감독과 LG 구단, 더 나아가 프로야구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과 이만수 감독에게 여전히 아쉬운 점이 남아 있다.

◇ 타이거 우즈와 트레버 이멜만, 그리고 깨끗한 승복

골프 세계 최강자였던 타이거 우즈가 지난 2008년 4월13일 막을 내린 PGA 2008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에서 전문가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4라운드 내내 무명의 선두 트레버 이멜만을 위협해보지 못한 채 2위에 그쳤는데 이틀 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우즈가 15일 유타주 파크 시티에 있는 '헬스사우스 서저리 센터'에서 왼무릎 연골 관절경 수술을 받은 것이다. 그는 예정돼 있던 수술 일정을 마지막까지 비밀에 부쳤다. 왜 타이거 우즈는 자신의 수술 계획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을까?

만약 우즈가 2위로 마친 최종 라운드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15일 수술을 받게 된다'고 발표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무명 골퍼 트레버 이멜만의 인간 승리는 '우즈의 수술' 소식에 묻혔을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골프 팬들 중 그 누구도 이멜만을 마스터스 챔피언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동의 세계 랭킹 1위인 우즈가 무릎이 아파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이멜만이 우승할 수 있었구나'라고 다들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즈는 대회 최종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틀 후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을 함구했고 어떤 핑계도 대지 않은 채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아울러 트레버 이멜만의 우승을 존중해주고 그가 가족, 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세계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 스캇 보라스의 치졸한 행동

보스턴과 콜로라도가 격돌한 2007년 월드시리즈 최종 4차전 6회 경기 도중 뉴욕 양키스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가 갑자기 양키스 구단에 로드리게스의 자유 계약 선언을 통보해 메이저리그 최고의 잔치에 찬물을 끼얹었다.

우승팀 보스턴은 물론 팬들, 미 스포츠계 전체가 분노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선수 한 명의 이익을 전체의 선(善)보다 우선시한 치졸한 행동'이라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야구도 스포츠이다. 스포츠에는 지켜야 할 ‘예의(禮儀)’가 있다. 야구에 대한 예의는 승패와 개인의 명예, 자존심을 떠나 반드시 존중돼야 하는 것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