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업소로 퇴근…'전세난민'의 하루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2011.01.0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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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업무에 지장, 집주인 횡포 늘어, 부부싸움·세입자간 갈등 증가

중개업소로 퇴근…'전세난민'의 하루


직장인 전세민씨(가명)는 얼마 전부터 부동산 중개업소로 퇴근한다. 다음달까지 집을 비워야 하는데 한달째 전셋집을 구하지 못했다. 전씨는 "'전세난민'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겠다"며 "다시 한파가 시작되는데 찬바람을 맞으며 집보러 다닐 생각을 하니 서글프다"고 말했다.

'전세난민'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 '난민'이란 표현에 거부감을 드러내던 사람들도 저마다 세입자의 설움과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전셋집을 구하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 세입자의 심리적 피해 등을 따지면 전세난이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주택 직장인 "전셋집 고민에 일이 손에 안잡혀"
직장인 심용모씨(32·서울 강남구 논현동)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전세물건을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회사에서도 점심시간 등을 이용, 인터넷에 접속해 전셋값 시세와 물건을 알아본다. 최근에는 아예 부동산정보업체 유료회원으로 등록해 실시간 정보를 받고 있다.

퇴근 후에는 전셋집을 보러간다. 지난 주말 찜해둔 전셋집을 5분 차이로 다른 사람에게 뺏긴 후 중개업자에게 "전세물건이 나오면 바로 집을 보러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일러뒀다.



송파구 신천동 좋은부동산 관계자는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평일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중개업소를 찾는 직장인이 늘었다"며 "예전에는 저녁 8시를 전후해 문을 닫았는데 지난달부터 9시로 업무시간을 연장했다"고 말했다.

심씨는 "전셋집 때문에 일찍 퇴근해 회사에도 눈치가 보이고 업무에도 지장을 받고 있다"며 "세입자들의 심리적인 부담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각박해진 세상…세입자 가려받기, 변형된 신종 전세계약도 등장
전세대란으로 집주인과 세입자간 갈등도 심화되는 추세다. '매도우위' 시장이다보니 집주인의 횡포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세입자 가려받기, 임대인 중심의 특약이 등장했다.


주부 서진영씨(36·신길동)는 "집주인이 애완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남자아이가 있으면 시끄럽고 집이 망가져 안된다는 등 까다롭게 해 계약을 포기했다"며 "어떤 집주인은 도배를 새로 해달라고 하자 직접 하든지 아니면 다른 집을 알아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임차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여 단기계약을 하거나 전세보증금 상승분을 월세로 내는 '반전세', 집이 매매되면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매매조건부 전세'도 생겨났다. 서씨는 "워낙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선택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집주인과 세입자간 정(情)도 사라졌다. 보통 5년 이상 거주한 장기세입자에겐 전세금을 덜 올리기도 했지만 이제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강남구 대치동 명성공인 관계자는 "세입자를 새로 구하면 중개수수료가 들어 집주인이 전세금을 깎아주고 재계약을 해줬다"며 "하지만 수요자가 넘치는 상황에서는 이런 배려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씨는 오늘도 퇴근 후 중개업소에 들렀다. 그는 "보러 간 전셋집에서 저녁밥 짓는 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오는데 배도 고프고 서럽더라"며 "새해 목표를 금연 대신 내집마련으로 바꿔야겠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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