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車 黑市 黑心…중국엔 黑人도 많더라

머니투데이 홍찬선 베이징 특파원 2011.08.0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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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China Report<2> 흑(黑)자의 사회·경제학

편집자주 중국은 비행기로 2시간이 채 안 걸린다. 왕래하는 사람도 1년에 600만명이 넘고, 교역량도 2000억달러를 넘었다. 한국과 중국은 5000년 역사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1948년부터 92년까지 44년동안 국교가 단절되면서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됐다. 아직도 생각과 체제에서 좁혀야 할 것들이 많다. '차이나 리포트'는 홍찬선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이 먼 중국을 가깝게, 가까운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중국의 다양한 얼굴'을 2주에 한번씩 소개한다.

黑車 黑市 黑心…중국엔 黑人도 많더라


"베이징에선 운전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고 택시를 타거나 헤이처를 이용하는 게 편리할 겁니다."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 이곳에서 오래 산 주재원들이 가장 많이 해준 말 중 하나다. "어떻게 하면 베이징 생활에 적응을 빨리 할까" 물어보면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이런 말을 했다.

난생 처음 듣는 헤이처. 처음 온 베이징에서 처음 듣는 말이 아닌 게 무엇이 있을까만, 모르면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기자의 직업병이 발동했다.



"헤이처가 뭔데요?"
"헤이처(黑車)는 자동차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정식으로 영업허가를 받지 않은 채 택시처럼 영업을 하는 차를 가리킵니다."

"한국에도 한동안 있었던 '나라시 택시'와 비슷한 거네요?"
"예. 하지만 나라시는 택시를 타려는 승객은 많은데 택시가 많지 않은 밤늦은 시간에 아르바이트처럼 일시적으로 운행됐던 것과 달리, 헤이처는 아예 하나의 직업처럼 굳어져 있는 게 다릅니다."



"그렇다면 택시 영업에 지장을 줄 것 같은데, 택시 기사나 택시 회사에서 고발하거나 정부에서 단속하지 않나요?"
"글쎄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앞에서 헤이처가 버젓이 영업을 해도 고발하지 않는 듯 합니다."
"그런데, 왜 정식 허가를 받지 않고 영업을 하는 자동차를 헤이처라고 하지요?"
"…"

대화는 한동안 더 이어졌지만 왜 헤이처라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중국인 중 흑인이 많은 이유

필자는 베이징에 온지 4개월이 흘렀지만 가급적 헤이처보다는 택시를 이용한다. 헤이처 요금이 택시 요금보다 비싸고(택시는 편도요금만 받지만 헤이처는 갔다 와야 하기 때문에 왕복 요금을 받는다) 사고가 났을 때 보험금이나 보상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되도록이면 법을 지키려는 생각에서다.

아무튼 좀처럼 가시지 않던 왜 '검은 차(黑車)'라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어느 날 "중국인 가운데도 흑인이 많다"는 말을 듣고 풀리게 됐다.

"중국에 사는 흑인이 아니라 중국인 가운데에도 흑인이 있다는 말인가요?"
"예, 중국에서는 호적이 없거나 비자가 없어 숨어사는 사람을 '흑인(黑人)'이라고 합니다. 중국어 발음은 헤이런입니다."

중국에 흑인이 많게 된 것은 한자녀 정책과 관련이 있다. 1970년대부터 자녀를 한명만 낳도록 한 뒤 아들을 낳기 위해 자녀를 2~3명 낳은 중국인들이 엄청난 부담이 되는 벌금(베이징은 10만위안=1700만원, 농촌은 2만위안=340만원 안팎)을 피하기 위해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자녀를 키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을 흑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헤이처와 헤이런을 통해 중국인들은 비합법적이면서 비정상적인, 좋지 않은 것을 가리킬 때 '흑(黑)'자를 붙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66년 5월부터 1976년 10월까지 이어졌던 문화대혁명 기간동안에는 '헤이우레이(黑五類)'라는 말이 유행했다. 다섯종류의 나쁜 사람(집단)이라는 뜻이다. 바로 △농토를 많이 갖고 있으며 농민들을 착취해 왔다는 지주 △보통 농민보다 부자인 농민을 가리키는 부농(당시만 해도 부자라는 것 자체가 중국에서는 죄악시 됐다) △공산주의 혁명에 반대하는 판둥펀즈(反動分子)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불평불만 세력인 화이펀즈(壞分子) △부르조아 자유주의주의자들인 여우파이(右派) 등이 그들이다.

헤이우레이는 자본주의에 꼬리치며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에 저해가 되므로 가차 없이 처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실제로 거리 곳곳에서 이들을 처형하는 인민재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서거하고, 문화대혁명 때 실권해 한때 생명의 위협까지 당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한 뒤 개혁개방의 기치를 내걸었을 때, 중국 국민들이 눈치를 보며 개혁개방 운동에 나서지 않았던 것도 헤이우레이에 대한 공포스런 적대가 깊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만연한 '흑'의 세계

헤이띠앤(黑店)이라는 것도 있다. 옛날 무술소설이나 무협영화에 자주 나오는 헤이띠앤은 악당들이 손님을 해치고 돈을 빼앗기 위해 만든 여관을 가리킨다.

등기를 하지 않고 숨기고 있는 땅은 헤이띠(黑地)라고 하고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영업하는 상점을 헤이후(黑戶)라고 부른다. 탈세를 하거나 밀수를 통해 거래되는 상품은 헤이훠(黑貨), 횡령을 하거나 뇌물을 받아서 생긴 돈은 헤이치앤(黑錢, 검은 돈)이다. 떳떳하지 않은 거래는 바로 헤이마오이(黑貿易)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흑(黑)자가 들어가는 나쁜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어의 Black이라는 말이 들어간 단어는 중국어에서도 그대로 흑자가 붙는다. 암시장(Black Market)은 헤이스(黑市), 블랙리스트는 헤이밍딴(黑名單)이다. 블랙홀은 헤이둥(黑洞), 다크호스는 헤이마(黑馬)다. 헤이화(黑話)는 반역을 뜻하는 은어로 통하고, 헤외궈(黑鍋)는 억울한 죄를 가리킨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헤이신(黑心, 나쁜 마음)이다.

중국말에 흑(黑)자가 들어가는 말이 이처럼 많은 것은 지금까지 중국사회가 그만큼 밝지 못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5000여년의 긴 역사 동안에 260여회의 농민봉기가 일어날 정도로 사회는 불안정했고, 봉기와 전쟁에 지친 국민들은 눈치를 보며 어둠(黑) 속으로 자신들을 숨기는 생존법칙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12차 5개년 경제발전계획이 시작되는 2011년부터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중국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내세우는 정책 중 하나가 바로 허시에(和諧)이다. 허시에는 공평, 화해, 조화 등을 뜻한다. 더 이상 흑(黑)자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밝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게 허시에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미국에 이어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 중국의 수도에서 아직도 '흑'자를 붙인 말이 많이 쓰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은 없어진 '헤이우레이'라는 말처럼 헤이처, 헤이런, 헤이스, 헤이치앤 등이 사어(死語)가 될 때 중국은 진정한 G2, 아니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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