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개발만능주의에 '인셉션'된 나라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2010.08.0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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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개발만능주의에 '인셉션'된 나라


영화 '인셉션'의 흥행요인 중 하나는 빼어난 시각적 효과다. 꿈속에서 설계되는 도시는 반으로 접히기도 하고 도로가 수직으로 서기도 한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 다리가 뚝딱 생기고 초고층 건물이 1초 만에 솟아오른다. 하지만 주인공 코브가 설계한 도시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만다.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이 우리나라 현 상황을 떠올리게 해서다. 불과 최근 몇 달 사이 우리는 그동안 꿈꿨던 개발계획들이 무너지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국제금융업무지구, 최첨단산업단지, 친환경 수변도시로 지어져야 할 미래의 도시가 여기저기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특히 지난주는 시장에 악재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지난 5일 서울시가 9000억원 규모의 마곡지구 워터프론트 사업 백지화 검토를 밝힌데 이어 같은날 지식경제부는 인천 청라, 영종 등 경제자유구역 35곳의 해지를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6일에는 31조원 규모의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리는 용산 국제업무지구마저 건설사와 코레일 협상 결렬로 중단위기에 처했다.

한강변 초고층 개발과 재개발·뉴타운사업도 마찬가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달 25일 경기 성남시 주택재개발사업 중 3곳을 중단한다고 선언했고 안양 구도심 재개발사업을 포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수도권 최대 알짜상권으로 꼽혔던 판교 알파돔시티 등 대형 PF사업이 좌초위기에 몰렸다는 얘기는 이제 충격적인 소식도 아니다.



원인은 장기적 부동산 침체와 건설경기 악화로 인한 자금조달 실패, 무분별한 개발사업으로 인한 부채과다 등이겠지만 근본적 이유는 애초에 그림을 마구 그린 데 있다. 현실은 무시한 채 영화처럼 상상력만 남발한 탓이다.

우리는 그동안 허황된 개발만능주의에 '인셉션'(주입)된 듯 하다. 개발하기에 급급해 화려한 청사진 꾸미기에 치중했다. 요트장, 커넬웨이, 테마형 레저스포츠문화단지, 초대형 복합쇼핑몰 등 이름만으로도 거창하다.

피해는 장밋빛 꿈을 설계했던 정부와 기업뿐 아니라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르고 몽상에 젖어 기대감에 부풀었던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꿈을 꾸는 동안은 진짜 같지만 꿈에서 깨면 진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이제 꿈에서 깰 때다.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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