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M&A 흥행과 IB의 한숨

더벨 황철 기자 2010.11.09 10:45
글자크기

[thebell note]

더벨|이 기사는 11월08일(08:46)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현대건설 (34,250원 ▼850 -2.42%) 인수전은 올해 M&A 시장에서 가장 풍성한 볼거리·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혹자는 드라마에 비유했고 일각에선 진흙탕 싸움에 빗댔다.



국내 최대, 세계 20위권 건설사 M&A는 규모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범 현대가 오너의 맞대결은 과거 '왕자의 난'을 연상케하며 흥행 요소를 더했다. 자본의 논리에 곁들여진 명분·실리 싸움이 극적 긴장감을 더욱 키웠다.

하지만 올해 마지막이 될 빅 매치(Big Match)를 넋 놓고 즐기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자본 시장의 영원한 '을', IB들이다.



고래 싸움은 피해가라?

최근 현대상선 유상증자 과정은 국내 IB의 심적 부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동양종금이 주관을 맡았지만 인수에는 동부·유진·솔로몬증권 등 중소형사 세 곳만 참여했다.

그동안 대형 딜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던 ECM 부문 강자들은 대어를 앞에 두고 입맛만 다셨다. 극도의 신경전으로 치닫고 있는 범 현대가의 싸움 속에 '소탐대실의 누'를 범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전통적으로 유상증자 주관·인수에 강점을 보여온 A사의 경우를 보자. A증권사는 현대상선 유증 참여를 적극 검토해 오다 내부 반발로 결국 투자 철회를 결정했다.

범 현대가 담당 기업금융파트에서 현대차그룹과의 관계를 고려해 인수를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A사의 눈치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발행한 해외 채권을 인수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현대그룹이 눈에 밟혔다. A사는 결국 현대건설 M&A 종료 전까지 양 그룹의 딜에 일절 참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B사의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B증권사 관계자는 "올해 ECM에 이 정도 큰 딜이 흔치 않아 유증 규모 등을 볼 때 탐이 나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현대그룹 지배구조로 연결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 섣불리 나서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게 업계 전반적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로 현대상선 유증은 인수사가 실권주를 전량 떠안는 조건이어서 민감성이 더욱 크다. 대규모 실권주가 발생하면 현대그룹 우호세력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이번 유증은 ECM 부문 변방에 머물러 있던 증권사가 물량을 독식하는 이례적 상황으로 종결됐다. 동양종금을 제외하면 동부·솔로몬·유진증권 모두 ECM 주관·인수25위권(3분기 누적) 밖에 밀려나 있는 중소형사다.

유진·솔로몬증권의 경우 올해 유증 부문에서 자체 인수 실적이 전무하다. 대표주관사와 공동으로 집행한 소액의 모집주선 정도가 성과의 전부다.

동부증권이 그나마 3건의 인수 실적을 올렸지만 금액 기준 점유율은 1.5% 정도로 미미하다. 사별 13~30%를 점하고 있는 대우·한투·우투증권 등 대형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힘의 논리보다 자본의 논리가 먼저

현대건설 인수전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굵직한 딜에 감초처럼 나타나는 해프닝으로 넘기기에 씁쓸한 구석이 있다. 비방·소송으로 얼룩진 재계 풍토와 힘의 논리에 짓눌린 자본시장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국내 IB 시장은 여전히 태동기에 머물러 있다. 질서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분명 겪어야 한다. 하지만 후진적 경제 논리를 답습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대형 M&A의 대부분이 외국계IB들의 잔치로 끝나고 있는 이유를 되짚어 볼 때다.

현대건설 차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