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카리스마…그 실체는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9.04.2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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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의 '정치야 놀자']

편집자주 마흔이 넘어 서여의도를 밟았습니다. '경제'로 가득 채워진 머리 속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려 합니다. 정치…. 멀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두리번거리겠습니다. 좌충우돌하겠습니다. 정치를 먼 나라 얘기가 아닌, 우리 삶 속에서 숨쉬는 얘깃거리로 다뤄보겠습니다. 정치를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데려 오겠습니다.

박근혜와 카리스마…그 실체는


#로마제국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는 제위 13년째인 서기 27년, 68세 때 수도 로마를 떠나 카프리에 틀어박혔다.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로마황제가 나폴리만에 떠 있는 작은 섬에 은둔했다. 가족이나 원로원에 미리 알리지도 않았다.

은둔의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실세'를 자처하며 황제가 하는 일을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원로원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도야 어떻든 티베리우스는 원로원과 멀리 떨어진 작은 섬에서 '원격통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로마제국 전역의 현안과 정보는 잘 짜여진 도로망을 통해 빠짐없이 카프리로 전달됐다. 티베리우스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의회에 승인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 뜻을 관철시켰다. 원로원과 로마시민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늘 궁금했다. 그가 던진 '화두'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모습을 감춰 신비주의를 통한 카리스마를 발휘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늘 시선을 피해 잠행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짧지만 강력한 단어를 던진다. 전체 상황을 몇 단어로 요약하는데 파장이 적지 않다. 박 전 대표는 특히 '5음절 화법'의 달인이다. '정치의 수치'(이상득 의원을 향해), '오만의 극치'(이재오 전 의원에 대해), '나쁜 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대해) 등이 그렇다.



선택한 단어는 평범했지만 결정적 순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친박(친 박근혜) 쪽에서는 "오랜 고심의 흔적이 묻어나온다"고 높인다. 반면 친이(친 이명박) 측은 "타이밍은 잘 맞추지만 무임승차하는 능력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박 전 대표는 평소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다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 발언으로 '수첩공주'에서 '선거의 여인', '구원투수'로 진화했다. 현실정치를 떠나 있는 듯한 '초월적 이미지'와 대중이 답답할 때 갈증을 해소해주는 정제된 '화두'가 박 전 대표의 무기다.

#'손자병법 모공편(謨攻篇)'에 '비득불용(非得不用)'이란 책략이 나온다. "얻을 게 없다면 군사를 사용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이번 4·29 재보선 지역 중 한나라당 텃밭인 경주에서 친박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섰다.


당 안팎에선 박 전 대표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척후병을 내보내 적진을 살피고 향후 대회전(당 대표 선출 및 차기 대통령 경선)을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동안 암행했으니 세를 과시하려 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18대 총선에서 박 전 대표는 건재함을 과시했다. 친박 인사들이 한나라당 공천에서 줄줄이 탈락했으나 탈당 뒤 대거 당선돼 한나라당으로 돌아왔다. 박 전 대표는 측근들의 공천 탈락에 절제된 행동으로 대응했으나 결국 승리했다. '비득불용'의 역발상이다. '선거의 여인'은 대선 경선 탈락의 상처를 딛고 재기에 성공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재보선에서도 한발짝 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경주의 한나라당 후보도, 무소속 출마한 자신의 측근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런 박 전 대표가 재보선을 나흘 앞둔 오는 25일 대구를 찾는다. 대구 달성군의 '비슬산 꽃축제' 참석이 목적이다.

당 대표 선출과 내년 지방선거, 내후년 총선, 그 다음해 대선까지 긴 정치 행로에서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가야 할 박 전 대표의 이번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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