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움직이는’ 돈 많은 나라, 중국

머니투데이 홍찬선 머니투데이 베이징특파원 2011.10.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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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World News/베이징국제음악제 ‘상상초월’… VIP석 입장권 3만여원 불과, 두번 놀라

편집자주 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비행기로 2시간도 채 안 걸린다. 1년에 왕래하는 사람이 600만명을 넘고, 교역량도 2000억달러를 초과했다. 5000년 역사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1948년부터 1992년까지 국교가 단절돼 있던 44년 동안, 매우 멀어졌다. 아직도 생각과 체제에서는 좁혀야 할 게 많다. 차이나 리프트는 홍찬선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이 2주에 한번씩, 먼 중국을 가깝게, 가까운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돈은 귀신도 연자방아를 돌리게 한다(錢讓鬼神推磨)’.

돈만 있으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진 중국 속담이다. '돈은 귀신도 말을 하게 한다(Money make ghost speak)'는 서양 속담이나 ‘돈은 귀신도 춤추게 한다’는 한국 속담보다 뜻이 더 강하다. 돈이 얼마나 좋으면 땀이 쏟아질 정도로 어려운 연자방아를 귀신도 돌리려고 한다는 말인가….

지난 6일 개막돼 오는 30일까지, 23일 동안 계속되는 ‘2011 베이징(北京) 국제음악제’를 보면 이 속담이 떠오른다. 1998년에 시작돼 올해로 14번째인 베이징국제음악제에서 굳이 이 속담이 생각난 것은 엄청난 규모 때문이다.



올해 베이징음악제는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 이벤트로 마련됐다. 말러가 작곡한 교향곡과 실내악 등 18곡을 연주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굳이 ‘돈과 귀신’을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난 9월 EU 재무장관 비공식 회담에서는 세계의 경기 침체 및 금융시장 혼란을 막기 위한 4가지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 문화부와 베이징시정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올 음악제에서는 30개 나라에서 14명의 저명한 지휘자와 11개의 오케스트라(교향악단) 및 27명의 유명 성악가를 초청했다. 내로라하는 음악가를 한꺼번에 초청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초청자 명단을 보면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선 오는 30일 저녁7시30분(베이징시간), 바오리쥐위앤(保利劇院)에서 열리는 폐막식에는 미국 시카고교향악단의 음악총감독이자 지휘자인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가 초청됐다. 무티는 상하이교향악단을 지휘해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 주피터’를 연주한다. 또 말러의 성악모음곡인 ‘여행자의 노래’도 연주하는데, 이날 성악은 메조 소프라노 앨리사 콜로소바가 출연한다.

지난 6일, 바오리쥐위앤에서 열린 개막식에선 말러의 ‘교향곡 8번 E장조’가 연주됐다. 1910년 9월12일, 독일 뮌헨에서 말러의 지휘로 초연됐을 때 858명의 합창단과 171명의 교향악단 등 1030명의 음악가가 연주에 참여해 ‘1000명의 교향곡’(에밀 구트만)으로 불리고 있는 바로 그 교향곡이다.


말러가 1906년, 마이어니히(Maiernigg)로 여름휴가를 갔을 때 작곡한 교향곡 8번. 연주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독창과 합창이 관현악단 연주와 함게 이어지는 독특한 형식을 갖고 있다. 말러 스스로, 이 곡을 작곡한 뒤 “지금까지 만든 7개의 교향곡은 서곡(Prelude)에 불과했다”고 할 정도로 새로운 형식의 ‘교향곡 8번’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날 베이징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은 스위스 로잔느 출신의 찰스 뒤투아트(Charles Dutoit)가 차이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교향악단)와 6개 합창단(중국국립교향악합창단 80명, 중국가극연극원합창단 53명, 상하이가극원합창단 68명, 타이완연합합창단 82명, 중앙음악원음악교육과합창단 79명, 중앙음악원음악교육과아동합창단 101명)을 지휘했다.

이날 공연에는 소프라노 조수미(한국), 에레나 판크라토바(러시아), 힐레비 마틴펠토와 메조소프라노 페트라 랑(독일), 버짓 렘머트(독일) 및 테너 바울 그로브스(미국), 바리톤 데이빗 윌슨-존슨(영국), 베이스 조나단 레마루(뉴질랜드)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유명 성악가도 함께 했다. 참여한 음악가는 모두 700여명.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평을 받고 있는 조수미는 이날 공연에서 2악장 후반부에 출연해 ‘영광의 성모’를 열창했다.

조수미는 또 9일, 왕후징대교회에서 ‘비발디에서 말러까지’라는 주제로 리사이틀을 가졌다. 12일에는 중산공원음악당에서 다니엘 하딩(Daniel Harding)이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 4번 G장조’에서 소프라노로 참여했다. 이날 베이스 바리톤으로는 중국의 성악가 선양(沈洋)이 함께 호흡을 맞췄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16일, 바오리쥐위앤에서 상하이교향악단을 지휘해 말러의 ‘교향곡 6번 A장조, 비극’을 연주했다. 교향곡 3번은 18일, 유리 테미카노프(Yuri Temirkanov) 지휘로, 메조 소프라노 마리아나 타라소바가 출연해 연주됐다. 교향곡 9번은 리신차오(李心草)의 지휘로, 10번은 탄리화(譚利華)의 지휘로 각각 선보였다. 23일에는 말러가 중국의 당시(唐詩)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는 교향곡 ‘대지의 노래’가 연주됐다.

이밖에도 교향곡 7번은 수이란(水藍)의 지휘로 26일에, 교향곡 1번은 엘리아후 인발(Eliahu Inbal)의 지휘로 28일에, 교향곡 5번은 크리소트프 에센바흐(Christoph Eschenbach) 지휘로 29일에 각각 연주될 예정이다.

베이징음악제에서 돈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입장권이 의외로 싸다는 사실이다. 개막식과 폐막식, 그리고 일부 연주회만 가장 비싼 VIP석이 180위안(3만600원)이고 나머지 연주회의 VIP석은 150위안(2만5500원)이다. 가장 싼 것은 50위안(8500원)이다. 뮤지컬 VIP석이 800위안(13만6000원)에 이르고 극장에서 영화 한편 보는데도 70~80위안(1만2000~1만3600원)인 것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하다. 비교적 싼 값으로 말러 음악을 향유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제14회 베이징국제음악제’는 또 르네상스의 불을 지폈던 이탈리아의 메디치가를 떠올리게도 한다. 메디치가는 엄청난 부(富)의 힘으로 음악과 미술가 학자 등을 후원함으로써 암흑기였던 중세의 어둠을 거둬내고 계몽의 근대를 이끌어 냈다.

중국이 메디치가와 다른 점은 중국은 하나의 가문이 아니라 국가가 문화를 육성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문화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 문화산업이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작년의 2.75%에서 2015년에는 5%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15년의 GDP 목표는 55조위안(9350조원). 5년 뒤에 문화산업 규모는 2조7500억위안(467조5000억원)으로 작년(1조1052억위안, 187조8840억원)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중국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17기 6차 중앙위원회에서의 의제도 ‘문화격차(Culture Divide) 해소’와 로 제시했다. 문화격차 해소를 안정적이고 지속적 경제발전을 위한 개혁개방과 어깨를 나란히 놓을 정도로 문화를 강조했다. GDP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G2)로 부상한 것에 걸맞게 문화 흡인력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돈은 귀신도 연자방아를 돌리게 한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부정적 뉘앙스로 쓰인다. 하지만 손가락질을 받으며 모은 돈으로 르네상스를 일으켜 ‘메디치효과’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마찬가지로 농민과 근로자의 희생으로 쌓은 3조2017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문화경쟁력을 높이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에도 분명히 긍정적 측면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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