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술로 암을 치료해 준다며…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12.09.0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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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멘토다]6. <레드라이트> & <더 트리>..믿지 말아야 할 것과 믿어야 할 것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졌다. 극장가에도 가을이 드리운다. 한 여름만큼 후끈한 블록버스터들을 뒤로 하고 차분하게 사색하며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이 스크린에 속속 둥지를 틀고 있다.

특히 명배우들의 호연이 빛나는 영화 두 편이 눈에 띈다. 최근 선 보인 <레드라이트>와 오는 13일 개봉을 앞둔 <더 트리>다.



심령술로 암을 치료해 준다며…


◇레드라이트‥공포가 사기를 부른다=로버트 드 니로.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대배우다.

여기에 <에어리언> 시리즈의 시그니 위버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인셉션> 등을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페르소나로 킬리언 머피까지.



이들이 펼치는 연기는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을 바로 눈 앞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해 '심령술의 허상을 추적하는 과학자'라는 소재로 2시간여 동안 치밀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연출력도 간단치 않다.

그는 스릴러 장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히치콕의 후계자' 혹은 '제2의 사먈란-영화 <식스 센스> 감독'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옥의 티 하나. 영화엔 막판 반전이 숨어 있는데, 솔직히 약간 약하다. 식스 센스만큼 놀랍지는 않다.


영화에선 심령술로 사기를 치는 이들을 고발하지만, 심령술 자체의 진위 여부를 가리려 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조차도 비록 과학으로 다 설명하진 못하지만 심령술 자체를 부정하진 않으니. 영화는 대신, 공포를 통한 헛된 믿음을 경계한다.

인간은 질병 재난 등으로 인해 마음 한 편에 늘 불안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투시 공중부양 텔레파시 등 심령술의 신비로운 능력에 현혹되기 쉽다. 진짜가 아닌 사기꾼들이 이런 틈을 파고들어 심령술로 암 같은 큰 병을 치료해준다며 사람들을 속여 돈을 벌다 적발된 실제 사례도 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공포가 지속되는 동안에 인간은 미신의 희생물로 전락한다"고 했다. 모든 것에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는 있겠으나, 어리석은 불안과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망쳐선 안 되겠다.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삶은 결국 불행해진다.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안다고 믿는 것이 문제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심령술로 암을 치료해 준다며…
◇더 트리‥가족은 리추얼 =이 영화의 주인공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칸이 선택한 여배우다. 2009년 <안티 크라이스트>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예쁘진 않지만 몽환적이면서도 순수하고 한편으론 지적인 매력까지 배어 나온다.

더 트리 역시 제63회(2010) 칸느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인데, 프랑스 여성감독 줄리 베르투첼리가 호주를 배경으로 만들었다.

영화는 갑작스런 돌연사로 다정했던 남편을 잃은 네 아이의 엄마 던(샤를로트 갱스부르)이 겪는 삶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렸다. 이 가족이 남편과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주요 내용이다.

중국 감독 장예모의 <귀주 이야기>처럼 평범한 일상을 담았는데도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건조하지만 참 따뜻하다. 던의 네 자녀 가운데 8살짜리 시몬 역을 맡은 몰가나 데이비스는 데뷔작인데도, 아빠들이 '딸 바보'가 되는 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해 줄 정도로 호연을 펼친다.

시몬 네는 수백년은 된 듯한 큰 무화과 나무 옆에 산다. 시몬의 아빠는 그 무화과 나무 아래서 죽었다. 그래서 시몬은 나무에 아빠의 영혼이 깃들었다고 믿고 아빠와 대화를 나눈다. 시몬은 엄마에게도 이 비밀(?)을 털어놓는데, 남편을 그리워하던 엄마 역시 나무와 대화하며 삶을 헤쳐 나갈 용기를 얻는다.

영화는 우리에게 가족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준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사용한 표현을 빌자면 가족이란 '리추얼'이다. 일상의 기억에서 생긴 좋은 추억이나 사랑받는다는 느낌말이다. 그 느낌에 대한 믿음은 삶에 큰 용기를 준다.

추억과 사랑을 받았던 시몬과 던에게 아빠는 죽은 뒤에도 무화과 나무라는 리추얼로 남아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남은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가족끼리 일상에서 소소한 추억과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자. 그게 좋은 아빠, 엄마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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