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글로벌 신용등급, 왜 고작 BBB-일까

더벨 강종구 기자 2010.08.18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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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신용등급①

더벨|이 기사는 08월17일(17:32)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63,000원 ▼100 -0.16%) 포스코 (375,000원 ▼500 -0.13%) SK텔레콤 (57,500원 ▼900 -1.54%) KT (41,800원 ▲100 +0.24%)에 꿀릴 게 없는 현대차그룹.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세계 시장점유율이 확대되고 실적이 창사 이래 최대를 기록할 정도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국내 신용등급은 포스코 등 3개 기업이 정부와 같은 AAA(삼성전자는 무차입 경영으로 신용등급이 없지만 평가를 받는다면 당연히 AAA).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최상위 등급으로, 망할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 비상식적이다. 현대차 (250,500원 ▲4,500 +1.83%)는 한 끝발(?) 차이인 AA+. 역시 국가가 부도위기에 처할 정도의 심각한 쇼크가 아닌 한 망할 수 없다는 등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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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글로벌 시장으로 가면 천양지차다. 삼성전자 등 빅4는 A 또는 A-(S&P기준)로 우리나라 정부의 신용등급과 맞먹는다. 일부 기업은 국가 부도가 발생해도 망하지 않을 기업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반면 현대차그룹의 4형제인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105,600원 ▲2,100 +2.03%) 현대모비스 (223,500원 ▲500 +0.22%) 글로비스 (117,300원 ▼300 -0.26%)는 투기등급을 간신히 면한 BBB-(S&P 기준)에 불과하다. 무디스로 가면 기아차는 투기등급 기업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등과 어깨를 견주지만 밖에 나가서는 까마득히 올려다봐야 한다.

현대차그룹 뿐 아니다. 삼성전자에 버금가는 국내 대표기업 LG전자 (110,100원 ▲600 +0.55%), 막강한 현금 창출력을 자랑하는 SK에너지 (111,000원 ▼1,700 -1.51%) S-oil (60,800원 ▼300 -0.49%) GS칼텍스 등 정유 3사 역시 국내에서는 초우량에 해당하는 AA급을 자랑하지만 글로벌 신용등급은 BBB0에 불과하다. 만약 국내 등급이 이 정도라면 회사채 발행 자체가 쉽지 않은 수준이다.

안방에서는 고작 한 노치 차이인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신용등급이 왜 글로벌 시장에서는 확 벌어지는 것일까.


신한금융투자의 크레딧애널리스트인윤영환 선임연구위원은 그 이유를 글로벌 평가사와 국내 평가사의 너무나 다른 '눈높이'에서 찾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시장의 진화와 새로운 위험요인을 신용등급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글로벌 등급과 미스매치가 심화되는 것은 물론 신용평가에 대한 신뢰가 땅에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한 분석보고서 '신용등급의 논리1; 신용평가의 눈높이'에서 윤 애널리스트가 가장 먼저 지적한 구식 잣대는 바로 '정부의 지원 가능성'에 대한 기대 수준이다.

국내 신용평가사에게 정부의 지원 가능성은 거의 미신에 가까울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 인해 기업의 재무정책이 확연히 달라도 신용등급으로 이를 구분해 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은행마다 재무건정성이 다르고 유동성 보유 수준이 달라도 로컬 등급이 천편일률적으로 AAA인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지원 가능성 때문에 신용등급이 높아지는 것은 공기업이나 은행 뿐 아니다. 국민경제적으로 중요한 기업의 등급에도 정부가 망하게 두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깔려 있다. 그만큼 신용등급은 부풀려져 있다.



윤 애널리스트는 "로컬 신용평가에는 국가의 간여 가능성이 크게 반영된다"며 "적어도 AA급 이상의 기업이 흔들리는 상황이면 당국이 거의 예외없이 어떤 형태로든 팔을 걷어 부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눈높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글로벌 신용평가사를 찾아가면 정부만 믿고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 것은 어림없다. 글로벌 평가사 역시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등급에 반영하지만 본질은 여전히 기업 그 자체의 상환능력이다.

특히 재무정책만 보고도 대략 어느 정도 등급을 받을지 짐작할 수 있다. 윤 애널리스트는 "비금융기업의 경우 부채비율, 현금흐름 커버리지, 유동성리스크 등을 종합한 재무정책을 보수적, 보통, 공격적으로 나누면 거의 그대로 A이상/BBB/BB이하에 해당한다"며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지원 가능성은 시장이 성숙할수록 줄어들고 직접 지원에서 간접 지원으로 옅어지게 마련이다. 금융시장이 성숙하면 일개 기업이 망하더라도 대규모 금융혼란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당국이 무리하게 개입할 이유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로컬 신용등급이 과잉 포장돼 있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수많은 국내 대기업들이 혼쭐이 난 유동성 리스크. 글로벌 평가사와 달리 로컬 평가사들이 도외시하는 대표적인 잣대 중 하나로 꼽힌다. 신용평가사들의 무관심은 국내 기업들이 유동성위험을 무시하는 경향으로 이어졌다고 윤 애널리스트는 판단하고 있다.

글로벌 평가사들은 유동성리스크를 핵심 평가요소로 보지만 로컬 평가사들에게는 아예 유동성리스크에 대한 개념 정립 자체가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초우량 등급을 받는 기업이 글로벌 등급으로 가면 4~5단계나 떨어지는 결정적 이유다.



실제로 AA급 기업 대부분은 부채비율이 100% 미만이고 차입금의존도도 20% 미만에 불과하지만 유독 단기성차입금비중(단기성차입금/총차입금)은 50%를 상회한다. 전체 차입금의 절반 이상을 1년 안에 갚아야 하니 금융경색 상황만 오면 금리 불문하고 급전마련에 나서기 일쑤다. 투자자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으니 신용등급을 높이 줄 수 없다.

윤 애널리스트는 "2008년처럼 은행이 외화 유동성 경색에 빠지면 자칫 회복불능의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며 "이런 구조로는 재무정책이 공격적이라는 딱지를 떼기 어렵고 자연히 글로벌 신용등급이 BBB를 넘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신용평가사가 눈높이를 높이면 시장과 기업의 리스크 수준이 높아진다"며 "유동성 리스크에 대한 신용평가의 눈높이에 회사채 시장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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