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 숨기면 '위기 부메랑'

머니투데이 김만배,김성현 기자 2010.09.28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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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바른 구상모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


- 담합 등 위법행위는 솔직히 인정해야 시장질서 유지
- 코카콜라·시스템에어컨업체 자진신고로 과징금 면제
- "공정거래 마찰은 법률보다 시장을 먼저보고 소통해야"


↑법무법인 바른 구상모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 ⓒ류승희 기자↑법무법인 바른 구상모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 ⓒ류승희 기자


공정거래는 건전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기업은 될 수 있는 한 경쟁을 피하고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독과점을 규제하고 경쟁을 촉진하지 않으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기업의 독과점은 부당한 가격 책정으로 이어지고 품질과 서비스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기업과 하도급 업체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필요 이상 하도급업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하도급업체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하도급업체의 위기는 부메랑처럼 대기업의 위기로 돌아와 국가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시장질서를 지키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공정거래 관련 규제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이유다.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가 정착되면서 독과점 문제는 국제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가격 담합을 해 해외 시장에 제품을 팔 경우 제재를 당하듯 해외 기업도 우리 시장에서 제재를 피해 갈 수 없다. 공정거래 관련 법률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환경에서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공정위서 법조인 입문, 모험이었지만 잘한 선택"

구상모(사진·45) 변호사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법조인 경력을 시작한 이 분야 전문 변호사다. 그는 1998년 사법연수원 수료 직후 사무관 특채로 공정위에 들어갔다. 9년 동안 정책과 집행을 두루 경험하고 심결전문관으로도 활약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무렵 진로를 놓고 고민했죠. 우리나라가 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하는 상황에 빠졌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산업구조나 경제구조 자체가 독과점 구조여서 기초가 취약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죠. 그래서 '경제 검찰' 역할을 하는 공정위 문을 두드렸습니다. 당시 공정위는 출범 초기여서 법조인의 길을 택한 입장에서는 일종의 모험이라고 생각할 만큼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지만 되돌아보면 참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류승희 기자ⓒ류승희 기자
그는 2007년부터 법무법인 바른에서 공정거래팀을 이끌고 있다. 이 분야 전문가답게 삼성그룹과 현대·기아자동차그룹, SK, LG, 포스코, 코오롱 등 국내 굴지 대기업의 자문과 소송을 맡고 있다. 연간 수행하는 사건 수만 70~80건에 달한다. 공정거래팀에는 6명의 변호사와 공정위 고위 간부 출신 전문가 2명이 포진해 있다.

"공정거래 관련 기업자문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소송이나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공정거래 관련 쟁점을 짚고 넘어가야 기업의 손실을 미리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인 소명이 기업과 경제정의 살려"

그는 공정거래 사건을 맡을 때마다 적극적인 사실 인정과 구체적 소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담합행위를 비롯한 위법 행위는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시장질서와 경제정의 뿐 아니라 기업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최근에는 음료업체들의 가격담합행위 사건에서 코카콜라 측 대리인을 맡아 과징금 면제 처분을 받아냈다.

"밤샘 조사 끝에 코카콜라가 담합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경영진을 설득해 자진신고 하도록 했지요. 담합행위 사실을 자진 신고하면 과징금을 면제받거나 감면받을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를 1997년 도입했다.1순위 자진신고자에게는 과징금 100% 면제, 2순위 신고자에게는 50%를 감면해주도록 하고 있다.

"고심 끝에 자진신고 했지만 다른 업체가 먼저 신고해 2순위로 밀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업체가 관련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해 1순위 지위를 박탈당했어요. 결국 우리가 적극적인 소명을 펼쳐 1순위 지위를 얻어내 과징금 전액을 면제받을 수 있었습니다."

시스템에어컨 제조·판매업체들의 가격담합 사건도 마찬가지 케이스.

"자진신고를 하더라도 1순위 지위를 받아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담합 사실을 밝히는 게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덮고 가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설득해 결국 1순위를 받아냈습니다."

그는 최근 세계 경쟁법 전문지 GCR(Global Competition Review)에 한국의 공정위법과 하도급법 쟁점을 소개하는 필진으로 참여했다.

ⓒ류승희 기자ⓒ류승희 기자
구 변호사는 하도급업체의 권익 보호에도 관심이 많다. 공정위에서 하도급 관련 법을 정비하면서 하도급업체의 경쟁력 강화가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올 초 관련 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단행본 '하도급법'을 펴냈다.

"하도급법은 내용이 복잡한데다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있는 법이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공정위에서 관련 법 제정이나 개정 당시 작업에 참여했던 경험을 거울삼았습니다. 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법 위반이 될 수 있고 입법 취지에 비춰보면 위반이 아닐 수 있는 사건이 많아요. 기계적 해석이 아닌 입법 배경과 입법 취지를 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법전을 보기 전에 현실을 봐야"

그는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를 꿈꾸는 후배 법조인들에게 소통과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변호사는 항상 의뢰인을 대할 때 단순한 법률 대리인이 아닌 후견인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의뢰인도 변호사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저 주어진 일을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 가족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일해야죠."

구 변호사는 좁은 법률 지식에 갇히지 말 것과 현장 감각을 폭넓게 기르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법전을 찾아보고 법률을 해석하는 것은 법대를 졸업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시장을 보고 사람을 보고 현실을 봐야 해답이 나옵니다. 법은 그 다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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