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실려온 기업살리는 외과의사"

머니투데이 류철호 기자, 배혜림 기자 2010.03.0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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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충정 최우영 변호사

"중환자실 실려온 기업살리는 외과의사"


"중환자실에 들어온 환자가 겪는 고통을 알면서도 메스를 댈 수밖에 없는 외과의사의 고민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런 의사의 고민이 있기에 환자가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거겠죠."

법무법인 충정의 기업 구조조정팀을 이끌고 있는 최우영(48) 변호사는 자신을 외과의사에 비유한다. 도산 위기로 숨통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기업을 회생시키는 일은 의사가 중상을 입은 환자를 수술하는 것처럼 긴박하게 돌아간다. 기업의 존속가치를 신속하게 판단하고 채권자와 채무자, 근로자 등 이해 관계인의 다양한 요구를 조정하는 일은 기업회생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신음하던 기업 되살아날 땐 '희열'=최 변호사는 "회생 사건은 일반적인 소송 사건과 달리 잘못될 경우 기업이 사망선고를 받을 수 있다는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업회생을 신청한 기업이 회생에 성공하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살아남을 때 느끼는 희열은 남다르다. 그는 "신음하던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거쳐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면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충정 최우영 변호사 ⓒ이동훈 기자↑법무법인 충정 최우영 변호사 ⓒ이동훈 기자
최 변호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전자부품 제조업체인 태일정밀 화의 사건을 담당하면서 구조조정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태일정밀의 재무 및 영업 등 경영상황을 파악하고 전국에 산재한 공장들을 방문해 근로자와 채권자 등의 이해관계를 조정, 계열사 5곳까지 화의 인가결정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는 화의 사건이 폭주하면서 국내 로펌 변호사들이 호황을 누렸던 시기였다. 이들 가운데서도 최 변호사는 기린산업, 한창, 뉴코아와 미도파, 우성타이어, 동서산업 등의 기업을 살려내면서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의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다.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충정의 '구조조정 전문팀'도 최 변호사의 작품이다. 그가 이끄는 구조조정팀은 빠르고 정확한 업무처리로 의뢰인들의 신뢰도가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충정은 전 세계 135개국 160개 로펌들로 이뤄진 글로벌 법률회사협회인 '렉스 먼디'(LEX MUNDI)의 한국 대표로 국내 유일의 회원사(member firm)이기도 하다. 최 변호사는 "렉스 먼디 소속 로펌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른 로펌과는 차별화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는 최근 국내에 진출한 해외 기업이 늘어나고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도 활발해지는 추세에 맞춰 국제도산법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그는 "다국적기업의 도산에 관한 국제적인 협력과 소통의 필요성이 커진 시점"이라며 "국내 기업은 물론이고 외국 기업들의 국내 도산절차 관련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환자실 실려온 기업살리는 외과의사"
◇CEO·회계사 역할까지 '일인다역'=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회사정리법은 생소한 법률 분야이었다. 판사들도 순자산, 이자보상배율, 부금급부금 등 회계용어에 난감해 하던 때였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최 변호사는 대학 시절부터 세법과 회계학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한 덕분에 재무제표만 봐도 기업의 건강진단을 할 정도의 안목을 갖추게 됐다. 로펌에서 기업회생 계획을 짜기 위해 처음에는 회계사를 투입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회계사에게는 리갈 마인드가 부족해 사건을 오히려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회생계획을 만들어 제출하려면 회사의 사정에 따라 부채를 얼마만큼 줄이고 영업활동을 어느 정도 늘릴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야 하기 때문에 회계 이론을 갖추는 일은 필수적입니다. 세법과 회계학을 공부해 둔 덕에 숫자에 강한 법조인이 됐죠."

최 변호사는 2000년 대우자동차 회사정리 사건을 수임해 국내 최대 규모 기업의 회생절차를 최단기간 내에 처리한 비공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 역시 회계사 못지않은 숫자 감각 덕분이었다.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고 기업에 대한 분야별 이해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무 및 회계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으면 신속한 판단력도 갖추게 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구조조정, 기업 재활 뿐 아니라 '성장동력' 역할도=기업에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병에 걸려 신음하다가 회생하기도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사라지기도 한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최근에는 미국 발 외환위기로 인해 다시 한 번 기업 구조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라는 단어가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은 기업들이 임직원들을 퇴출시키고 조직을 매각, 폐쇄하던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구조조정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부정적이다.

하지만 수익성이 낮은 부문에 고용돼 있는 인력과 자본을 수익성이 높은 부문으로 이동시키면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조정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구조조정의 의미가 과거에는 기업이 사업을 축소하고 고용을 줄이는 '규모의 조정'이었다면 지금은 새로운 성장점과 동력을 찾아 자본과 인력을 재배치한다는 적극적 의미로 사용,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 변호사는 "구조조정은 재활 뿐 아니라 기업을 성장시키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구조조정 사건에 대한 법률 수요가 향후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경제침체 여파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만큼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을 회생시키는 의사의 역할 뿐 아니라 기업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경영 컨설턴트'로서의 변호사 역할은 더 커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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