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별 잇따라 지다

머니투데이 백진엽 기자 2009.08.1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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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는 당신(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승에서는 내가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하시더니…."

한국 정치계의 큰 별들이 잇따라 지면서 국민들을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DJ)마저 속세의 무거운 짐을 벗고 안식의 길로 들어섰다. 불과 석달 사이에 두 명의 큰 별을 잃은 국민들의 눈물만이 두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껴서였을까. DJ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치적 행보를 넓히는 모습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다"며 DJ-노무현 세력 결집의 불씨를 제공했다.



또 "민주주의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 민생경제의 위기"라는 발언이나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면서 민주세력의 행동을 주문했다. 그는 지난 6월 25일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등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들과 가진 오찬에서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한다. 그렇게 못 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자신이 평생을 걸었던 민주화가 뒷걸음 칠 것 같은 위기의식과 정치적 반려자인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DJ의 적극적인 행보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는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원래 좋지않았던 건강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충격과 이후 적극적인 정치적 행보로 인한 무리로 더욱 악화된 것이다.

결국 DJ는 폐렴으로 지난달 13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같은 달 15일 오후 1시쯤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폐렴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집중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또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에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후에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지난달 16일부터 인공호흡기에 의지했다. 그러나 합병증의 하나인 폐경색증으로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특히 지난 9일부터 위독한 상태에 빠졌으며 혈압 상승제 등 각종 약물을 투여해 생명을 연장해 왔다. 하지만 이미 폐가 많이 손상됐고, 고령에 지병 등으로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고 노 전 대통령을 위해 써 놓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추도사 중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던 DJ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든 발걸음을 서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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