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치킨게임' 들어간다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강경래 기자 2009.04.2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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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화학, 중국 신규설비 가동..일본 가동률 상승
- 철강, 일본 저가 덤핑으로 출혈 수출
- "중국 등 동향따라 전략적인 지원 또는 구조조정 필요"


한중일 산업계가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산업 전반의 핵심 소재를 대는 화학, 철강 업종의 경우 수요 부진에도 불구하고 신규설비 가동과 물량공세가 가시화되고 있다.



신규설비 가동 연기 또는 재감산 등을 통해 생산량을 조정하지 않을 경우 수익성 악화로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23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중국 후지안 정유화학(Fujian R&F)은 지난해말 완공한 대규모 공장을 최근 가동하고 화학제품의 핵심 원료인 에틸렌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후지안 정유화학은 빠르면 2분기 중 본격 양산 체제에 들어갈 예정이며 이 경우 연간 80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하게 된다. 중국 신장 지역의 두샨치 PC도 연산 100만톤 규모의 에틸렌 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다.



이 두 공장을 합칠 경우 국내 최대 업체인 여천NCC의 에틸렌 생산량(182만톤)과 맞먹는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미쓰비시화학을 비롯한 일본 석유화학 업체들도 최근 중국의 사재기 수요에 기대며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일본 석유화학 업체들의 평균 가동률은 지난해말 경기침체의 여파로 올 1월 50%대로 떨어졌으나 최근 중국이 재고 확보에 나서면서 80%대로 높아졌다. 그러나 재고를 충분히 확보한 중국이 6월 수입분부터 물량을 줄일 경우 공급과잉이 우려된다.

지난해 7월 톤당 1600달러대에 달했던 에틸렌 가격은 이달초 600달러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경기침체의 충격으로 한때 300달러대까지 떨어진 뒤 반등했지만 여전히 지난해 7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정헌 하나대투증권 수석연구위원은 "2분기부터 중동과 중국에서 신규 석유화학 공장들이 잇따라 가동되는 상황에서 일본업체들까지 가동률을 높이고 있다"며 "앞으로 화학 경기가 좋아진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과잉공급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철강 산업에서는 일본 업체들이 한국 시장을 상대로 저가 덤핑 수출에 나서면서 출혈경쟁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JFE스틸 등 몇몇 일본 철강업체들이 한국으로의 열연강판 수출 가격을 지난해 톤당 1000달러 수준에서 최근 420달러로 낮췄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업체들보다 30% 이상, 품질이 낮은 중국산보다도 10% 이상 낮은 가격이다. 일본 업체들은 한국에서 파는 철근 가격도 작년 톤당 600달러대에서 최근 478달러로 내렸다. 중국산보다도 약 30% 싸다.

지난해말 이후 엔화 강세로 일본 업체들의 수출 채산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까지 고려할 때 사실상 출혈을 감수한 수출이다. 먼저 낮은 가격으로 판로를 확보한 뒤 가격을 올리기 위한 포석으로 국내 철강업계는 보고 있다.

한편 반도체 업계의 경우 한국과 일본, 대만을 포함한 범 중국 간 치킨게임에서 한국 업체들이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와 일본의 엘피다, 대만의 난야와 프로모스 등 D램 제조사들은 지난해 하반기 가격하락에도 불구하고 양산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난야와 프로모스 등 대만 업체들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 대만 정부가 주도해 설립한 타이완반도체(TMC)로 통합됐다. 엘피다 역시 최근 일본 정부에 공적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등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 반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건재한 채 지난달부터 시작된 D램 가격 상승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은 "전세계적으로 공급과잉이 벌어지고 많은 산업들이 치킨게임에 들어가는 상황"이라며 "중국 등 주요 경쟁국들의 산업 동향을 잘 살펴 산업별로 전략적으로 지원 또는 구조조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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