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수도료 월100원… '공짜'물 쓰는 아파트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12.08.1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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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열전]<7>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편집자주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설계사들이 있다. 이들은 불평등·환경훼손·인권침해·동물학대 같은 사회 문제를 사회적기업·협동조합·비영리단체·기업의 사회적책임 같은 활동을 통해 해소하자고 나선다. 사회를 바꾸는 아이디어의 실행자,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들을 머니투데이가 소개한다.


- 서울시 빗물 산성도 pH5.6 "예상밖 우수"
-"빗물 모아 가뭄·녹조·홍수에 대비해야"
- 블라인드 맛 테스트서 생수 누르기도


↑한무영 서울대 교수 겸 빗물연구소장. ⓒ 출판사 알마 제공.↑한무영 서울대 교수 겸 빗물연구소장. ⓒ 출판사 알마 제공.


서울시 강남역 일대가 또 침수됐다. 광복절인 15일 낮 강남역 사거리 주변 도로는 어른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찼다. 10년 간 5번째 침수다. 네티즌들은 가수 싸이의 히트곡 '강남스타일' 가사에 빗대 '강남, 침수 스타일'이라 비꼬았다. 기후급변 시대에 홍수와 가뭄 피해의 반복은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일상, 뉴노멀(New normal)이 되는 걸까.



상하수도 설계 전문가인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건축물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하면 도시의 홍수, 가뭄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층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주변지역과 하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빗물을 관리하면 큰 비가 올 때 침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06년 그가 설계한 서울시 광진구 스타시티의 빗물시설이 한 예다. 비가 오면 자주 침수됐던 이곳 주변은 스타시티 건설 후 한 번도 침수되지 않았다. 2008년 국제물학회지는 스타시티의 빗물시설을 '세계적인 미래형 물 관리 모델'이라며 커버스토리로 소개했다. 그 공로로 한 교수는 2010년 국제물학회의 창의프로젝트(PIA) 상과 대한민국 국가녹색기술대상을 받았다.



"스타시티 빗물시설엔 전 세계가 따라오지 못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철학, 홍익인간 정신이 들어가 있죠. 스타시티 같은 건물이 지역마다 들어서면 서울시 전체에서 행복한 물 관리가 실현될 겁니다."

◇모두가 행복한 빗물시설의 비밀='비밀'이라고 말하기엔 원리가 매우 간단한다. '빗물 모으기.'

스타시티는 B동 건물의 지하 3층 밑에 한 층을 더 파서 3000톤의 빗물 시설을 만들었다. 그것을 칸막이로 나누어 각각 1000톤짜리 빗물 저장조 3개를 만들었다. 지붕과 대지면에 떨어진 공짜 빗물을 모아쓰니, 세대당 공용 수도 요금은 한 달에 100원에 불과하다.


↑스타시티 전경 ⓒ스타시티↑스타시티 전경 ⓒ스타시티
지하 물탱크 1개는 홍수 방지용으로 비워두고, 1개는 입주자 공동의 조경용으로 쓰고, 1개는 화재 등 인근 지역의 비상용으로 쓴다. 큰 비가 올 땐 빗물을 받아 하류로 흘러드는 양을 줄여주고, 비상시엔 빗물을 풀어 인근 지역의 어려움을 돕는 시스템이다.

"빗물 시설을 만들어 하나는 하류사람을 위해, 하나는 우리를 위해, 하나는 근처주민 모두를 위해 씁니다. 한강물을 안 쓰니 한강변의 동식물도 좋아합니다. 수돗물을 끌어올리는 전기를 절약하고 온실가스 발생을 줄이니, 온난화로 국토가 가라앉고 있다는 '투발루' 사람들도 좋아할 겁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거죠. 이런 원리를 전 세계에 퍼트리면 어떻겠어요? 물 관리는 세계 평화의 첫 걸음입니다."

◇"개발행위는 그 자체로 물 상태 바꿔"=한 교수는 "건물 주변의 물 피해 예방은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고층건물이 들어서면 깊은 곳까지 시멘트로 포장이 되고 그만큼 땅의 빗물 흡수는 어려워진다. 빗물의 땅속 침투율은 서울시가 도시화되기 전인 1962년엔 40%였지만 2003년엔 23%까지 떨어졌다. 개발행위는 그 자체로 자연의 물 상태에 영향을 준다.

공무원의 사회적 책임도 필요하다. 지난 5월 감사원은 서울시와 서초구가 광화문 광장과 강남대로의 침수대책과 설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수해 재발 우려가 생겼다며 담당 공무원을 징계했다. 도심의 반복된 침수는 인재(人災)였던 셈이다.

한 교수는 "왜 빗물을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적, 철학적 근거를 만들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적 책임을 지키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모두가 자기 자신의 책임만 다해도 많은 사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른들은 애들이 놀다가 방을 어지럽히면 '자기가 어지럽힌 것은 자기가 치워야지' 하고 나무랍니다. 물 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 때문에 생긴 피해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그것을 해소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에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도림천에 홍수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그는 서울대학교부터 레인캠퍼스(Rain Campus)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학원 기숙사와 공대 39동에 빗물 저장조를 설치했다. 그는 앞으로 신축되거나 개축되는 건물에도 빗물 시설을 만들 것을 학교에 제안하고 있다.

↑한무영 서울대 교수(가운데)가 신안군 직원과 기도 주민들에게 빗물 탱크의 수질관리를 위한 '플로팅 석션' 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떠 있는 이물질이 있더라도 그 밑에 있는 깨끗한 물만 퍼내도록하는 장치다.ⓒ서울대 빗물연구소↑한무영 서울대 교수(가운데)가 신안군 직원과 기도 주민들에게 빗물 탱크의 수질관리를 위한 '플로팅 석션' 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떠 있는 이물질이 있더라도 그 밑에 있는 깨끗한 물만 퍼내도록하는 장치다.ⓒ서울대 빗물연구소
◇'산성비라 안 돼?' 물맹에서 1분 만에 벗어나는 법=그런데 스타시티와 서울대 캠퍼스에 적용한 한 교수의 물 관리 모델이 우수하다면 왜 서울시와 대한민국 전체로 확대되지 않는 걸까? 한 교수는 그걸 '물의 장막'이라고 표현했다. 주요 행정 담당자들이 기존 패러다임의 전문가들에 둘러싸여 자신을 만나지도 부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빗물을 버리는 시설, 집중형 시설에 의존하는 전문가들과 대립이 가장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제 얘기를 수용한다는 건 자신이 가진 기존 패러다임을 부정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이해관계도 포기해야 하고요. 시장이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도 곁에 있는 전문가가 기존 패러다임 속에 있다면 하자고 하겠어요?"

한 교수는 "최고의사결정자인 선출직 공무원을 뽑는 건 시민"이라며 "공무원의 생각을 바꾸려면 다수의 시민이 똑똑해져서 필요한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 가뭄, 녹조 등등 물 때문에 고통 받으면서도 시민들은 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요. 물맹 상태죠. 문맹은 깨치기 어렵지만 물맹은 1분 만에 깨칩니다. 물맛만 보면 됩니다. 그러면 빗물이 빨리 버려야 할 더럽고 위험한 게 아니라 '돈'이라는 걸 알게 될 거에요."

↑한무영 서울대 교수의 저서  부록으로 서울시 회현동 한 아파트에서 깨끗한 용기에 빗물을 받아 pH 측정을 한 결과. 이 정도면 산성비라고 할 수 었다. pH7을 기준으로 그보다 낮을 수록 강한 산성이다. ⓒ이경숙 기자↑한무영 서울대 교수의 저서 부록으로 서울시 회현동 한 아파트에서 깨끗한 용기에 빗물을 받아 pH 측정을 한 결과. 이 정도면 산성비라고 할 수 었다. pH7을 기준으로 그보다 낮을 수록 강한 산성이다. ⓒ이경숙 기자
11일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테드(TED) 행사장에서 그와 서울대 빗물연구소 멤버들은 블라인드테스트를 실시했다. 시판 병물, 빗물, 수돗물을 각각 같은 모양의 통에 담아 구분하지 못하게 한 후 시음자들에게 가장 맛있는 물에 스티커를 붙이게 했다. 207명의 시음자 중 42%가 병물을, 15%가 수돗물을 선택했다. 빗물을 선택한 사람은 43%였다.

"빗물 맛이 좋은 건 당연합니다. 빗물은 마일리지가 가장 짧은 물입니다. 일종의 증류수죠. 병물 가격은 톤당 30만 원, 수돗물은 1000원, 빗물은 공짜에요. 근데 우리는 이렇게 좋은 걸 도시의 오물과 섞어 하수도로 버리고 있는 거예요. 도심에서 물난리가 날 때마다 지하저류터널을 만들어 빗물을 빨리 버리자는 주장이 나옵니다. 돈을 들여서 돈을 버리는 건 돈 정책 아니에요?"

그의 대안은 역시 '빗물 모으기'다. 고층건물마다 집중호우 때 빗물을 모으면 짧은 시간에 하수도로 빗물이 몰려 도로가 침수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수도 도시를 빗물 도시로"=그는 원래 상수도 등 수처리 전문 토목공학자다. 서울대에서 토목공학 석사, 텍사스대 오스틴교대학원에서 환경공학 박사를 땄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연구자와 경희대 토목공학과 부교수를 거쳐 서울대에 취임한 건 1999년. 이듬해인 2000년 일어난 가뭄이 그의 삶을 바꿨다.

"큰 가뭄 때 많은 전문가들이 가뭄 대책을 내놓는데, 나는 내놓을 게 없어요. 물이 없는데 내가 가진 수처리 기술이 무슨 쓸모가 있겠어요. 가뭄 중에 가는 비가 내리는 걸 보면서 '저게 뭐지? 저것도 물인데' 했죠. '산성비라지만 강물도 처리할 실력이 있는데 이 정도 못하랴' 싶어 받아서 분석해보니, 처리할 게 없더라고요. 받아서 바로 써도 될 정도 깨끗했어요."

깨끗한 빗물의 산성도는 pH5.6이었다. 서울의 비가 산성비라는 편견을 깨는 수치였다. 그나마도 하루만 묵히면 중성이 됐다. 이 깨달음 이후 그는 토목에서 빗물로 연구 방향을 바꿨다. 처음엔 수돗물을 아낄 대안으로 빗물을 분석하다가 이내 빗물이 홍수, 가뭄, 수질오염, 에너지 등 도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꿈은 드레인 시티 즉 빗물을 버리는 도시를 레인 시티 즉 빗물을 모으는 도시(From drain city to rain city)로 바꾸는 겁니다. 그건 브레인 시티즌(Brain Citizen)이 있어야만 가능해요. 선출직 공무원한테 압력을 줄 수 있는 건 다수의 똑똑한 시민입니다."


[팁] 다 함께 실천할 수 있는 홍수, 가뭄 방지법
1. 집집마다 빗물을 모아쓰면 하수 처리 부담이 줄어든다. 빗물이용시설 설치는 지자체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서울시는 소규모 빗물이용시설 보급을 위해 간단한 조립형 제품을 개발하고 2톤 기준 700만 원이던 가 설치비용을 200만 원으로 대폭 낮췄다. 또 설치비용을 단가의 90%까지 지원한다.

2. 고층건물의 빗물 시설에 인센티브를 준다. 빗물시설을 설치하면 건물주는 그 면적만큼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 스타시티의 경우, 서울시가 빗물시설을 넣는 대신 용적률을 3% 늘려주어 그 문제를 해소했다.

3. 장마 때 낮은 곳이 침수되는 이유는 높은 곳의 빗물이 빠르게 흘러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빗물이 빠르게 흘러들지 못하게 한다. 적당히 높은 곳에 커다란 연못을 만드는 것이다.

4. 빗물펌프장 대신 연못을 만든다. 빗물펌프장에 물을 모으면 수질이 나빠진다. 높은 곳에 위치한 연못에 빗물을 받아두면 상당히 깨끗하다. 게다가 연못은 그 바닥을 통해 땅 속으로 물을 침투시켜 지하수를 보충한다.

5. 고층 건물을 지을 때 지하수를 뽑아버리는 대신 건축물을 방수하면 수자원을 보존할 수 있다. 독일 베를린의 경우 중앙 역사를 지을 때 지하수 수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잠수부를 동원해 지하층을 지었다. 지하수는 자연의 일부다. 빼내면 무너진다. 멕시코시티는 지하수를 너무 많이 퍼 올려 지반이 한 해에 15cm 씩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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