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선제적 구조조정… '밥캣 이슈' 끝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9.06.0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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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킹 등 식음료 부문도 매각, 사업구조 재편 차원도

- 두산, 밥캣 관련 유동성 우려에서 사실상 해방
- 식음료 포기하고 중공업에 핵심역량 집중


두산그룹이 3일 발표한 구조조정 방안은 줄곧 그룹의 발목을 잡아온 밥캣 관련 유동성 우려와의 결별을 선언하기 위한 승부수다.

동시에 삼화왕관, 버거킹, KFC 등 소비재 부문을 과감히 포기함으로써 중공업 부문에 핵심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또 채권단에게 등 떠밀려 하는 구조조정 대신 선제적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주도권을 놓치지 않은 채 제값을 받고 계열사를 팔았다는 점에서 두산의 구조조정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난다.

◇ '밥캣 이슈' 사실상 끝··유동성 숨통= 두산그룹이 이번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유동성 우려'다. 밥캣이 그 시발점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2007년 미국 중소형 건설기계업체 밥캣을 인수하면서 산업은행 등 국내외 12개 은행으로 구성된 대주단으로부터 29억달러의 차입금을 조달했다.

당시 대주단과 두산그룹이 맺은 재무약정에 따르면 밥캣 인수를 위한 특수목적회사(SPC) 두산인프라코어인터내셔널(DII)의 대주주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엔진은 2007∼2008년 밥캣의 차입금을 영업현금흐름(EBITDA: 이자·세금·감가상각 차감전 영업이익)의 7배 이하, 2009∼2010년 6배 이하, 2011∼2012년 5배 이하로 유지해야 했다. 밥캣의 EBITDA가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엔진은 증자 등을 통해 현금으로 채워넣어야 했는데, 이것이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이번 자체 구조조정 발표로 '밥캣 이슈'는 사실상 해소됐다. 대주단은 자구안 이행을 전제로 밥캣에 대한 재무약정을 2012년까지 차입금을 EBITDA의 7배 이하로만 유지하면 되도록 대폭 완화했다.


또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DST, KAI 지분 매각대금 6300억원을 토대로 올해 중 유상증자를 통해 밥캣에 7억2000만달러를 추가 출자키로 했다. 이 자금은 밥캣의 차입금 상환 등에 쓰인다. 약 2000억원 규모의 두산인프라코어 자사주 7% 매각대금도 밥캣 증자 대금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달 중 이사회 결의를 통해 자사주 매각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다만 자본잠식에 빠진 두산엔진은 여전히 두산그룹 유동성 문제의 복병으로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 두산, 식음료 내놓고 중공업에 전력투구= "버거킹까지 팔아?" 3일 오전 11시, 서울 을지로 6가 두산타워 12층. 두산그룹의 기자회견장이 순간 술렁였다. 두산그룹이 매각 대상으로 발표한 계열사 중에 버거킹, KFC 사업을 하고 있는 SRS코리아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일치감치 두산DST, 삼화왕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두산그룹의 매각 대상 기업으로 꼽아놓고 있었지만 SRS코리아는 그동안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안정적인 현금창출원(캐시카우)인 SRS코리아를 팔겠다고 내놓은 것은 시장의 예상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

두산그룹에게 지난 10년은 식음료 그룹에서 중공업 그룹으로 변신해온 역사다. OB맥주를 판 돈으로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차례로 인수하며 식음료 중심 그룹에서 중공업 중심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올초 소주 '처음처럼'을 만드는 주류 사업부문까지 매각하면서 식음료 그룹의 이미지는 더욱 옅어졌다. 여기에 두산그룹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식음료 계열사가 SRS코리아였다. 매각대금은 1100억원.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보다는 핵심역량 집중을 위한 사업구조 재편의 성격이 짙다. 병마개를 전문으로 만드는 삼화왕관을 매각키로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핵심 사업인 인프라지원사업(ISB) 등 중공업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식음료 부문은 포기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며 "그만큼 중공업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은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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