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승엽은 했고 찬호는 안한것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2.07.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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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기만 삼성,한화, LG, KIA 4개팀 잇달아 삭발단행... 31년 역사상 최다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반환점을 상징하는 올스타전 휴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프로야구 10구단 창단 추진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모든 구단들이 전반기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2 프로야구 전반기는 독주하는 1강이 없는 상태에서 혼전을 거듭했다. 8개 팀이 7중1약을 형성하다가 막판에 삼성이 조금 앞서가는 모양을 보이고 있다. 전례를 찾아 보기 어려운 순위 다툼에 언제 뒤집어질지 알 수 없는 경기들이 속출해 한국프로야구 수준이 ‘하향 평준화’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31년째인 프로야구 역사에서 가장 많은 팀들의 삭발이 전반기에 단행됐다는 것이다. 연승 연패가 유난히 이어진 분위기와 맞물려 팀 연패가 길어지면 각 팀에서 삼삼오오 삭발하는 선수들이 속속 등장했다.

한편으로는 전반기 막판 충격적인 연패에 빠진 SK는 이만수 감독이 선수들에게 삭발은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 눈길을 끌었다.



짧고 단정하게 깎는 것은 좋지만 완전히 밀지는 말라고 했다. 감독이 나서 선수들의 삭발을 금지하는 것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어떤 프로 팀 선수단의 복장 용모 규정에도 삭발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초 성적 부진에 머리를 바짝 밀고 나타났던 삼성 4번타자 이승엽(사진 왼쪽)과 배영수. ⓒ사진= OSEN 제공↑지난 6월초 성적 부진에 머리를 바짝 밀고 나타났던 삼성 4번타자 이승엽(사진 왼쪽)과 배영수. ⓒ사진= OSEN 제공


올 시즌 삭발의 시작은 의외로 지난 해 한국시리즈와 아시아시리즈를 석권한 삼성이었다.

최강의 전력을 가지고 있어 한국시리즈 2연패가 가능하다는 것이 삼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는데 초반에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급기야 목동에서 벌어진 넥센전에서 3연패를 당한 후인 5월21일 최고참 급 간판 포수 진갑용이 삭발을 하고 나타났다.

연이어 일본에서 돌아온 이승엽도 머리를 자르는 등 결연한 의지를 보여 삼성은 상위권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UTU(Up Team is Up)’,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최하위 한화는 6월19일 간판타자 김태균까지 삭발에 가세하며 탈꼴찌에 나섰으나 분위기 반전에 실패했다.

‘UTU’의 반대인 ‘DTD(Down Team is Down)’라는 한국식 영어 신조어에 비유되는 LG도 삭발까지 감행하며 5할 승률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졌는데 속절없이 5할에서 멀어졌다.

선동열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KIA도 의외의 부진을 보이자 선수들이 삭발을 했다.

단순 수치로도 선수단에 삭발 바람이 분 구단이 삼성 한화 LG KIA 등 전체 8개 팀 중 4개 팀에 달한다.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역대 최다 수치인 것 같다. 다만 아직은 감독까지 삭발한 팀은 없다.

↑한화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서 124승을 거두는 동안 어려움에 처하면 간혹 삭발을 하기도 했으나 국내에선 아직 선보인 적이 없다. 올 프로야구엔 선수들의 '삭발' 열풍이 불고 있지만 사실 삭발과 성적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 ⓒ사진= OSEN 제공↑한화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서 124승을 거두는 동안 어려움에 처하면 간혹 삭발을 하기도 했으나 국내에선 아직 선보인 적이 없다. 올 프로야구엔 선수들의 '삭발' 열풍이 불고 있지만 사실 삭발과 성적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 ⓒ사진= OSEN 제공
예상을 했는데 안 한 선수는 한화의 박찬호이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124승을 거두는 동안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곧잘 삭발을 한 바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지난 2007시즌 5월 아주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뉴욕 메츠 담당 기자들이 ‘지구 상에서 가장 비싼 연봉을 받는 이발사가 누구일까’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정답은 뉴욕 메츠의 외야수 카를로스 벨트란이었다. 그의 당시 연봉은 약 1357만 달러로 그 때 환율로 126억원에 달했다. 카를로스 벨트란이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이발사가 된 것은 느닷없이 팀에 불어 닥친 삭발 열풍 때문이었다.

당시 담당 기자들과 팬들이 뉴욕 메츠 선수들의 삭발에 놀랐던 것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였다. 당시 메츠는 애틀랜타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선두 다툼을 하고 있었고 개막 후 계속 선두 권을 유지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와의 원정 경기를 앞둔 5월8일 삭발이 시작됐고 이례적으로 구단 단장이었던 오마르 미나야까지 동참했다. 이들의 삭발을 담당한 클럽하우스의 이발사가 바로 카를로스 벨트란이었다.

당시 팀의 3루수였던 데이비드 라이트는 삭발 의식에 대해 ‘어느 한명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이 아니다. 우리가 한 팀으로 함께 시작한 일’이라며 ‘팀의 흔들림 없는 결속력을 보여주기 위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스포츠 역사를 아무리 살펴봐도 삭발과 승리의 연결 고리는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삭발은 팀을 단합시키는 미신적인 의식의 일종일 뿐이다.

우리 프로야구 초창기에 팀의 연패가 길어지자 감독이 먼저 나서 삭발한 일이 있었다. 당시 ‘일본식’이라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는데 뉴욕 메츠나 올시즌 프로야구에서 벌어진 삭발 행진을 보면 잘못된 지적이 분명하다.

전반기 삭발 열풍에 외국인 용병인 KIA 앤서니와 LG 주키치가 동참하자 ‘메이저리그는 삭발이 없는데 용병임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참여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역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사람 사는 곳 아닌가. 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머리까지 밀어 보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물론 감독은 선수 개인의 삭발을 말릴 권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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