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칼럼]떡볶이 노부부는 어디 계실까?

머니투데이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11.10.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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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칼럼]떡볶이 노부부는 어디 계실까?


필자는 이촌동에 햇수로 20년 넘게 살고 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조그만 용달차에서 떡볶이나 어묵을 파는 노부부가 계셨다. 초가을부터 이른 봄까지만 장사를 하시는 곱게 나이 드신 노부부셨다. 필자가 이사 오기 한참 전부터 그곳에서 장사를 하셨단다. 아가씨였던 손님이 결혼 후 딸을 데리고 오고 그 딸이 성장해 다시 아장 아장 걷는 딸을 데리고 온다며 수줍게 자랑하시곤 하셨다. 필자도 대학원 시절부터 그곳에서 밤늦게 어묵 국물로 추위를 녹이곤 했고 아이들도 단골손님이었다.

그런데 주위에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가 두 군데나 생긴 2년 전부터 보이지 않으신다. 아마 경쟁에 밀려 장사를 접으셨으리라. 초가을이면 기다리던 '거리의 풍경' 하나가 가슴속에서 그렇게 사라졌다.



우리가 미처 소중한지 몰랐던 많은 것들이 조금씩 우리 곁을 떠난다. 항상 뒤에서 든든하게 계실 줄 알았던 부모님도 세상을 떠나고 엊그제까지만 해도 술 한잔 하면서 추억을 얘기하던 친구가 갑자기 추억으로만 남게 된다.

9월 초부터 뉴욕 맨해튼의 쥬코티공원에서 시작된 반월가 시위는 90년대 월가가 창조한 금융혁신상품 만큼이나 빠르게 확산되어 여타 대도시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위 역시 처음 소수의 청년들과 실업자들이 불만을 배설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부의 편중과 금융의 탐욕을 중심으로 보다 명확한 주제를 부각시키면서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타전되어 여론의 66% 지지를 얻고 있다.



80년대 레이건 이후 진행된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경제학자들이 ‘long boom period'으로 부를 정도로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를 겪기까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경기침체 역시 1990년의 저축부대조합 위기와 2001년의 IT거품 붕괴, 단 두 번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러한 경제성장의 과실은 소수의 부유층에게 귀속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상위1%가 1980년부터 2005년 사이에 창출된 부의 80%를 독식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1976년 상위 1%가 미국 전체 부의 19.9%를 차지한데 반해 2007년 34.6%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소득 불균형 역시 악화되어 1982년 상위 1%가 총 소득의 12.8%를 차지한데 반해 2007년에는 24%로 치솟았다. 이러한 수치는 공교롭게도 대공황 전야인 1929년과 같은 수준이다.

미국의 근대역사에 있어 부의 편중 현상이 가장 컸던 기간이 1920년대이다. 철도와 전기 보급, 자동차 대량 생산 등 제2차 산업혁명의 여파는 도처에 블루오션을 낳았고 새로운 부유층을 형성했다. 더불어 1차 세계대전 중 중앙은행 역할을 수행했던 JP Morgan을 필두로 한 금융기관은 증권화 바람을 타고 더욱 성장과 부의 편중 현상을 가속화했다.


토인비 말대로 역사는 돌고 도는가? 90년대부터 시작된 정보혁명과 금융혁신은 IT와 금융을 주연으로 비약적 경제성장과 함께 양극화를 부추겼다.

국내 역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물결아래 부의 분배가 악화되었다. 지니계수는 27에서 32수준으로 악화되었는데 이 수치 역시 우리나라처럼 소득불균형에 비해 부의 불균형이 심한 국가에서는 오히려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

양극화는 역사적으로 30년대 대공황과 70년대 말 스태그플레이션처럼 극심한 경기침체에 의해 해소되어왔다. 마치 영화 '투모로우'의 마지막 장면에서 빙하기 도래 후 우주정거장의 우주인이 "지금껏 본 지구 중 가장 깨끗하다"고 타전한 것처럼.

양극화 해소는 건전한 성장의 필요조건이다. 소비견인의 주체가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 중산층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고 있다. 동네 구멍가게는 대기업의 편의점으로 대체되고 있고 다방은 4000원짜리 커피를 파는 프랜차이즈에게 밀려 버렸다. 자영업이 쇠퇴되고 중산층이 몰락하면 그 비싼 커피는 누가 마실 것인가? 그렇게 밀려난 중산층은 또 어디에 기댈 것인가? 찬바람이 부는 이 밤, 떡볶이 노부부가 떠난 무표정한 거리가 더욱 을씨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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