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돈카츠' 박찬호와 '미역국' 이정훈의 추억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2.09.0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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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한화 이글스 투수 ⓒ사진제공=OSEN↑박찬호 한화 이글스 투수 ⓒ사진제공=OSEN


최하위 한화에서 팀을 위해 지친 몸으로 버티고 있는 박찬호(39)에게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각별했던 음식이 하나 있다. 지난 2008년 6월28일 LA에서 아내 박리혜씨가 해준 점심인데 돼지고기로 만든 ‘돈카츠’였다.

1982년 김재박의 ‘개구리 점프 번트’ 아직도 올드 팬들의 기억에 생생한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이후 무려 30년 만에 서울에서 열린 제25회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끈 이정훈(49) 감독은 대회 기간 중 특별한 경험을 했다. 역시 음식인데 바로 ‘미역국’이었다. ‘돈카츠’와 ‘미역국’은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박찬호, 이정훈 감독과 어떤 인연을 맺고 추억을 남겼을까.



박찬호는 2007시즌 뉴욕 메츠에서 겨우 1경기에만 선발 등판해 4이닝 동안 6피안타(2홈런) 7실점으로 패배를 기록한 뒤 곧 바로 팀에서 방출 당했다. 이후 계속 마이너리그에 머물렀고 더 이상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해 결국 그대로 마운드를 떠날 수도 있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런 처지의 박찬호를 안은 팀이 바로 친정팀 LA 다저스였다. 박찬호는 2008시즌 LA 다저스에서 선발 5경기를 포함해 54게임에 등판해 4승4패 평균 자책점 3.40을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화려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를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 해 6월28일 박찬호는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의 인터리그 프리웨이 시리즈에 선발 등판해 6이닝 산발 4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 역투로 시즌 3승째를 따냈다. 이 승리는 그가 샌디에이고 시절이었던 2006년 7월26일 LA 다저스전 이후 거의 2년 만에 거둔 선발 승리여서 감격은 더 컸다. 최고 구속도 무려 시속 96마일(154km)이 나왔다.

경기 후 박찬호에게 2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박찬호는 인터뷰를 ‘영어부터 할까, 한국어 먼저 할까요’라며 오랜만에 여유를 보여주었다. 이 날 박찬호와 인터뷰한 내용은 필자에게도 인상적으로 기억돼 있다.


박찬호는 둘째를 임신중이었던 아내 박리혜씨 얘기를 먼저 꺼냈다. ‘승리가 확정 된 후 그라운드에 나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박찬호는 “사실 요즘 딸 애린(당시 2세)이 일찍 일어나 내가 아침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런데 오늘은 아내가 새벽에 딸을 데리고 나가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점심에 ‘돈카츠’를 해주었다. 돼지고기로 만든 돈까스인데 일본어로 ‘카츠’에 승리의 뜻이 있어 오늘 꼭 이기라고 ‘돈카츠’요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사실 선발 등판하는 날 점심으로 먹기에 돈까쓰가 부담스럽기도 했으나 아내의 정성을 생각하며 많이 먹었다. 아내의 정성과 노력이 고마웠다”고 대답했다.

박찬호에게 ‘돈카츠’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결국 승리를 따냈다.

↑ 이정훈 청소년야구 대표팀 감독 ⓒ사진제공=OSEN↑ 이정훈 청소년야구 대표팀 감독 ⓒ사진제공=OSEN
‘미역국’은 어떤가. 이정훈 감독은 제25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예선리그 베네수엘라와의 1차전에서 2-1로 힘겹게 승리한 뒤 다음 날인 9월1일 강력한 우승 후보인 미국과 맞붙게 됐다.

그런데 이날 아침 숙소인 호텔에서 제공한 음식 중 하나가 ‘미역국’이었다. 이정훈 감독은 불길했다. ‘미역국 먹다’는 패배, 혹은 낙방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정훈 감독은 관계자들에게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냐’며 질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미역국’이 아니었다. 한국은 1회초 수비에서 1실점을 하고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2회 1-1 동점, 3회 3-1로 리드를 잡은 뒤 8-2로 낙승했다. 만약 이날 한국이 패했다면 아마 별다른 생각 없이 ‘미역국’을 메뉴로 내놓은 호텔 측이 큰 원망을 샀을 것이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초반에는 등판을 앞두고 육개장을 즐겨 먹었다. 대체로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선동열 KIA 감독은 해태 시절 주로 ‘짬뽕’으로 속을 풀고 마운드에 올라 불 같은 패스트볼과 특유의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압도 했다.

한국-콜롬비아전 시구를 위해 목동구장을 찾았던 ‘불사조’ 박철순은 선동열의 슬라이더에 대해 “보통 투수들의 슬라이더가 길게 휘어져 들어오는데 선동열은 패스트볼처럼 오다가 타자 앞에서 갑자기 꺾여 정말 치기 어려웠다. 선동열 만이 던질 수 있는 슬라이더로 그런 공이 있으니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승부의 세계에는 많은 금기들이 존재하고, 징크스도 있으며, 행운을 불러오는 자신만의 특별한 것들이 있다. 음식은 승패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미역국을 먹고도 시원하게 승리를 한 것을 보면 음식은 단지 음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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