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보고 찍나? 말도 안되지~" 정치인 2·3세 격전지 중구

머니투데이 구경민 기자, 황보람 기자 2012.03.2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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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격전지를 가다]정치인 2·3세들의 대결..토박이 일꾼 vs 풍부한 의정활동

"아버지 보고 찍나? 말도 안되지~ 동네 일 잘하는 사람을 뽑을거유."

서울 북창동에서 50년 이상을 거주한 김모씨(72)는 중구 후보로 공천된 정진석(새누리당), 정호준(민주통합당) 후보를 고(故) 정석모 전 의원, 정대철 전 의원의 아들로 기억했다. 두 후보의 아버지는 잘 알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보고 아들을 찍을 수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중구에 대한 공약을 따져보고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40년 동안 중구 약수시장에서 일해 온 모예자(69) 할머니는 "저기 봐봐. 시장 바로 앞에 대형마트가 있잖아. 재래시장 상인들은 죽어 가는데 살려주지는 못할 망정 대형마트까지 들어서고 있으니 언제가 돼야 영세상인들의 마음을 이해해줄 의원이 나타날지 몰라. 지금 같아서는 투표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야"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이처럼 중구 주민들은 '정치'에 다소 시달린 모습이었다. 서울의 중심이자 정치1번지로 불리는 중구를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려는 디딤돌로 생각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발전이 아닌 후퇴를 가져왔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중구에서 정치인 2·3세들의 격전이 펼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대를 이어 정치판에 뛰어든 2·3세라는 편견을 벗고 얼마만큼 주민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을지가 가장 큰 숙제다.



매일경제신문과 한길리서치가 지난 17~18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호준 후보가 25.7% 지지율을 얻어 24.5%를 얻은 정진석 후보를 오차 범위에서 앞섰다. 글자 그대로 표심이 오리무중인 중구 지역에서 정진석 후보(52)와 정호준(41) 후보를 만났다.

◆'풍부한 의정활동 강점'..정치인생 중구에서 마감할 것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가 떡볶이와 순대 등 분식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가 떡볶이와 순대 등 분식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바쁜 걸음으로 달려와 인사를 나눈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3선 국회의원을 통해 풍부한 의정활동을 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였다.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국정 운영에 참여한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검증된 능력이 내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옆집 아저씨 같은 포근한 모습으로 주민들에게 다가서는 정 후보는 6선을 지낸 정석모 전 내무장관의 아들로 충남 공주·연기인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16~17대 국회의원이 됐다. 당초 이번 총선에서도 자신의 전 지역구에 공천신청을 한 상태였으나 당의 전략공천으로 '중구'에 도전하게 됐다. 중구와는 지역구 안에 있는 성동고등학교를 다닌 인연이 있다. 신당동 떡볶이를 먹으면서 정치인의 꿈을 키운 정 후보다.

소공동을 거닐면서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다. 중구에 누구나 편히 걷고 싶어 하는 올레 길을 만들어 한류 붐을 발전시킨다는 '올레길 프로젝트'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정 후보는 "중구 내에 있는 명동이 한류 관광객들의 명소로 자리 잡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중구 올레 길을 만들어 관광객 뿐 아니라 구민들도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고 더 많은 관광객이 유입되면 중구를 한류 관광객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극심한 양극화와 고령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중구의 가치를 두 배 이상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다.

정 후보는 "중구는 노인 인구가 많은데 노인에 대한 복지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건강 문제를 해결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복지 시설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정치의 꿈을 꾸기 시작한 중구에서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정 후보는 "신당동 떡볶이를 먹고 자랐기 때문에 누구보다 중구의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하는 중요성을 알고 있다"며 "당선이 된다면 남은 정치 인생을 중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으로서 마무리 짓고 싶다"고 말했다.

◆"철새 정치인은 가라"..토박이 일꾼으로 주민과 소통

민주통합당 정호준 후보가 약수동에서 지역 주민과 만나 반갑게 포옹을 하고 있다.민주통합당 정호준 후보가 약수동에서 지역 주민과 만나 반갑게 포옹을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정호준 후보는 '중구 토막이 일꾼'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22일 오전 7시 약수역에서 만난 그는 출근길의 직장인은 물론, 동네 어르신과 등교하는 초등학생까지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친화력을 보였다. 유권자들을 찾아다니느라 총선을 앞두고 체중이 8키로나 빠져 명함에 새겨진 사진과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정 후보는 자신의 캠프를 '특공대'에 비유했다. "주민 한분이라도 그냥 지나치는 일 없이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나타나니 그야 말로 특공대죠."

주민 한명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움직이는 정 후보는 중구에서만 5선을 지낸 정대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아들이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리는 8선 의원 정일형 박사의 손자다.

겉으로 봐서는 어려움 없이 자랐을 '귀공자'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난 17대와 18대 총선에서 중구 국회의원에 도전해 쓴 고배를 마셨다. 그는 8년이라는 시간을 중구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정 후보는 "34살의 나이에 정치에 입문했다면 기고만장했을 것"이라며 "지난 8년간 시민사회 일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며 국민들에 대한 이해가 생겼고 두 차례 실패가 도리어 정치 트레이닝을 받을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이어 "중구는 종로에 버금가는 정치적 위상으로 전략공천된 거물이 많이 당선됐지만 중구 발전을 위해 실제 한 일은 없다"며 "더 이상 철새 정치인들이 머물다 떠나 중구 주민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40년 동안 중구에 살아온 중구 토박이 일꾼으로 일할 각오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5살 자녀를 둔 그는 교육이나 보육에 특히나 관심이 있다. 남산 고도제한 규제 완화 등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 후보는 "서울시에서 꼴찌인 중구 학업성취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좋은 학교를 설립하고 양질의 보육 프로그램을 제공 하겠다"며 "중구의 오랜 숙원사업인 남산 고도제한 규제도 완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정 후보가 당선되면 헌정 사상 첫 '3대 국회의원'이 탄생하게 된다.

그는 "정치인 3세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럽기 보다는 공정한 평가로 정치인 정호준으로 봐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미국 케네디가(家)처럼 대한민국에도 존경받는 정치인 집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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