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머니투데이 김석규 GS자산운용 대표이사 2010.09.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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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폰테스]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들아!"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클린턴 진영의 주메시지로 채택된 이 문구는 홍보전략가 제임스 카빌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간단한 구호가 전국적으로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빌 클린턴을 백악관으로 인도하게 된다. 사실 클린턴은 법대 출신이고 정작 경제학은 공화당 후보였던 부시가 전공했음에도 말이다.

한국의 2002년 대선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다소의 논란이 있었음에도 이명박 정권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라는 화두를 선점한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이 사례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현대사회에서 경제는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상의 중요성을 지닌다. 경제문제는 그 자체로는 생존의 물리적 조건 해결이라는 이슈에 국한되지만 동시에 다른 모든 사회활동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경제적 상황이 정치적 발전에 중대한 제약요인이 되며 문화적·도덕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일찍이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에서 사람은 부유해야만 인의가 따른다고 설파한 것이다.

굳이 사마천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시스템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이미 경제문제는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문제는 경제'라는 구호는 정치인들 사이에 가장 인기있는 메뉴가 되었고 서점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나오는 경제서적으로 홍수를 이룬다. 도하의 각 신문은 청소년을 위한 경제교육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으며 각종 경제 관련 이슈가 보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 경제과잉의 시대에 우리가 당면한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경제가 어느 틈엔가 수단이라는 지위에서 격상되어 궁극적인 목적이 되고 신앙이 되었다는 점이다.

오래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사태를 우려하면서 그 폐해를 지적한 바 있다.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구분, 한계효용의 기본개념 등 경제학의 이론 정립에 많은 원천적 아이디어를 제공한 경제사상가였다. 그는 시스템 유지와 행복 구현의 수단에 불과한 경제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목적이 되었을 때 공동체 붕괴와 심각한 인간성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우려를 단순한 기우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현대 사회가 당면한 많은 모순과 문제가 경제적 관점이라는 단일기준에 지나치게 경도된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다. 다위니즘과 결합된 시장주의라는 종교에 투항함으로써 탐욕은 미덕이 되었고 그것을 상대화할 정신적 능력은 현저히 저하되었다.
반면 그에 따른 많은 모순은 '문제는 경제야'라는 한 마디에 은폐되었다. 2008년의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이러한 은폐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단언하건대 이 정신적 좀비 상태를 치유할 수 없다면 아무리 많은 경제교육을 하고 경제지식을 공급한다 하더라도 또다른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는 중요하다. 그러나 소위 '지속가능한 성장'이 화두가 된 21세기에 경제문제 해결은 경제학이라는 분절적 지식을 넘어 인간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비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한국 CEO들 사이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보가 아니었듯 문제는 단순히 경제만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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