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폭력이 더 나쁘다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12.08.04 08:42
글자크기

[영화는 멘토다]4.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결핍은 폭력을 부른다

#. 스페인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나라와 많이 닮은 나라다. 반도국가에다 화끈하고 열정적인 국민성은 물론이고, 참혹한 내전을 거쳐 오랜 기간 군부 출신의 독재자에게 강압적인 지배를 받았다는 점이 그렇다.

↑포스터. (이하 영화 홈페이지)↑포스터. (이하 영화 홈페이지)


특히 전쟁과 군부 독재를 통해 형성된 군사적 규율과 국가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사회 전반에 아직도 깊숙하게 남아 있다.



스페인 영화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는 내전과 프랑코 독재 치하를 거치며 발생한 국가 폭력과 사회적 혼란이 한 개인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2010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 등 3개부문에서 수상했고, 지난해 시체스 영화제에선 유럽최우수작품상을 타기도 했다. 이 영화의 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은 라틴 문화권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렇게 소개하고 보니 이해하기 힘든 예술영화로 비춰질 수 있겠다. 그러나 부담스러워 할 필요가 전혀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주연배우들의 열연이 빛난다.

주인공인 '슬픈 광대' 하비에 역을 맡은 카를로스 아세레스는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을 맡은 히스 레저를 뺨칠 정도로 광기어린 연기를 펼친다. 잭 니콜슨이 "배우를 잡아먹는 캐릭터가 있다"고 했는데, 조커 역을 한 히스 레저처럼 '혹시 요절하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 정도다. 다만, 스릴러 장르인데다 피 튀기는 잔인한 장면이 많다. 심장이 약한 분들에겐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주인공 하비에. 정신분열 증세로 얼굴을 자해했다.↑주인공 하비에. 정신분열 증세로 얼굴을 자해했다.
#. 톨스토이는 저서 '국가는 폭력이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비적는 주로 부자에게 빼앗지만 정부는 주로 가난한 자에게서 뺏는다. 비적는 자기의 목숨을 걸지만 정부는 거의 어떤 위험도 겪지 않는다. 비적은 폭력을 사용해 억지로 자기편으로 끌어넣지는 않지만, 정부는 폭력을 써서 자기편 군인으로 만든다."

잘못된 국가 폭력의 폐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특히 법에 부여된 권력이라는 속성으로 인해 국가 폭력이 잘못됐다는 생각조차 미처 하지 못하거나 아무런 반감 없이 자연스레 순응하게 된다는 측면이 무섭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 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라는 스탈린의 말은 어떤 잔혹한 범죄 이상으로 섬뜩하다.


이 영화에선 주인공의 정신병적 폭력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반면 그 폭력의 원인이 되는 국가나 사회적 폭력은 배경으로 깔거나 간략하게 처리하고 지나가 버리는데, 이런 방식은 국가 폭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국가 폭력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해야 하며, 견제하거나 저항하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 영화 속 인물들에게 나타난 폭력이 갖는 개인적 차원의 속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폭력은 결핍에서 나온다. 흔히 정당성이 없는 권력에서 국가 폭력이 나오듯, 배려와 사랑이 모자란 이들이 주로 폭력을 행사한다. 인간성의 결핍이 삐뚤어지고 억압된 마음을 낳고, 그 잘못된 마음은 보상심리와 집착으로 이어지며, 잘못된 심리가 잔혹한 폭력을 낳는 구조다.

또 폭력을 당하는 이들은 처음엔 고통을 덜 당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자에게 잘 보이거나 도망치려 하다가, 나중엔 체념하고 순종하며, 극단적인 경우 폭력에 동화되어 결국 스스로도 폭력에 물들어간다. 이 영화의 세 주인공 '슬픈 광대' 하비에, '웃긴 광대' 세르지오, 그리고 그들의 여인 나탈리아가 보여주는 행태가 딱 그렇다.
↑병적으로 집착하는 하비에와 세르지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나탈리아.↑병적으로 집착하는 하비에와 세르지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나탈리아.
결국 폭력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인 측면에서 모두 결핍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를 많이 형성해야 한다. 또 자신의 삶을 좌우하는 권력이나 금력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주인정신도 필요하다.

이 모든 일은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 영화 속에서 세르지오의 인기에 눌려 그의 폭력을 견디고 살던 서커스 단원들이 힘을 모아 세르지오에게서 자립한 이후 오히려 더 행복하게 잘 살게 된 경우처럼 말이다.
↑강제로 징집된 서커스 광대들.↑강제로 징집된 서커스 광대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