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젊음의 축제다. 사격이나 승마 같은 일부 종목을 제외한 기록경기 는 출전선수가 대부분 20대인데, 신체적 능력의 절정기가 그 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늙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더 지나면 조금만 운동을 해도 금세 피곤해지고 자꾸 아프다가 어느새 달리지도 못한다. 몸에서 냄새가 나고, 귀는 잘 들리지 않고, 건망증은 심해진다. 죽는 것보다 늙는다는 사실이 더 두렵고 서글퍼진다.
그런가 하면 내로라하는 자산운용사들이 자랑하는 대표 펀드매니저 역시 경력 10년 내외의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이다. 그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며 시중자금을 싹쓸이한 1세대 펀드매니저들은 지금 뭘 하고 있으며, 1990년대 여의도 증권가를 주름잡았다던 그 유명한 총잡이와 온갖 이름의 물고기들은 왜 소식조차 들리지 않는지.
투자수익률 역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하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젊은 투자자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갖은 풍상에 산전수전 다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에 노쇠의 기미가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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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증상을 '인베스터스 블루'(investor's blue)라고 이름 붙였다. 재산은 얼마만큼 모았을지 모르나 그동안 너무 많은 거품과 패닉을 경험하는 바람에 혹시라도 그 돈이 한순간에 날아갈지 몰라 조심조심한다.
이렇게 되면 투자를 하면서 자꾸 두려워지고, 성과가 안 좋으면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실망감과 함께 우울증에 빠져드는 것이다. 더 심해지면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깜박한다거나 결정적인 순간 판단력이 흐려져 중요한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괜히 조급해지는 바람에 훌륭한 종목을 서둘러 팔아버리거나 자기가 보유한 종목조차 다 기억하지 못해 엉뚱한 매매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베스터스 블루'는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므로 스스로 안고 가야 한다. 늙는다는 것은 질병이 아니니까. 노화는 불치병도 아니고 암도 아니다. 단지 모든 신체적 능력이 서서히 감퇴하는 결과일 뿐이다.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는 워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는 둘 다 1930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여든셋이고, 인덱스펀드의 창시자 존 보글은 그보다 한 살 더 많지만 역시 현역이다.
영혼이 있는 투자로 유명한 존 템플턴 경은 여든이 되던 해(1992년)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눈을 감기 전까지 꾸준히 활동했다. 성장주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피셔는 아흔살이 넘도록 투자자문가로 일했는데, 여든다섯살 때 아들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30년 정도 보유할 주식을 찾고 있다고 했다.
물론 이들은 예외적인 월가의 대가들이다. 또 이들 역시 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한참 나이 든 뒤의 투자 성과는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나이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늙음에 굴복하지도 않았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나이듦의 유용함을 이렇게 말했다. "보다 신중해지고 아량도 갖게 됐다. 젊었을 때의 철없음과 지혜의 부족을 자연스럽게 벗어나니 세상을 더 깊이 더 넓게 볼 수 있다." 그렇다. 세월은 오히려 젊은 시절의 위험한 약점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이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