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국부펀드 질주하는데...발묶인 KIC

머니투데이 강기택 기자 2009.06.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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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는 최근 모건스탠리의 증자에 12억 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싱가포르의 국부펀드 테마섹홀딩스는 AIG의 자산운용부문 인수를 위해 프랭클린 템플턴 투자가 이끄는 컨소시엄 참여를 고려 중이다.

씨티그룹 투자(75억 달러), 크라이슬러 빌딩 인수(8억 달러) 등으로 존재를 부각시켰던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투자청(ADIA)은 지난달 한국 투자를 위해 사절단을 보내 투자대상을 물색했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아 각국의 국부펀드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는 "메릴린치에 투자해 손실을 보고 있다"는 이유로 발이 묶여 여전히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매력적인 투자기회가 있어도 비판여론이 부담스러워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CIC나 ADIA 등으로부터 국내 자산에 대한 공동투자 제의도 들어왔지만 이 또한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이 차일피일 미뤄져 발만 구르고 있다.



◇KIC, 기지개 펼날은=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전후 수차례 "KIC 운용자산 규모와 운용의 자율성을 확대해 KIC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KIC가 적극적으로 국내외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출자자산을 늘리고 투자대상도 다양화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정부가 KIC의 위탁자산을 248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로 늘리려던 계획은 아직 실행되지 못했다. 사모펀드(PEF)나 헤지펀드, 상품 등 대안투자와 국내 자산에 대한 투자 등을 추진중이지만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런 까닭에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KIC에 여러 가지 투자 요청이 이어지고 있지만
KIC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메릴린치 지분 매입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트랙레코드(투자실적)가 없는 KIC로서는 절호의 기회들이었다.


물론 KIC가 개점휴업 상태인 것은 아니다. 상반기 수익률이 목표수익률(벤치마크)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KIC는 해외투자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런던 사무소 개설을 준비중이며 국내 투자가 허용될 경우에 대비한 투자전략도 짜고 있다.

박제용 KIC 전무는 "해외 정보 입수, 네트워크 구축 등을 위해 하반기 런던 사무소 설치와 아울러 국내 투자 허용시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각국의 국부펀드들과 전략적 제휴를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투자 마당 넓혀줘야"=KIC가 활동반경을 넓히고 싶어도 법적 제도적 제약으로 한계가 분명하다. 이에 따라 예정했던 대로 출자규모를 늘리고 투자수단을 다양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한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KIC는 외환보유액의 수익성을 높인다는 최초의 취지대로 운용규모를 늘리고 국채, 상장주식 등 이외에도 사모펀드(PER), 헤지펀드, 상품 등 투자대상을 다양화할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준 금융연구원장은 "KIC의 포트폴리오가 한국은행과 같다면 존재 의의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해외 투자자들의 공동 투자제의에 부응해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내 투자가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특히 "해외 투자기업과 능력이 떨어지는 한국으로서는 KIC를 활용해 금융기법 선진화의 선발부대로 활용해야 한다"며 "한번의 투자실패로 존폐를 거론하기보다 설립취지에 맞게 지원을 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KIC법 개정안을 조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개정안은 KIC의 위탁자산을 외국에서 외화표시 자산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해 국내 운용의 길을 터 주고 자본금의 30배인 3조원까지 외부에서 조달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김민석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현재 상황에서 KIC가 해외에 투자하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여러 해외 국부펀드가 국내 투자를 위해 공동투자자를 찾고 있고 KIC가 이들 국부펀드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여할 부분이 있으므로 KIC법 통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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