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금융회사 경영권승계 플랜

머니투데이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장 2010.09.1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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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테스]금융회사 경영권승계 플랜


2005년 초 세계 최대 보험사 AIG는 일련의 회계부정 스캔들에 휘말린다. 곧이어 뉴욕검찰청의 강도 높은 조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한달 뒤 AIG 이사회는 CEO 행크 그린버그를 서둘러 해임했다. 1968년 이래 37년간 1인자로 재직하면서 변방의 조그만 보험사였던 AIG를 세계 최대 보험사 반열에 올려놓은 한 영웅의 시대가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린버그의 퇴임 당시 그를 이을 뚜렷한 승계플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마틴 설리번이 급히 CEO 자리에 올랐으나 그로부터 불과 3년 만인 2008년 AIG는 파산의 길로 접어든다.



1982년 영업점 3개의 초소형 은행으로 출범한 신한금융그룹은 30년도 안돼 국내 최고 자리에 올랐다. 신한금융의 눈부신 성장에 현 경영진의 탁월한 리더십이 한몫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신한금융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사건의 발단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흐르면 밝혀지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경영권 승계플랜의 부재가 이번 사태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신한금융의 경우 최고경영자의 재임기간이 20년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여느 금융회사와 마찬가지로 내부에서 공식적인 경영권 승계 논의가 단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임자를 둘러싼 장기간의 불확실성이 경영진 간 갈등의 소지를 키워온 셈이다.



이번 사태로 신한금융의 기업가치는 이미 상당부분 훼손됐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경영권 승계플랜이 부재한 상태에서 경영권 공백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AIG의 사례는 경영권 승계플랜이 없는 상태에서 경영권에 급작스런 공백이 나타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경영권 승계플랜의 중요성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도 극히 최근 일이다. 그동안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경영권 승계문제를 일상적 경영활동(ordinary business operations)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뱅크오브아메리카의 CEO 켄 루이스가 승계플랜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사임을 발표해 혼란을 야기한 직후 SEC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경영권 승계가 일상적 경영활동을 뛰어넘는 중대한 지배구조 및 리스크관리 이슈이라는 주주들의 주장을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주주들의 입김이 강한 미국에서조차 승계플랜을 갖춘 은행은 절반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경영권 승계 논의는 우리 인간의 본성에 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의 모든 CEO는 가능하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당연히 현직 CEO 입장에서는 승계논의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고, 그 결과 조직 내부에서 승계문제를 입에 올리는 것이 금기시되고 마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는 승계문제를 경영진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되며, 내부 지배구조의 중추인 이사회에서 승계문제가 공식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이사회는 CEO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요건들을 정의한 다음, 후보자 풀을 선정하고 관리하는 플랜을 정기적으로 심사하고 승인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영권 승계플랜이 지속성을 가진 하나의 의미있는 관행으로 제도화될 가능성이 싹트게 된다.

승계플랜 가동으로 후보자 풀이 효과적으로 관리될 경우 조직의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으며, 마땅한 후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특정 CEO의 재임기간이 지나치게 장기화되는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더불어 일부 자질을 갖추지 못한 조직 외부의 후보자가 무리하게 CEO 자리에 오를 위험을 사전에 차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경영권 승계 여부에 국내 최고 금융그룹의 운명이, 나아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장래가 달려 있다. 주주와 이사회 모두 승계플랜 수립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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