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전 쯤 도착해 기자와 함께 집무실로 향하며 "그간 여러 회사 거치며 이임식을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뭐…"라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던 그였다. 지난 토요일 오전에는 집무실에 나와 직접 짐 정리를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기념사를 읽어 내려가던 목소리는 평소의 거침없던 중저음이 아니었다. 행사장에 들어오기 몇 분 전 집무실에서 마지막까지 직접 손을 봤던 글이었다. 그럼에도 '검투사'답지 않게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순간순간 멈칫거렸다.
기념사가 끝난 뒤 곧바로 이임식이 이어졌다. 직원 대표로부터 꽃다발과 재직기념패를 받아 든 황 회장은 옅은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석별의 정을 새긴 글귀가 낭독되자 감정이 북받치는 듯 손수건을 꺼내 연신 땀을 훔쳐냈다. 한 측근은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요즘 와서 저렇게 땀을 많이 흘린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임사는 35년을 기업인이자 금융인으로 살아온 황 회장의 소회로 채워졌다. 기억은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키자' 모교인 서울고의 교훈을 좌우명 삼아 살았다고 했다. 가장 오래 근무했던 삼성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악연으로 끝난 우리은행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금융당국의 징계로 인해 발전이 둔화되거나 직원들이 위축돼서는 안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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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소명의 노력을 계속 하겠다"는 말로 소송 가능성도 열어 놨다. 우리은행 관련 임직원과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며 당국에 대한 불만도 남겼다. 그러나 금융시장으로의 복귀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한 듯 "그간 키워주고 성원해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고, 금융인들에게 "힘을 내라"고 당부했다.
40여 분간 진행된 기념식과 이임식을 끝낸 황 회장은 '정관자득(靜觀自得)'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몰려든 취재진을 뚫고 자리를 떴다. '차분한 마음으로 사물을 볼 때 세상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환송해준 임직원들에게 남긴 말이지만, 절치부심하고 있는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