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실거주 수요 계속 증가할까?

이건희 외부필진 2009.10.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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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의 행복투자]

며칠 전에 친한 후배와 식사하며 이야기 나누던 중, 그 후배는 아들이 결혼할 때 돈 많이 들어갈 것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사람 사는 아파트가 교통 좋은 곳에 방 4개인 40평대이고 다른 자식은 없길래, 아들 결혼한 뒤 집에서 함께 살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제가 얘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 비용 중에 주거할 집 마련에 들어가는 비용, 즉 전셋집 마련 비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펄쩍 뛰면서 함께 살면 서로 불편한데 어떻게 함께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도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수요를 증가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됩니다.



서울 시내 전세가가 오르고 있는데, 전세가에 크게 영향을 주는 요인은 공급 대비한 실거주 수요입니다. 서울 지역 입주 아파트 물량을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가 집계한 결과에 의하면 ▲2008년 4만9000가구 ▲2009년 3만가구 ▲2010년 2만8000가구 ▲2011년 2만가구입니다.

반면에 현재 서울에서 추진되는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사업은 247개 지역에서 23만가구를 상회합니다. 서울시에서는 2010~2011년 사이에만 최대 13만가구가 멸실되고 내년에는 주택멸실 규모가 최대 9만8000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멸실 가구에서 생겨나는 이주 수요는 대형보다는 주로 중소형인데 내년부터는 입주할 아파트 중에 중소형(85㎡ 이하) 아파트가 절반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주 수요를 최대한 낮추어도 5만가구 이상 부족한 상황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수요 공급의 균형에 영향을 주는 이러한 일시적인 요인 이외에 서울에서 실거주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요인들이 있습니다. 실거주 수요는 사람 수보다는 세대수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서두에 얘기한 것처럼 결혼으로 분가하는 것은 사람 수는 변동시키지 않으면서 세대수를 증가시키고 실거주 수요를 증가시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혼인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한해 동안 전국적으로 혼인이 21만7715건이었으며 그중에서 경기가 7만8004건, 서울이 7만1753건입니다. 즉 전체 혼인 중에서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이 차지하는 구성비는 51.2%에 달합니다. 이런 사실도 수도권의 주택수요 증가가 지방에 비하여 더 크게 나타나는 요인이 됩니다. 서울에서 한해 7만건의 혼인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결혼 전에 남녀 각자 독립된 집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혼인으로 인하여 상당한 숫자의 주택이 추가로 필요해지는 셈입니다.

아래 표에 보이듯 서울 인구는 2003년까지는 줄어들다가 2004년부터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들던 시기에도 세대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인구가 늘어나는 시기에는 세대수 증가가 더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세대당 사람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실거주 수요 계속 증가할까?


1인 가구의 비중은 1980년에는 총 가구의 4.8%에 불과하던 것이 90년 9.0%, 2000년 15.5%, 2005년 20.0%로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1인가구와 2인가구를 합하면 42.2%에 달합니다. 가구원수가 감소하는 요인은 ▲장성한 자식이 결혼하여 분가하는 경우 ▲미혼이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부모님 집에서 나와서 사는 경우 ▲남편이나 아내가 지방에서 직장을 다녀야해서 서울과 지방에 두 집 살림하는 경우 ▲함께 살던 부부가 별거하거나 이혼하여서 따로 사는 경우 등 다양합니다. 이 모든 요인들이 아직은 추세가 진행 중이라 하겠습니다.


1인가구는 원룸, 오피스텔 등으로 수요가 분산되기 때문에 전부다 아파트로 가는 수요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수는 아파트에서 주거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지방에 사는데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딸에게 나홀로 아파트의 작은 아파트를 전세 얻어주었습니다. 그 부모 말인즉 딸 혼자 지내는데 원룸보다는 경비원 있는 아파트가 더 안전해서 보증금이 더 비싸더라도 그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들을 서울에서 대학 보내는데 작은 아파트 하나를 전세로 얻어주었습니다. 아들이 혼자 사는 서울에 엄마가 가끔 올라와서 머물 때에 아파트가 더 편하며, 아버지도 서울에 출장 오면 아들이 사는 아파트에 머물다 갑니다.

아파트가 주거의 편의성과 만족도가 더 높아서 원룸으로 가는 수요 중 일부는 훗날 경제력만 더 늘어나면 작은 아파트로라도 옮길 수 있는 잠재적 수요입니다. 이렇게 변해가는 세태를 보면 대단지와 중대형만이 투가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패턴에서는 벗어날 필요도 있습니다. 소단지와 소형평형에 대한 실거주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리라고 전망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주택의 형태 중에 아파트에 사는 것을 가장 선호하기 때문에 주거 여건이 별로 좋지 않은 주택에 살던 사람도 생활수준과 경제력이 올라가면 좀 더 나은 환경의 아파트로 옮기려 합니다. <2009 서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8년 말 서울의 주택수는 총 323만1707 가구로 2007년에 비해 5만9202가구(1.9%) 증가했습니다. 주택유형별로는 아파트가 42.7%로서 가장 많으며 다가구주택 30.6%, 다세대주택 14.2%, 단독주택 7.1%, 연립주택 4.4%, 비주거용 건물 내 주택 0.9%입니다. 서울에서 지난 20~30년 동안 아파트가 계속 늘어났음에도 아직도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 절반이 넘습니다.

만약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살기를 가장 원한다고 가정한다면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거의 다 아파트로 옮겨갈 때까지 아파트 실거주 수요는 계속 늘어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아파트 가격에 비하여 경제력이 부족하면 옮기고 싶어도 옮기지 못하므로 미래의 잠재적 실거주 수요가 많다고 지금 당장 실제 구입에 나서는 수요도 많다고 곧바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 구매의 수요가 증가하는지 여부는 아파트 가격 대비한 사람들 소득수준에 크게 좌우됩니다. 또한 아파트 구입 시 경제적으로 당장 부족한 부분은 대출로 충당하기 때문에 금리도 크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반면에 전세는 구입에 비해서는 부담이 훨씬 적기 때문에 실거주 수요에 좀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경제 침체 시에는 매매가 조정으로 인한 투자수요 둔화와 더불어 개인 경제력 하락으로 실수요도 둔화되며, 경제 활황 시에는 사람들 형편이 좋아지면서 아파트로 갈 능력이 늘어나서 아파트 실수요가 늘어납니다. 경제적으로 아래 계층이 사는 집의 수준을 과거와 비교하더라도 꾸준히 향상되어왔습니다. 즉 사회적으로 빈부양극화가 심해지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사람들 경제수준이나 생활수준이 올라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아파트로 옮기려는 실수요의 증가도 장기적 이어진다고 봐야합니다. 그래서 공급이 상당기간 동안 계속 필요합니다.

한편 안 좋은 환경의 주택에 살던 사람이 좋은 환경의 아파트로 옮겨가는 것은 집을 바꾸는 것이지 주택 절대 수요 자체가 느는 것은 아닙니다. 즉 이 부분에서는 주택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택 중 아파트 수요가 늘어나는 것으로 말해야지 정확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언젠가 균형을 찾아가겠지만 서울에 아직까지 재래식 동네가 많고 아파트 아닌 주택이 절반을 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주택이 아파트나 또는 타운하우스처럼 아파트에 준하는 수준의 주택으로 바뀌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 아직까지 절반을 넘는 상황에서 이들 주택 중 일부는 일반 주거 목적이 아닌 용도로 전환되는 것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사업체에서 일반주택을 구입하여 사무실로 사용하거나 부대시설로 이용하는 집들도 있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주택을 개조하여 상업용도로 전환하여 임대를 주는 것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희 집 근처 어떤 다세대주택은 5가구가 살던 집이었는데, 집 전체를 다른 용도로 리모델링하였습니다. 건물을 부수지 않지만 주거용 집으로서는 멸실되어 5가구가 다른 집으로 옮겨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도 주거용 주택의 수요 공급 균형을 불리하게 만드는 작은 요인으로 보태집니다.



외국인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실주거 수요 증가에 기여합니다. 외국인으로서 국내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은 적지만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전체 숫자만을 본다면 이미 100만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아파트나 일반 주택에도 주거합니다. 서울에는 외국인에게 월세로 임대주면 높은 임대수입을 얻을 수 있는 곳들도 있습니다. 일반 주택을 외국인들이 머무는 숙소로 전환하는 집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외국인에 의한 수요가 아파트에 대한 직접 실수요가 아니라도 일반 주거용이었던 주택을 외국인이 사용하게 전환함으로써 일반인에게 주거용으로 제공되는 주택의 숫자를 줄입니다. 이와 같이 기존 주택의 사용 목적이 여러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은 영구적인 멸실 효과를 나타냅니다.

실주거 수요의 증가를 가져오는 다양한 요소들 중에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고 한시적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결혼한 뒤 분가로 인하여 실거주 수요가 늘어나지만 언젠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집을 물려받게 됩니다. 결국 언젠가는 결혼으로 세대수가 늘어나는 속도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집을 물려받는 속도가 균형에 도달할 것입니다. 더욱이 부부당 아이가 한명인 집안끼리 사돈을 맺으면 결혼하는 시점에서는 집이 한채 추가로 필요해지고 궁극적으로는 두채가 생겨나는 것이라서 먼 미래에는 지금과는 달리 수요보다 공급 초과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부부당 출생아 수는 2008년에 1.19명에 불과하고 앞으로 늘어나더라도 2명에 훨씬 못 미치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인구 증가 추세도 언젠가 꺾일 것입니다.

재개발과 재건축도 장기적으로는 수요 공급상 마찬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멸실되는 숫자보다 더 적은 수의 아파트를 짓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멸실한 수와 똑같도록 1대 1 재건축하는 것이 최소 기준이 되고, 멸실한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지을 것입니다. 용적률은 지금과 같게 유지되거나 조금이라도 더 높아져서 공급 증가에 기여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공급 대비한 실거주 수요 증가를 가져오는 여러 요인들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겠지만 상당 기간 동안은 지속될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경제 전체적인 흐름이 안 좋아서 행동으로까지 연결되는 수요 증가는 일시적으로 멈추는 시기가 가끔 있더라도 잠재 수요가 충족될 만큼 최종 균형에 도달하기까지는 내재되어있을 요소들입니다.

최근에 수요공급 불균형으로 인한 전세란 심화에 따라 정부에서는 보금자리주택 공급 조기 확대 계획을 발표한바 있습니다. 보금자리주택 등 서민주택을 확대키로 했지만 서울 입주물량이 절대적으로 많지는 않으며 건설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입주 시기까지 시차도 있어 단기적인 전세란은 어느 정도 불가피할 수 있습니다. 전세란 심화로 인하여 서울에서 1억원으로 구할 수 있는 전셋집이 1년 만에 1만7000여가구, 17%가 감소했습니다. 소형 아파트 품귀현상은 매매가에도 영향을 주어서 1억원 미만의 아파트가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현재 1억원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는 200여채에 불과하여 1년 만에 55%나 줄었습니다.

서울에서 다양한 형태로 실거주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아파트 가격 안정을 위해서라도 아파트 공급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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