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 毒 or 藥? 3가지 시나리오

머니투데이 정영화 기자 2009.09.0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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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출구전략Ⅰ- Money Exit / 전문가 진단

출구전략 毒 or 藥? 3가지 시나리오


"지금은 환자에게 몰핀을 투여한 것과 비슷하다. 경기가 좋지 않아 극약처방으로 몰핀을 투여했는데 갑자기 중단해버린다면 어떻겠는가?"

"위기상황에서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금리를 낮췄다면, 반대로 위기에서 벗어났으면 이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자산가격 버블과 인플레이션을 줄일 수 있다."



섣부른 조기 출구전략을 썼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과 출구전략을 쓰지 않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저울로 단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까?

금리인상 등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출구전략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시장 참여자들 입장에서도 앞으로 경제나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출구전략은 원래 군대 용어에서 나온 말이다. 군사작전에서 아군의 희생 없이 전쟁에 투입된 군대를 안전하게 철수한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가 급하강하면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펼쳤던 대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만큼 서서히 안전하게 철수할 때가 됐다는 뜻에서 나오는 말이다.

정부가 아직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았지만 시장금리는 이미 꿈틀거린다. 8월14일 91일물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는 전일보다 0.02%포인트 오른 2.47%로 10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세를 기록했고, 올 상반기 3%대에 거래되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4%대로 올라섰다.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일부 시중은행 특판 예금 가운데 5%짜리가 나오는 등 벌써부터 출구전략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 이미 정부가 외화유동성을 환수하는 등 광범위한 의미의 출구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출구전략인 금리인상, 긴축재정 정책도 조만간 쓰지 않겠냐는 것이다.

어차피 지난해 금융위기 해결책으로 비정상적으로 금리를 낮춘 상태이기 때문에 서서히 정상화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가 많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인플레이션이나 자산버블 심화 등 부작용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출구전략을 조기에 시행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이제 막 경기가 회복돼 가는 중인데 조기에 출구전략을 쓰면 찬물을 끼얹을 셈이라는 것이다. 또한 가계대출이 늘어난 상황에서 대출 이자가 불어나 서민들의 삶을 더욱 옥죄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출구전략이 시행될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과 이를 시행하지 않았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가운데 어느 것이 더욱 클지 시장과 정부는 저울질 중이다.

출구전략이 시행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시나리오 1
자산버블이 줄어들고 경기정상화


저금리로 인해 유동성이 넘쳐나자 각종 투기자금이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원자재 시장 등으로 몰려와 자산가격 거품이 계속 늘어난다. 이런 자산가격 버블은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출구전략이 시행되면서 금리가 인상되자 시중 투기자금이 위험자산에서 점차 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옮아간다. 자산가격 거품이 점차 해소되고, 무분별한 대출도 줄어든다.



그동안 저금리의 단맛에 빠져 대출을 늘렸던 사람들은 금리가 올라가자 점차 추가대출을 포기한다. 대출이 줄어들면서 사회적 문제가 됐던 가계부실 문제가 점차 개선된다. 가계부실이 줄고 자산 건전성이 강화되면서 경기는 점차 정상화된다.

  여기에 한 표

▶김현욱 KDI 연구위원
"출구전략은 지속가능한 성장패턴 만들 것"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그냥 저금리 상태로 나둘 경우 투기자금이 계속 버블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우려가 크다. 그렇게 될 경우 자산 버블로 인한 인플레이션 심화라는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출구전략은 정책 정상화의 과정이라고 본다. 지금 상태로 시장을 그대로 놔두면 자산가격 버블과 인플레이션에 의한 불필요한 경기변동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금리를 조금씩 조절해나가야 지속가능한 성장패턴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이미 외화유동성 회수 등 광범위한 출구전략이 시행되고 있고 금리인상 등 좁은 의미의 출구전략도 곧 시행될 것으로 본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 상태를 그대로 놔둘 경우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기가 회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개선추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출구전략이 조만간 실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선진국들이 출구전략 실시를 미룬다면 우리 역시 과감하게 나홀로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고, 금리 인상 폭도 경기진행상황을 봐가면서 서서히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나리오 2
출구전략 시행 동시에 경기회복 끝




올 연말께 정부가 금리를 0.25% 인상하는 것을 필두로 점차 금리가 오르는 분위기로 전환된다. 시중금리가 오르면서 일부 이자소득자들은 환호를 지르지만 대다수 빚이 많은 서민들의 이자 부담은 더욱 커져 간다. 절대 다수인 서민들은 이자 부담을 감당해내기 어렵다 보니 지갑을 열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

서민들은 소득이 늘지 않은 상태에서 대출 이자마저 올라가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들자 지갑을 닫아버린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기업들의 매출이 다시 줄어든다. 살아나는 것 같던 경기는 어느새 하강세로 돌아선다.

지난 연말처럼 기업들은 또다시 구조조정을 시작하는 등 경기는 다시 살얼음판을 걷게 된다. 실업률은 더욱 치솟는다. 실업률이 늘어나면서 소비할 수 있는 계층이 갈수록 줄어든다. 경기는 악순환 일변도를 걷는다.



  여기에 한 표

▶김영익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출구전략 시기상조, 내년 하반기쯤 논의 적절"


지금의 경기회복은 일시적인 것이지, 진정한 의미의 경기회복이 아니다. 지금은 출구전략을 쓸 때가 아니다. 지금의 경기회복은 정상적인 의미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수요가 살아나서 기업매출이 늘고 이익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보여야 하는 데 올해 기업이익이 좋아진 것은 수요 증가에 의한 것이 아닌 비용절감, 재고소진,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이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수요가 본격적으로 살아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에 출구전략을 썼을 경우 소비가 더욱 위축될 수 있는 부작용이 크다.

가장 큰 문제는 가계대출이다. 현재 700조원에 달하는 가계대출로 인해 서민들이 이자부담이 커서 소비여력이 별로 없는데 섣불리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가계대출 부담이 늘어 수요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기업의 매출이 줄고 이익이 줄어들면서 경기는 다시 하강세로 돌아설 수 있다.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자산 가격 버블을 걱정하는 시각이 많지만, 4분기에는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주가는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다. 여기에 출구전략까지 쓰게 되면 증시하락폭이 깊어지고 경기에 미치는 악영향도 더 커질 것이다.


  여기에 한 표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
"몰핀으로 연명 중단하면 위험"




미국 금융부실이 해결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공급과잉상태에서 돈을 인위적으로 풀어서 자산 가격이 올라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긴축정책으로 들어가면 올라가던 경기가 꼬리를 내리고 그동안 퍼부었던 재정 투자와 저금리 정책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마치 위성이 쏘아 올려졌지만 제도권 진입에 실패해 추락한 것과 비슷하다.

지금은 세계경기가 아직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 미국의 경우 부실채권이 그대로 있고 유동성이 너무 많이 풀려있어 금리를 올릴 경우 이자비용이 너무 크다.



지금 경기를 환자로 비유하자면 아직 병이 치유된 상태가 아니다. 운동이나 식이요법으로 점차 체력을 회복한 상태가 아니라 몰핀을 맞아 일시적으로 회복된 상태와 비슷하다. 그런 상황에서 몰핀 주사를 갑자기 중단하면 환자의 상태는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시나리오 3
가계부실 가속화로 경제 뇌관


금리 인상으로 가계부채가 700조원을 훌쩍 넘어서 1가구당 4000만원 넘게 빚을 지고 있는 국민들의 이자 부담이 점차 높아진다.



하지만 국민들은 소비를 줄이고 빚을 갚으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또다시 빚을 늘린다. 생계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2금융권이나 카드 현금서비스, 리볼빙 등을 이용하게 된다. 가계 빚이 줄어들기는커녕 부실은 더욱 심화된다.

지난 2003년 카드버블 붕괴당시 수준으로 가계 부채가 심화되면서 파산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이것이 사회, 경제적 문제가 된다. 가계 부실은 결국 경제회복에 발목을 잡는다.

  여기에 한 표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금리인상으로 가계 부실 심화 우려"


미국 스페인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는 가계부채가 감소하고 있는 데 우리나라만 유독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있다.

금리가 인상되면 사람들이 무분별한 대출을 받지 않아 가계 부채가 줄어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자 부담이 늘어나 가계 부담이 커진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미 가계부채가 700조원을 넘어서는 등 가계부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주택담보대출이 사상최대인 22조6000억원 급증했다.

우리나라의 담보대출은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서 금리인상에 민감한 구조로 돼 있다. 금리가 인상되면 곧바로 가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때 가계는 추가로 연간 3조40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국내 전체 주택담보대출에서 변동금리형의 비중은 90% 이상(미국과 프랑스는 30%, 독일은 16% 수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가계대출의 만기구조도 상대적으로 짧아 원리금 상환부담이 높은 편이다. 선진국의 경우 20~30년 만기 장기대출이 일반화됐지만, 국내의 경우 10년 이내인 주택담보대출이 55.5%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대신 은행권의 부실 우려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주택담보대출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40~60%로,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가계의 상환능력이 감소할 때 대처할 능력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 점은 긍정적이다. 미국은 LTV 한도가 없고, 영국은 85.2% 수준, 독일 60%, 홍콩 60~70%다. LTV가 40~60%라는 말은 쉽게 말해 1억원의 집을 담보로 은행권에서 빌려주는 돈이 4000만~6000만원 정도 된다는 얘기다.

만약 한국에서 가계대출 부실이 현실화된다고 해도 선진국과 달리 주택담보대출채권의 유동화 비율이 낮고 구조가 달라 파급효과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시장금리가 빠르게 오를 경우 가계부채가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가계부채가 2분기 주택담보대출 증가세(9%)와 같이 급증할 경우 올 4분기 가계신용위험지수는 2003년 카드버블 붕괴당시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돼 우려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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