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홍길동, 미국은 슈퍼맨이 통한다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미국)=최우영 기자 2011.12.1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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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업가정신 현장을 가다]<3>실리콘밸리 한국인 선배들의 조언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투자자들과 선배 창업가들은 "현지문화에 대한 이해, 현지시장에 대한 분석 등 철저한 준비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사진은 지난달 9일 실리콘밸리 레드우드시티의 한 컨벤션센터에서 인천의 예비창업가들이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 등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 /사진=최우영 기자 young@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투자자들과 선배 창업가들은 "현지문화에 대한 이해, 현지시장에 대한 분석 등 철저한 준비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사진은 지난달 9일 실리콘밸리 레드우드시티의 한 컨벤션센터에서 인천의 예비창업가들이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 등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 /사진=최우영 기자 young@


지난달 9일 실리콘밸리 레드우드시티의 한 컨벤션센터 회의실. 인천에서 온 10여명의 한국인 창업가가 실리콘밸리에서 유망한 초기기업(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와 류시훈 SKT벤처스 투자심사역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 중이었다.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실리콘밸리에서도 통할지 검증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송 대표 등의 평가는 싸늘했다. "문화와 네트워크의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경험을 쌓겠다고요? 무턱대고 취업비자 없이 왔다가 멕시코 청소부보다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실리콘밸리는 전세계 창업가에게는 희망의 땅이다. 투자자가 넘쳐나고, 함께 일할 개발자도 많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면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 때문에 한국의 더 많은 창업가가 실리콘밸리에 도전해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현지 한국인 투자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과신하고 왔다가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세계인들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철저히 현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 현지 개발자와 투자자, 마케터들과 철저히 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김범수 OCZ 반도체부문 대표, 페리 하 DFJ아세나 대표, 권중헌 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장,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 패트릭 정 SKT벤처스 변호사, 조성문 오라클 PM. /사진=최우영 기자 young@(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김범수 OCZ 반도체부문 대표, 페리 하 DFJ아세나 대표, 권중헌 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장,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 패트릭 정 SKT벤처스 변호사, 조성문 오라클 PM. /사진=최우영 기자 young@
◇성공해서 진출할 것인가, 진출해서 성공할 것인가
한국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고민 중 하나는 실리콘밸리 등 세계 무대로의 진출 시점.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뒤 진출할지, 아니면 처음부터 실리콘밸리에서 세계시장에 맞게 제품과 서비스를 세팅하는 것이 맞을 것인지.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투자자와 선배 창업가들은 "제품과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기술력의 수준에 따라 진출시점과 경로는 다양해질 수 있다"면서도 "실리콘밸리에 진출할 때는 새로 시작하는 수준의 현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물론 기술력이 압도적이라면 문화적 차이나 시장진출의 문제는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다. 2006년 반도체 장비업체 인디링스를 설립한 뒤, 올 3월 미국 메모리제품 제조업체 OCZ에 3200만달러(약 360억원)에 매각하면서 실리콘밸리로 건너온 김범수 OCZ 반도체부문 대표는 "기술력만 있다면 현지 마케팅은 현지인의 손을 빌려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한국에서 좋은 상품을 만들었다고 저절로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지적이다. 벤처캐피털 DFJ아세나의 페리 하 대표는 "한국의 젊은 친구들은 기술이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크게 잘못됐다. 기술을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품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는 무모한 시도는 배울 게 없는 실패만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싸이월드가 한국에서 성공했다고 미국에서도 자동으로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완전히 새로 시작한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에도 현지 문화를 입혀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새로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인들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철저히 파악해서 서비스를 수정하는 것. 똑같은 영웅이라 해도 한국의 '홍길동'과 미국의 '슈퍼맨'은 전혀 다른 캐릭터인 것처럼 말이다. 한국에서 통할 수 있는 서비스도 미국인들에게는 정서적으로 생소한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실리콘밸리의 한 한국인 창업가는 "카카오톡도 미국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시간 표시가 모두 한국 기준으로 맞춰져 있어, 관계자에게 메일을 보내 수정을 요구했다"
고 소개하기도 했다. 권중헌 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장은 "이곳에서 한국인들의 창업과정을 보면 기술적 문제보다 오히려 문화적 차이 때문에 시장을 이해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는 소비자의 취향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철저한 시장조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과 인도 출신의 창업가들이 이곳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은 이미 수십 년에 걸쳐 토착화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하라
문화적 차이와 익숙지 않은 시장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은 네트워크. 진출 초기부터 현지 정서와 현지 시장을 이해하고 있는 현지의 개발자, 투자자, 마케터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 게임빌 창업멤버로 활동하다 2009년부터 실리콘밸리의 오라클 본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조성문씨는 "이곳에는 동네 교회에만 나가도 과거 휴렛패커드 등의 대기업에서 일하다 지금은 엔젤투자자로 변신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조언을 하고 있는 중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며 "각종 포럼 등에 적극 참여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득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SKT벤처스의 패트릭 정 변호사는 "같은 한국인들로부터만 도움을 구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한국계는 아직 창업가로 성공한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중국이나, 인도, 이스라엘에 비하면 네트워크가 취약하다"면서 "현지인들과 스스럼없이 네트워크를 맺지 않으면 투자, 기술, 마케팅 등 모든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인들은 '나는 사장인데'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며 네트워크를 만들려는 문화에 익숙지 않은데, 정서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인 네트워크가 강화돼야
실리콘밸리의 네트워크가 아무리 개방적이라 하더라도, 결국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 이미 중국 인도 이스라엘 등은 견고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성공한 창업가가 실리콘밸리로 진출하는 모국의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식이다. 국가별 커뮤니티 자체가 일종의 작은 실리콘밸리 생태계인 셈이다.

송영길 대표는 "이곳 한국인 투자가와 창업가들에게 '후배들을 위해 희생하자'는 말을 많이 한다"면서 "우리 세대는 한국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이 곳에 진출해, 또다시 산전수전을 겪었지만 후배들에게는 중국과 인도계에 밀리지 않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미국)=최우영 기자 young@

"신기한 것보다 쓸모있는 아이템 찾아야"
창업-매각-창업-실패-재창업··· 박성파 써드웨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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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광고서비스업체 써드웨이브의 박성파 대표(40·사진)는 2000년 미국 제품평가서비스업체 시네트(Cnet)에 7억 달러(당시 7800여억원)에 매각된 가격비교사이트 마이사이먼닷컴의 창업멤버다. 당시 한국인 창업가 마이클 양(49), 윤여걸(41)씨 등과 함께 회사를 설립해 2년 만에 거액에 '엑시트'(EXIT)한 것. 박씨는 이후 또한번의 창업을 했지만 실패했고 그러다 최근 다시 창업했다. 1차례 엑시트와 3차례 창업, 그의 경로는 실리콘밸리 창업가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박 대표는 1996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SDS의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경비가 모이자 1998년 바로 실리콘밸리로 건너왔다. 그는 “한국에서 대부분 미국의 소프트웨어를 쓰는 걸 보면서 나도 큰 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미국으로 건너왔다”며 “당시 돈을 버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이었다”고 말했다.

학교 선배인 윤여걸씨의 제의로 마이사이먼닷컴에 합류한 박 대표는 처음에는 하루 3시간씩 자면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당시엔 밤낮없이 프로그램 코딩만 했죠. 미국문화고 뭐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창업가로서 자격이 없었던 셈이죠. 다행히 시네트가 마이사이먼닷컴을 인수하면서 저도 합류했는데, 시네트에서 영어와 디렉터로서의 교육을 제대로 받았습니다.”

시네트에서 3년간 일한 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1년간 가족과 여행을 다니고 밀린 공부를 하는 등 재충전을 했다. 그는 “이곳의 창업가들은 창업한 뒤 매각하고, 일정기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재충전한 뒤 다시 창업에 나서는 등의 길을 걷는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1년 뒤 만든 소셜게임업체 아케이디아는 한때 세계적인 게임 ‘스페셜포스’ 제작사 드래곤플라이의 게임 제작에도 참여하며 성장했지만 미국경기가 안좋아지면서 결국 실패했다.

2번째 창업에서 고배를 마신 박 대표는 다시 재충전을 위해 여행을 다니는 등 가족과 함께 보내다가 지난해 자신의 3번째 회사인 써드웨이브를 만들었다. 마이사이먼닷컴, 아케이디아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포함해 4명의 개발자가 현재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박 대표는 창업-매각-창업-실패-재창업 등의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최근 한국인 청년 창업가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고 있다. 박 대표는 “한국 창업가들에게 안타까운 것은 너무 신기한 아이템에 편중돼 있다는 겁니다. 신기한 것과 쓸모가 있는 것은 다르거든요.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검색엔진 시대는 끝났다고 했을 때 구글은 검색의 개념을 바꾸어놓았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것에 집중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야 성공 가능성도 커집니다.”

실리콘밸리(미국)=최우영 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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