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부품 쓰는 日업체, 시장엔 비밀로 한다"

머니투데이 도쿄(일본)=유영호 기자 2011.09.09 06:38
글자크기

[인터뷰]박원주 주일 상무관 "경쟁력 대비 낮은 인지도가 숙제"

"한국 부품에 대한 일본 대기업의 수요가 올라가고 평가도 좋아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각하는 수준과 속도만큼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진=유영호기자)(사진=유영호기자)


박원주 주일본 한국대사관 상무관(사진)은 지난 3월 대지진 이후 일본 대기업들이 한국을 중심으로 부품 공급망을 재편하는 것과 관련, 섣부른 '낙관론'보다는 '신중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상무관은 "일본 대기업들이 해외 생산, 부품 공급원을 다각화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지진 여파보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작된 엔고의 영향"이라며 "엔고가 본격화된 2009년부터 준비했던 계획이 최근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 시장에 집중했던 일본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타켓을 신흥국 시장으로 돌리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제품 경쟁력의 초점도 '품질'에서 '가격'으로 전환했다"며 "이 과정에서 값비싼 일본 부품을 대체할 공급원을 찾기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일본 대기업들은 신흥국 시장에 걸 맞는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생산구조를 유지한 채 비싼 내국산 부품만 값싼 해외 부품으로 대체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하지만 이런 부분적 가격경쟁력 확보 전략은 최종제품의 품질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고 '기술의 일본'이라는 전통적인 일본 제품의 이미지 추락을 초래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가속페달, 브레이크 등 각종 부실 부품의 리콜로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은 도요타다.

박 상무관은 "도요타 사태 이후 일본 대기업들이 가격만 낮은 게 아니라 신뢰성 역시 높은 부품 공급처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때부터 한국 부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상무관은 한국 부품이 일본 진출이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고 지적했다. 가장 시급한 것으로 한국에 대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을 꼽았다.


그는 "한국 부품을 사용하는 일본 대기업 대부분이 자사 제품에 한국 부품이 들어갔다는 점을 숨기려고 한다"며 "우리 부품에 대한 인지도가 일본 기업을 넘어 소비자에게까지 일반화되지 않는다면 결국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런 현실의 벽을 깨기 위해 이제는 한국 대기업들이 나설 때라는 게 박 상무관의 주장이다.

그는 "일본 제조업체들이 한국을 맞상대할 수 있는 경쟁자로 인식하고 한국 부품업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단계까지는 왔다"며 "앞으로는 한국산 부품을 넣은 제품이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을 일반 소비자들이 갖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당장은 부가가치가 크지 않더라도 최종·소비재 시장을 공략해 인지도를 높여, 더 높은 부가가치를 지난 부품을 일본에 팔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삼성, 현대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일본 시장에 대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 극단적으로 자국산 제품을 신뢰하는 일본 소비자들의 행태도 영향을 미쳤다.

박 상무관은 대지진 여파로 일본을 중심으로 한 부품 공급망이 충격을 받은 것에 대해서 '반사이익'만 신경 쓸 게 아니라 '후폭풍'도 주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 대기업들이 핵심 부품·소재의 상당 부분을 일본에 의지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대지진으로 한국은 가깝고도 안정적이고 값싼 조달처 잃어버린 셈"이라며 "우리 제조업체들의 경쟁력 중 하나가 없어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