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실세'를 자처하며 황제가 하는 일을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원로원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도야 어떻든 티베리우스는 원로원과 멀리 떨어진 작은 섬에서 '원격통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늘 시선을 피해 잠행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짧지만 강력한 단어를 던진다. 전체 상황을 몇 단어로 요약하는데 파장이 적지 않다. 박 전 대표는 특히 '5음절 화법'의 달인이다. '정치의 수치'(이상득 의원을 향해), '오만의 극치'(이재오 전 의원에 대해), '나쁜 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대해) 등이 그렇다.
박 전 대표는 평소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다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 발언으로 '수첩공주'에서 '선거의 여인', '구원투수'로 진화했다. 현실정치를 떠나 있는 듯한 '초월적 이미지'와 대중이 답답할 때 갈증을 해소해주는 정제된 '화두'가 박 전 대표의 무기다.
#'손자병법 모공편(謨攻篇)'에 '비득불용(非得不用)'이란 책략이 나온다. "얻을 게 없다면 군사를 사용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이번 4·29 재보선 지역 중 한나라당 텃밭인 경주에서 친박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섰다.
이 시각 인기 뉴스
당 안팎에선 박 전 대표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척후병을 내보내 적진을 살피고 향후 대회전(당 대표 선출 및 차기 대통령 경선)을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동안 암행했으니 세를 과시하려 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18대 총선에서 박 전 대표는 건재함을 과시했다. 친박 인사들이 한나라당 공천에서 줄줄이 탈락했으나 탈당 뒤 대거 당선돼 한나라당으로 돌아왔다. 박 전 대표는 측근들의 공천 탈락에 절제된 행동으로 대응했으나 결국 승리했다. '비득불용'의 역발상이다. '선거의 여인'은 대선 경선 탈락의 상처를 딛고 재기에 성공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재보선에서도 한발짝 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경주의 한나라당 후보도, 무소속 출마한 자신의 측근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런 박 전 대표가 재보선을 나흘 앞둔 오는 25일 대구를 찾는다. 대구 달성군의 '비슬산 꽃축제' 참석이 목적이다.
당 대표 선출과 내년 지방선거, 내후년 총선, 그 다음해 대선까지 긴 정치 행로에서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가야 할 박 전 대표의 이번 선택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