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형 랩'의 해…펀드 투자 지각변동 시작

머니투데이 전병윤 기자 2010.12.23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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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증시 결산④]펀드→랩 이동… 중·소형 운용사 구조조정 자극

2010년은 자산운용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한 한해였다.

'마이너리그'로 취급받던 투자자문사들이 자문형 랩어카운트 돌풍에 힘입어 자산운용시장의 중심에 섰다. 반면 '메이저리그'격인 자산운용사들은 주식형펀드의 환매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변방으로 물러섰다.

최근 2년간 펀드 환매가 지속된 가운데 투자자문사들이 자문형 랩을 발판으로 공백을 메우면서 자산운용사들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체 랩어카운트 잔액(10월 말 기준)은 33조5636억원으로 지난해 말 19조9703억원에 비해 68%나 급증했다.

랩어카운트 중 증권사들이 투자자문사에게 포트폴리오 자문을 받는 자문형 랩 잔액은 3조3348억원으로 지난 4월 1조원을 넘어선 후 6월 2조2752억원, 9월 3조1118억원 등 빠른 속도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업계는 자문형 랩 잔액이 최근 기준으로 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자문형 랩'의 해…펀드 투자 지각변동 시작


이에 비해 국내 주식형펀드 자금은 올 들어 2조1784억원 빠져나갔고 해외 주식형펀드는 같은 기간 6911억원 유출됐다.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회복하며 상승세를 펼쳤지만, 주식형펀드는 차익실현을 위한 환매 랠리로 몸살을 앓은 것이다. 자금엔 '꼬리표'가 없지만 전체 흐름을 보면 펀드에서 빠진 상당부분이 자문형 랩으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현상은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주식형펀드가 주식시장의 급락 폭을 고스란히 손실로 반영한 데 따른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다.

일반적으로 자문형 랩의 투자 스타일은 10여개의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하고 주식 투자 비중을 0~100%까지 탄력적으로 운용한다. 운용 능력에 따라 고수익을 거둘 수 있고 주식시장의 하락 국면에서도 펀드보다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자문형 랩은 펀드의 대안투자 상품으로 부각됐고, 올 초 대형주 집중투자로 단기간 고수익을 거두자 시중 자금을 빠르게 흡수했다.

여기에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간판 펀드매니저 출신인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대표와 서재형 한국창의투자자문 대표 등 무게감 있는 펀드매니저들이 자문사 '신장개업'에 나서면서 자문형 랩 돌풍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한국창의투자자문은 지난 주 첫 운용을 시작한 후 1주일 만에 6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자문형 랩 시장은 앞으로도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증권사들이 펀드보다 자문형 랩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다. 펀드의 판매보수는 최대 1.0%까지 낮아졌지만 자문형 랩은 판매 보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증권사들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르는 데 결정적 요인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증권사들이 내년에도 자문형 랩 판매를 더욱 확대하는 방안을 경영전략에 포함시키고 있다"며 "자문형 랩은 투자자들이 자신의 보유종목을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거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자금 유입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문사 성장으로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의 입지는 계속 줄어들면서 자산운용업계의 구조조정을 더욱 자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쏠림현상에 대한 부작용도 우려된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자문형 랩의 포트폴리오가 유출되면서 일부 투자자들이 추종 매매에 나서 주가가 급등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며 "고수익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고 가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주가 하락 시 불완전판매로 인한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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